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거도 데이터도 없이 대통령이 내린 지시…노인 노동 이동권을 겨냥하다
이정찬 기자 ㅣ 미디어원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다시 논쟁에 불을 붙였다. 출퇴근 시간 노인 지하철 이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였다.
이 발언은 단순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장관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나온 행정 지시이며, 부처가 움직이고 제도가 뒤따를 수 있는 무게를 가진다.
그래서 이 논쟁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정책 방향이 아니라 그 지시가 무엇을 근거로 나왔느냐는 점이다.
확인된 근거는 없다.
출근 시간대, 오전 7시부터 9시 사이 서울 지하철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7.9%에서 9.7% 수준이다. 한 자릿수다. 하루 전체 평균이 14~15%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가장 붐비는 시간대일수록 노인 비율은 낮다.
반대로 새벽 시간대에는 30%를 넘는다. 수치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이 노인들로 인해 혼잡해진다는 인식은 데이터로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번 지시의 전제는 “출퇴근 시간에 불필요하게 이동하는 노인이 있다”는 가정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이 가정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혼잡한 구간이다. 좌석은 없고, 서서 이동해야 하며, 승하차조차 쉽지 않다.
젊은 사람도 피하고 싶은 시간대다. 하물며 신체적 제약이 있는 노인들에게 이 시간은 선택 가능한 구간이 아니다.
혼잡 환경은 낙상과 부상 위험을 높이고, 장시간 서 있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다. 선택권이 있다면 피하는 것이 정상이다.
실제 생활 이동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병원을 찾는 노인은 대기와 혼잡을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이나 오전 중반을 택한다. 일상 용무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이동은 출퇴근 시간을 비켜간다.
그 시간에도 지하철을 타는 노인이 있다면, 이유는 하나다. 일하러 가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65세 이상 고용률은 30%대 중반이다. 노인 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여전히 노동시장에 남아 있다. 그들이 맡고 있는 일자리 역시 분명하다. 청소, 경비, 시설관리, 단순노무. 대부분 이른 시간 출근이 전제된 직종이다.
이들에게 출퇴근 시간 지하철은 선택 가능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이동 통로다.
문제는 바로 여기다.
현행 지하철 통계는 연령만 구분할 뿐 이동 목적을 구분하지 못한다. 같은 시간, 같은 열차를 이용한 노인이 출근인지 여가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해 정책 판단의 기준이 되는 데이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한’이라는 방향이 먼저 거론됐다. 정책은 근거 위에 세운다. 근거가 없다면 먼저 확인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번 경우는 그 순서가 완전히 뒤집혔다.
결과는 명확하다.
일하러 가야 하는 사람은 제한이 생겨도 이동을 멈추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야 하는 사람은 계속 탄다. 결국 이동 자체는 줄어들지 않고, 비용과 부담만 늘어난다. 그 부담은 어디로 가는가. 가장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인 노동층으로 돌아간다.
이건 무임승차 논쟁이 아니다.
노인의 이동이 아니라 노인의 생계, 그리고 노동 이동권의 문제다. 특히 사회 최빈층에 가까운 노인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떤 조건에서 이동하고 있는지를 고려한다면, 이 논쟁은 훨씬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그 자체로 행정의 출발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데이터 위에서 말해야 하고, 현장 위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 기본이 보이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은 전제 위에서 제한이 거론됐고, 그 대상은 결과적으로 가장 약한 집단이 됐다.
출퇴근 시간 노인 이용 비율은 한 자릿수다. 그 시간대 여가 이동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규모가 아니다. 움직이는 이유는 생계다. 그 생계의 이동을 근거 없이 제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건 정책 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무엇을 보고 판단했는지, 무엇을 확인하고 말했는지, 그 질문이 먼저다.
그래서 이 논쟁은 더 위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