전승절의 정치학
(미디어원=이정찬 기자) 2025년 5월 8일,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을 가졌다. 이날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 전야로, 두 정상은 반패권주의와 다극체제를 명분으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맞서겠다는 입장을 공동 천명했다. 단순한 정상회담이 아닌, 상징과 전략이 교차한 시점이었다.
전략적 동반자 선언 – 언어의 권력
푸틴은 시진핑을 ‘친애하는 동지’라 불렀고, 시 주석은 ‘강대국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닌, 공동 전선을 향한 정서적, 역사적 연대의 의사 표현이다. 이 언어는 단기 협력 이상의 신호다. ‘전략적 동반자’는 국제 정치에서 실질적 동맹의 사전적 표현으로 통한다.
경제 협력과 에너지 이해관계
시베리아 가스관, 원유 수출 확대, 위안화 결제 채널 다변화 등 양국의 경제적 협력은 매우 실용적이다. 러시아는 제재 해소용으로, 중국은 에너지 안보 확보용으로 이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서방의 금융망과 결제 시스템에서 점점 이탈하는 러시아와, 글로벌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싶은 중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다.
군사·정보 협력 – 동맹인가, 제국인가
양국은 이미 합동 군사 훈련을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최근엔 극초음속 미사일 정보 교류 가능성도 보도되고 있다. 해군 항모 기동 훈련, 사이버 보안 협정, 우주 기술 공유 등에서 나타나는 협력은 실질적 군사 동맹의 성격을 띠고 있다. 서방은 이를 ‘권위주의 블록의 형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비대칭 동맹 – 중국이 주도한다
표면상 대등한 파트너처럼 보이지만, 실질적 주도권은 중국에 있다. 러시아는 국제 제재 속에서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고 기술 수입이 막혀 있는 상태다. 반면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과 산업 경쟁력, 통화 영향력까지 갖춘 경제 초강국이다. 푸틴은 중국의 우산 아래 들어가며 전략적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 반응과 G7 대응 시나리오
G7과 NATO는 이번 회담 직후 공동 성명을 통해 ‘민주주의 가치를 위협하는 권위주의 연대’라며 우려를 표했다. 특히 에너지 거래와 무기 기술 교류에 대한 2차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중국 기업들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중러의 전략적 공조가 장기화될 경우, 미중 갈등은 더 이상 무역 수준이 아니라 지정학적 충돌로 전환될 수 있다.
북한 변수 – 제재 우회와 전략 공간 확장
중·러의 밀착은 북한에 제재 회피 공간을 제공한다. 에너지와 식량 지원, 원자재 교환 등 간접 지원 경로가 확대될 수 있으며, 이는 북핵 외교의 레버리지를 약화시킨다. 또한 북러 간 무기 거래 의혹과 중북 간 경협 재개 논의는 한반도 안보 지형을 다시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 외교 – 전략적 모순의 분기점
한국은 안보는 미국, 무역은 중국이라는 구조적 모순 속에 서 있다. 여기에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 북방 경제전략까지 겹치며 입장은 더 복잡해졌다. 균형외교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미국 중심의 기술동맹에 편입되는 만큼,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도 높아진다. 지금은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다.
한반도 위기 시나리오 – 확장 억제 시험대
만약 북한이 중러 연대를 배경으로 도발 수위를 높인다면, 한국의 안보는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의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미국의 핵우산과 한미일 정보 공조 체계가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작동할 수 있는지를 가시적으로 검증 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급격히 고조시킬 수 있다.
질서 재편의 경계선 위에서
푸틴-시진핑 회담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 이는 국제질서 재편의 전조이자, 한국 외교의 방향을 결정해야 할 시그널이다. 다극체제의 부상은 새로운 기회이자 리스크다. 국제사회는 지금, 질서의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우리는 그 경계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