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비켜간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놀라운 성공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섰던 드라마가 있다.
JTBC에서 방영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서울 자가’, ‘대기업’, ‘부장’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방영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삶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중년 남성의 추락을 다룬다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공감과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드라마는 국내 초일류 기업 ACT의 영업부장 김낙수부장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회사 소개 영상에 등장할 만큼 승승장구하던 핵심 인물이 조직에서 밀려나며 겪는 혼란과 좌절, 그리고 새로운 선택의 과정을 통해 ‘성공 이후의 불안’과 ‘중산층 신화의 균열’을 그려내겠다는 의도는 분명했다.
문제는 이 지점부터다.
이 드라마는 김부장을 영업의 귀재로 설정해 놓고, 실제 행동에서는 영업을 전혀 모르는 인물처럼 움직이게 한다. 설정과 행동이 분리되는 순간, 이야기는 현실극이 아니라 상상극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김부장은 먼저 회사에서 밀려난다. ACT라는 초일류 기업의 영업부장이 실적 하락에 대한 구체적 수치나 핵심 어카운트 이탈에 대한 설명 없이 정리된다. 이유로 제시되는 것은 ‘매너리즘’, 조직 내부 정치, 후배 부장의 네트워킹이다. 그러나 영업 조직에서 실적은 단순한 성과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방패이고 권력이자 존재 이유다. 특히 대기업 영업부장은 개인이 아니라 회사 매출 구조의 일부다. 회사 소개 영상에 등장할 정도의 인물을 숫자 설명 하나 없이 정리한다면, 비극은 김부장이 아니라 그 회사의 경영 판단이다.
회사를 나온 이후의 전개는 더 설득력을 잃는다. 김부장은 친구와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다 상가 분양 전단지를 받는다. 전문 컨설턴트도, 분석 자료도 없다. 전단지를 돌리며 사기성 상가 분양을 노골적으로 제안하는 브로커의 말 몇 마디가 그의 인생을 흔든다. 입지, 유동 인구, 기존 상권에 대한 검증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인물의 몰락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지 모르나, 현실을 아는 시청자에게는 비극이 아니라 코미디로 받아들여진다.
상가는 감정으로 사는 상품이 아니다. 특히 영업과 마케팅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상권과 동선은 본능에 가깝다. 그 기본을 확인하지 않는 영업부장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김부장은 실패한 중년이 아니라, 서사를 성립시키기 위해 어리석어져야 하는 캐릭터가 된다.
억지스러운 설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김부장은 회사를 나온 뒤 주변으로부터 “200도 못 받는다”는 말을 듣고, 매제와 처제에게까지 노골적인 무시와 모멸을 당한다. 드라마는 이를 사회적 지위 상실의 상징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초일류 기업의 영업부장, 그것도 상무 진급을 바라보던 인물은 그렇게 한순간에 시장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 영업부장은 직함이 아니라 네트워크와 어카운트의 집합체다. 회사를 나오는 순간 그는 이미 업계의 자산이다. 경쟁사와 관련 업계에서 먼저 연락이 오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김부장을 하루 아침에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든다. 이 선택은 중년의 비애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일 수 있으나, 영업이라는 직업의 속성을 완전히 무시한 설정이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도 시청자는 분노하지 않는다. 웃게 된다. 너무 과장됐기 때문이다.
더 어색한 장면도 있다. 김부장은 작은 빌딩 하나를 가진 친구에게서 ‘세상 사는 법’에 대한 훈수를 듣는다. 대기업 영업부장은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다. 수십 년 간 사람을 상대하고, 숫자로 설득하며, 이해관계를 조정해온 프로다. 그런 인물이 자영업자 친구의 인생 강의를 듣는다는 설정은, 초일류 기업의 영업부장을 현실의 직업이 아니라 상징으로만 이해한 상상에 가깝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는 공감이 아니다. 직업과 조직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작가는 김부장을 ‘성공한 중년 남성의 표상’으로만 소비한다. 영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대기업의 권력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실적이 사람을 어떻게 보호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김부장은 현실의 논리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설정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 지점에서 해외 사례와의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Mad Men》은 광고 업계를 다루지만, 인물의 윤리와 감정이 아무리 추악해도 거래 구조와 클라이언트의 논리는 철저히 지킨다. 《Succession》은 재벌가의 권력 다툼을 그리면서도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의 냉혹함으로 서사를 밀어붙인다. 인물이 몰락할 때조차 그 이유는 개인의 선택과 구조적 결과로 축적된다.
김부장에게는 그 축적이 없다. 사건은 많지만 논리는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청자는 분노하지 않는다. 대신 헛웃음을 짓게 된다. 너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문제는 특정 설정의 허술함을 넘어선다. 이 작품은 최근 한국 드라마 전반에서 반복되고 있는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나리오는 단단하지 않고, 직업과 조직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며, 그 빈자리를 감정 자극과 공감 유도로 메우는 방식이 굳어지고 있다.
이런 작품들이 화제작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고, 충분한 비판 없이 지나가는 구조 역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실을 아는 시청자들이 느끼는 이질감과 허탈감은 개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야기의 설득력이 무너졌다는 신호다.
드라마는 허구지만, 허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최소한의 현실 규칙은 지켜야 한다. 특히 대기업, 영업, 조직, 시장처럼 실제 삶과 밀접한 영역을 다룰수록 검증과 이해는 필수다. 그 과정을 생략한 채 감정만 앞세운 서사는 결국 공감을 넘어서지 못한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지금일수록, 더 높은 완성도가 요구된다. 화제성이나 메시지보다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이야기의 구조와 현실감이다. 그것이 갖춰질 때, 드라마는 비로소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미디어원 ㅣ 이정찬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