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 한국사회와 노인] ② 창업이 아니라 추락이었다

정년 이후, 생계형 자영업에 내몰리는 은퇴자들

이만재 기자 | 2025.05.21

서울 도봉구의 한 상가 1층. 자그마한 분식집을 운영하던 65세 박정웅씨(가명)는 지난 달 폐업 신고서를 냈다. “이자도 못 내는 날이 계속되더라고요. 주방에 앉아서 수첩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하루의 절반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가게를 연 건 2년 전. 평생을 인천의 작은 중소기업에서 일했던 그는 59살이 되던 해 퇴직을 했다. 몇 년을 쉬다가 “계속 쉴 수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는 이유로 시작한 것이 이 분식집이었다. “국민연금요? 한 달에 128만 원이 다예요. 결혼이 늦어서 아직 대학 졸업 전인 딸이 있고 장남도 결혼 전이지요. 128만원으로는 생계도 힘들고,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시작한 창업이, 결국 추락의 서곡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박 씨처럼 퇴직 이후 자영업이라는 고단한 길에 내몰린 노인이 점점 늘고 있다. 단순히 은퇴 후 소일거리를 찾는 노년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다. 마땅한 재취업 경로가 없고, 공적 연금이 생계에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유일한 생존 방식으로 창업을 택한 이들이다.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이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210만 명에 달한다. 전체 자영업자 중 무려 37.1%가 고령층이다. 2015년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 은퇴 이후 10년간,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68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들이 주로 진입하는 업종은 뻔하다. 운수업, 도소매, 숙박·음식점업 등 진입장벽은 낮지만 수익성은 낮고 경쟁은 치열한 분야다. 2022년 통계 기준으로, 60대 창업자 중 35%가 연간 영업이익 1천만 원에 미치지 못했다. 월 80만 원 정도의 순수익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9개월. 다급한 생계형 창업의 전형이다.

문제는 단지 ‘소득이 적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금융구조는 이미 붕괴 직전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강일 의원실이 금융감독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3년 말 기준 50·60대 개인사업자가 금융권에서 빌린 대출금은 737조 원에 달했다. 특히 이 중 절반은 세 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중복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다. 사실상 이자조차 갚기 어려운 ‘돌려막기’ 구조다.

연체율도 심각하다. 2024년, 60세 이상 자영업자의 대출 증가율은 6.6%로 전체 연령 평균(0.2%)보다 압도적으로 높았고,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9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출은 늘고, 수익은 줄고, 연체율은 오르는 이 삼중 구조 속에서 자영업자들의 노후는 고스란히 파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소상공인 지원과 창업교육, 재기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 친화적 환경 조성’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대안이 되었는지는 회의적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으로 전환한 50세 이상 인원의 48.8%는 월 소득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같은 업종 경험 없이 창업한 고령자의 월 순소득은 144만 원에 불과했고, 저임금 근로율은 82.9%에 달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일단 자영업을 시작하면 더 이상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령층의 재취업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일자리의 양도 부족하지만, 그 질 역시 문제가 된다. 공공 일자리나 단시간 근로 외에는 사실상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영업은 유일한 길처럼 강요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고령층 창업이 국가 경제에도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은퇴자 창업의 실패율이 높고, 폐업이 반복되면서 사회 전체의 부채 구조가 불안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게 하나 문 닫을 때마다 가족이 파산하고, 지역경제는 침체된다. 더구나 이들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세대가 많고, 부부가 동시에 연금 수급을 받으면 오히려 감액되는 구조적 불합리 속에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한국 사회의 노인 정책은 여전히 창업과 복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기본적인 생계보장 없이 창업을 장려하는 건 사실상 고령층을 구조적으로 실패로 몰아넣는 것이다. “열심히 살면 된다”는 구호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열심히 사는 것으로는 생존조차 보장되지 않는 시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관성적 복지정책이 아니라, 재구성된 사회계약이다. 고령층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일하지 않아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초를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다음 세 가지가 필수적이다.

  • 고령층의 경력과 숙련을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재취업 경로 구축
  • 기초연금 구조 개편: 하위 50% 중심으로 두텁게 지원
  • 고령층 부채 조기경보 시스템 설계

창업은 노년의 출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준비 없는 창업은 사회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을 바꾸는 일이다. ‘노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사회는 노인에게 무엇을 약속해야 하는가’를 묻는 일이다.

그 질문에 답할 시간은, 더 이상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