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사람을 죽였다 – 배우 윤석화 사망 오보가 남긴 것

[미디어원=이정찬 기자]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문장은 언론이 다룰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문장이다. 그 문장이 사실이 아닐 때, 그것은 단순한 오보가 아니라 사회적 폭력이 된다. 배우 윤석화의 ‘별세 오보’는 이 사회가 생명과 존엄, 그리고 언론의 책임을 얼마나 가볍게 다루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19일 새벽, 한국연극배우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배우 윤석화가 전날 밤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소식은 빠르게 확산되며 연극계와 대중문화 전반에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 이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화는 여전히 생존해 있었고,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위중한 상태로 투병 중이었다. 세상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먼저 사망 선고를 내렸다.

오보는 언론의 역사만큼 오래된 문제다. 하지만 사망 오보는 일반적인 사실 오류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 사망 보도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사회가 한 개인의 생을 공식적으로 종료시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생존해 있고 가족이 곁에 있는 상황에서의 사망 오보는 실수라는 말로 덮을 수 없는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남겨진 이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피해를 남긴다.

이번 사태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오보의 출처가 언론사가 아니라 배우를 대표하는 공식 단체였다는 점이다. 한국연극배우협회는 업계 구성원의 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해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사실 확인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채 ‘별세’라는 표현을 공식 문서로 배포했다. 가족 확인, 의료진 확인, 교차 검증 가운데 무엇이 이루어졌는지는 끝내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이는 개인의 착오를 넘어,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언론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 다수의 매체가 해당 보도자료를 거의 검증 없이 인용해 전파했다. ‘공식 단체 발표’라는 이유로 확인의 책임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은 전달자가 아니라 검증자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기는 순간, 기자는 취재자가 아니라 확성기가 된다. 이번 사건은 보도자료 저널리즘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문제는 헌법적 관점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있다. 사망 오보는 이 조항이 보호하는 인격권을 정면으로 침해한다. 살아 있는 사람을 사회적으로 ‘사망자’로 규정하는 행위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당사자가 중병으로 투병 중인 상황에서의 사망 오보는 명예훼손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법적 책임 문제도 남는다. 사망 오보는 언론중재법상 명예훼손과 정신적 손해 배상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실제로 과거 여러 사례에서 위자료 지급과 정정보도 책임이 인정돼 왔다. 이번 사안은 최초 정보 생산자가 공식 단체였고, 언론이 이를 검증 없이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책임의 범위가 더 넓게 논의될 수 있다. 출처가 공식이라는 이유는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 사실 확인은 언론의 본질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사망 오보를 경험해 왔다. 그때마다 언론은 속보 경쟁과 확인 부족을 이유로 들었고, 사과문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윤석화 사건은 이전 사례들과 분명히 다르다. 개인 기자의 실수가 아니라, 공식 단체와 언론이 동시에 확인 시스템을 상실한 구조적 실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배웠어야 했다. 사망 보도만큼은 단 한 번의 확인으로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연극배우협회가 발표한 사과문 역시 한계를 드러낸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지만, 어떤 경로로 오보가 발생했는지, 누가 이를 확인했고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을 바꾸겠다는 것인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사과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책임의 언어여야 한다. 구조에 대한 설명 없는 사과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이번 사망 오보는 한 배우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확인보다 속도가 앞서고, 애도와 감정이 사실 검증을 압도하는 사회의 단면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람을 추모하고,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린다. 그 과정에서 정작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과 언론의 기본 원칙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언론은 이 사건 앞에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살아 있는 사람을 확인하기 전에 먼저 죽이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윤석화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과는 별개로, 이 사건은 반드시 기록되어야 한다. 사망 오보는 실수가 아니라, 사회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다음 오보는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