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예상치 못한 군사·외교 충돌이 발생했다. 스페인이 자국 기지에서 미군 공중급유기 운용을 제한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페인과 모든 무역을 끊겠다”고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갈등의 핵심은 단순한 기지 사용 문제가 아니다. 현대 공중전의 핵심 인프라인 공중급유기 운용이 막혔다는 점이다. 전투기와 폭격기가 아무리 첨단이라도, 장거리 작전은 연료 계획에서 출발한다. 그 연료 계획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가 공중급유기다.
미국은 최근 이란의 지하 미사일 시설과 군사 인프라를 겨냥한 장거리 공습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장거리 타격 작전에서 공중급유기는 단순한 ‘지원기’가 아니라 작전 자체를 성립시키는 기반이다. 전투기·폭격기의 작전 반경을 수배로 늘려주고, 목표 공역에서의 체공 시간을 늘리며, 여러 편대의 동시 작전을 가능하게 한다.
미 공군은 그동안 스페인 남부의 모론 공군기지(Morón Air Base)와 로타 해군기지(Naval Station Rota)를 중동 작전을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해 왔다. 특히 모론 기지는 공중급유기 전개 거점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에서 중동으로 이어지는 항공 작전에서 ‘급유의 중간기착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최근 이 기지들이 이란 공격 작전에 사용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페인 측은 기지 사용이 “국제법과 기존 협정 범위 내 작전에 한정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란 공격을 직접 지원하는 형태’의 기지 운용에는 선을 그은 셈이다.
이 결정 이후 미군 항공기 일부는 스페인 기지를 떠나 다른 유럽 기지로 이동했다. 항공기 추적 자료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에서 운용되던 미군 공중급유기와 지원 항공기 상당수가 독일의 람슈타인 공군기지 등 다른 유럽 거점으로 재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전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지만, 전진기지의 위치가 바뀌면 작전의 ‘비용’이 달라진다. 거리와 시간이 늘고, 급유 횟수가 늘며, 편대 운용 계획과 대기 시간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공중급유기는 현대 공중전의 ‘숨줄’이자 아킬레스건으로 불린다. 전투기와 폭격기가 고성능 레이더와 스텔스 성능을 갖춰도, 급유망이 흔들리면 장거리 작전의 효율과 지속성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스페인의 기지 사용 제한은 미국 공군 작전의 바로 그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조치였다. 그것도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였다. 돕지 않을 수는 있어도, 동맹의 작전을 가로막는 행동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스페인은 끔찍하다”고 말한 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에게 “스페인과 모든 거래를 끊으라고 지시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어 “우리는 스페인과 모든 무역을 끊을 것”이라며 노골적인 압박을 쏟아냈다. 외교적 항의 수준이 아니라, 경제를 지렛대로 삼아 ‘협조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스페인 정부는 즉각 맞받았다. 스페인은 미국이 민간 기업의 자율성과 국제법, 그리고 미·유럽 간 무역 질서 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자국의 결정이 국제 규범과 협정 틀 안에서 내려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동시에 스페인은 자국이 나토와 유럽 방위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이번 충돌은 ‘이란 공습’ 한 가지 이유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스페인과 미국 사이의 긴장은 이전부터 누적돼 있었다. 나토는 최근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스페인은 이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현재 스페인의 국방비는 GDP 약 2% 수준으로 주요 회원국 가운데 낮은 편에 속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동맹국들의 방위비 부담을 문제 삼아왔고, 스페인의 낮은 국방비 지출은 그의 불만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번 ‘기지 제한’이 그 불만을 폭발시키는 촉매가 된 셈이다.
이번 사건은 전투기·폭격기·미사일·드론이 중심이 된 현대 전쟁에서도, 결국 작전의 지속성과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인프라’라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공중급유는 눈에 띄는 무기체계가 아니다. 그러나 장거리 작전의 문을 여닫는 열쇠다. 스페인의 선택이 미국을 자극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은 화력으로만 치르지 않는다. 전쟁은 연료와 항로,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지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