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찬 기자ㅣ미디어원
전작권 논쟁은 한국 사회에서 해묵은 논쟁거리다. 전시작전통제권, 줄여서 전작권은 선거 때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미동맹을 둘러싼 말이 사납고 거칠어질 때마다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전작권에 대해 다투는 소리는 크지만, 정작 전작권이 무엇인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한국은 무엇을 넘겼고 무엇을 되찾았으며 무엇이 아직 남아 있는지 차분히 설명하는 글은 찾기 어렵다.
누군가는 “주권국가가 자기 군대를 지휘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전작권을 가져오면 한미동맹이 흔들린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든 한 문장으로 끝내기는 쉽다. 그러나 국가안보는 한 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작권은 자존심이나 체면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도 없고, 막연한 불안감으로만 붙잡아둘 수도 없다.
먼저 알아야 한다. 전작권은 무엇이고, 왜 생겼으며, 오늘의 논쟁은 어디에서 시작됐는가.
전작권의 출발점은 1950년 6·25전쟁이다. 전쟁 발발 직후 대한민국은 국가 존망의 위기에 몰렸다. 서울은 무너졌고, 정부는 남쪽으로 밀려났다. 한국군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전쟁 전체를 독자적으로 감당할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선은 밀리고, 시간은 없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지휘의 혼선은 곧 패배를 뜻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7월 14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이양한다는 서한을 보냈고, 맥아더는 답신을 통해 이를 받아들였다.
국가기록원은 이 문서를 “군국 통수권 이양에 관한 이승만 대통령의 각서 및 MacArthur 유엔군 총사령관의 회한”으로 소개한다. 해당 기록물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7개항 각서와 1950년 7월 16일 맥아더의 답신이 함께 들어 있다.
이 장면을 오늘의 감정으로만 읽으면 길을 잃는다. 이승만이 왜 그 결정을 했는지, 당시 한국군의 상황은 어땠는지, 유엔군 참전과 지휘계통의 통일은 왜 필요했는지, 미국은 그 지휘권을 받으면서 어떤 군사적 부담을 함께 떠안았는지를 같이 봐야 한다.
전작권은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이 가져간 물건처럼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비상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결정이었다. 그 서한은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 문서였다.
작전지휘권, 먼저 알아야 할 출발점
여기서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현리전투는 왜 전작권 논쟁의 상처로 남았는가. 밴 플리트 장군은 왜 한국군 3군단을 해체했는가. 그것은 작전권을 처음 빼앗긴 사건이었는가, 아니면 이미 이양된 지휘체계 아래에서 한국군의 독립 작전수행 능력이 무너진 사건이었는가. 이 질문을 피하면 전작권 논쟁은 역사보다 감정에 가까워진다.
한미상호방위조약도 다시 봐야 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은 어떻게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었는가. 이승만 대통령은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맡긴 인물이면서, 동시에 휴전 반대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벼랑 끝 외교로 미국을 압박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낸 인물이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이 두 장면은 사실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약한 나라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전시작전통제권과 국군통수권은 다르다
용어도 바로잡아야 한다. 1950년에 논의된 것은 작전지휘권이었다. 이후 정전과 한미 간 합의를 거치며 작전통제권이라는 말로 정리됐고, 1994년에는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돌아왔다. 국가기록원은 1954년 한미합의의사록에서 한국군이 유엔군사령부의 작전통제 아래 놓이게 됐고, 1994년 12월 1일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공식 반환됐다고 설명한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전작권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다는 말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평시에 한국군이 아무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지금 논쟁의 핵심은 평시가 아니라 전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반도 전구작전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지휘하고, 한국군과 미군 전력을 어떻게 묶어 운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한미동맹과 전작권 전환의 실제 질문
그래서 전작권 전환은 단순한 찬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이후 전작권 전환 논의가 본격화됐고, 이후 여러 차례 시기와 방식이 바뀌었다. 현재 공식 기준은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다. 정부는 전환 조건으로 한국군의 연합방위 주도 능력, 한미동맹의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능력, 안정적인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을 제시해왔다. 전작권 전환은 정치적 선언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군사능력과 안보환경을 함께 따지는 문제라는 뜻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나온다. 한국군 사령관이 전작권을 갖게 되면 미국의 전략자산도 마음대로 지휘할 수 있는가.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정찰위성, 공중급유기, 핵전력,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전력이 자동으로 한국군 지휘관의 명령 아래 들어오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작권 전환의 실제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덮어두고 사령관의 국적만 말하면 논쟁은 껍데기만 남는다.
한미상호방위조약도 백지수표가 아니다. 조약은 동맹의 법적 기초다. 그러나 조약이 곧 미국 군사자산 전체에 대한 한국군의 자동 작전명령권을 뜻하지는 않는다. 동맹은 약속이고, 작전은 현실이다. 전쟁에서 필요한 것은 조약 문구만이 아니다. 그 약속을 실제 전력, 지휘체계, 군수망, 정보망, 정치적 결심으로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국가 생존의 질문으로 다시 읽는다
이 기획은 어느 편을 들기 위해 시작하는 글이 아니다. 친미냐 반미냐를 묻기 위한 글도 아니다. 외교안보는 호감도 조사가 아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미국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가 아니다. 누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가. 누가 우리의 안보를 실제로 위협하는가. 어떤 선택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확실하게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가. 그것이 이 연재의 질문이다.
한국처럼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는 나라도 드물다. 북쪽에는 핵과 미사일을 가진 북한이 있다. 주변에는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라는 초강국들이 있다.
현대전은 전차와 병력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사일, 드론, 사이버전, 전자전, 정찰위성, 조기경보, 에너지망, 원전, 항만, 공항, 전력망이 모두 전쟁의 표적이 되는 시대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에서 전작권 논쟁을 자존심이나 구호로만 말하는 것은 너무 가볍다.
우리는 앞으로 15부에 걸쳐 전작권을 다시 읽으려 한다. 1950년 이승만의 서한과 맥아더의 수락에서 출발해, 현리전투와 밴 플리트, 한미상호방위조약, 작전지휘권과 작전통제권의 차이, 한미연합사령부의 성격,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노무현 정부 이후 전작권 전환론, 미국 전략자산 운용 문제, 친미·반미 논쟁의 한계, 나토와 독일·일본의 동맹 전략, 북·중·러에 둘러싸인 한국의 현실까지 차례로 짚을 것이다.
전작권 논쟁은 구호로 풀 수 없다. 우리가 무엇을 넘겼고, 무엇을 되찾았으며, 무엇을 아직 준비해야 하는지 역사와 문서와 군사 현실로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질문할 수 있다. 전작권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전환돼야 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대한민국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가.
국가안보는 자존심과 체면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전쟁은 구호를 듣지 않는다. 국민을 지키는 것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다. 이 연재는 그 능력을 묻는 기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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