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반도체 산업이 ‘AI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시장은 커졌고, 성장의 중심은 더 선명해졌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¹는 1월 12일(현지시간) 발표한 ‘2025년 전 세계 반도체 매출 예비조사’에서 2025년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이 7930억달러를 넘어 전년 대비 21% 성장했다고 밝혔다.
성장의 동력은 AI 인프라 투자였다. AI 프로세서와 고대역폭메모리(HBM)², 네트워킹 부품 수요가 동시에 폭증하며 반도체 시장의 성격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다.
이번 집계에서 AI 핵심 부품은 전체 반도체 매출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이 비중은 2029년까지 절반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의 절반이 사실상 AI 산업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엔비디아, ‘1000억달러 시대’의 첫 주인공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엔비디아의 숫자였다. 엔비디아는 2025년 매출 1257억달러를 기록하며 반도체 업계 최초로 연매출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전년 대비 성장률은 63.9%에 달한다. 이번 시장 성장분의 35% 이상을 엔비디아가 단독으로 견인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는 한 기업이 잘 나갔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AI가 만들어낸 초과 수요와 초과 이익이 ‘연산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신호다. 엔비디아는 GPU³ 기업을 넘어 AI 인프라의 표준을 사실상 장악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삼성, 2위지만…메모리로 버티고 비메모리에서 밀렸다
2위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2025년 매출 725억달러 수준으로 2위를 유지했지만, 엔비디아와의 격차는 530억달러까지 확대됐다. 다만 메모리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13% 증가한 반면, 비메모리 매출은 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흐름은 삼성의 경쟁력을 단정하기보다는, 반도체 시장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시장의 성장 과실은 점점 더 ‘저장’보다 ‘연산’, ‘생산’보다 ‘설계’에 가까운 영역으로 기울고 있다.
SK하이닉스 3위…HBM은 ‘메모리의 예외’가 됐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매출 606억달러로 3위에 올랐다. 성장률은 37.2%다. 특히 AI 서버용 HBM 수요 확대가 실적을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2025년 HBM은 D램 시장의 23%를 차지하며 매출 300억달러를 돌파했다. 메모리 반도체가 단순 저장장치가 아니라, AI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뜻이다.
인텔 하락…CPU 중심 질서가 약해졌다
인텔은 2025년 매출 479억달러로 4위로 내려앉았다. 성장률은 -3.9%였다. 시장 점유율은 6%까지 하락해 2021년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이는 단순한 기업 부진을 넘어,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이 CPU에서 GPU·AI 가속기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AI는 기존 반도체 시장이 익숙했던 규칙을 새로 쓰고 있다.
상위 10개 기업이 보여준 ‘AI 시대 반도체 지도’
이번 조사에서 상위 10개 반도체 기업은 엔비디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에 이어 마이크론, 퀄컴, 브로드컴, AMD, 애플, 미디어텍 순으로 나타났다. AI 인프라 구축이 활발해지면서 AI 프로세서와 HBM, 네트워킹 칩 수요가 동반 급증하고 있다는 진단도 제시됐다.
결론: 시장이 커진 게 아니라 ‘판’이 바뀌었다
2025년 반도체 시장은 성장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의 방향이다. AI는 반도체 시장의 수요를 늘린 수준을 넘어, 반도체 산업의 권력 구조를 바꾸고 있다. 연산 중심의 기업이 초과이익을 가져가고, 메모리와 네트워크는 AI를 중심으로 재배치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엔비디아의 연매출 1000억달러 돌파는 기록이 아니라 시대 변화의 선언에 가깝다. AI가 반도체를 삼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 주석
¹ 가트너(Gartner, Inc.)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로, IT·반도체·기업기술 시장 전망과 기업별 매출 순위 등 산업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발표한다.
²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
AI 서버용 GPU가 빠르게 연산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고속으로 공급하는 고성능 D램.
³ GPU(Graphics Processing Unit)
대규모 병렬 연산에 특화된 반도체로, 현재 AI 학습·추론의 핵심 장치로 활용된다.
미디어원 ㅣ이정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