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 ㅣ 김미래기자
서울남산국악당이 국악의 날을 기념해 전통 목소리의 가능성을 새롭게 묻는 실험적 무대를 선보인다. 판소리와 정가를 이야기 전달의 형식으로만 보지 않고, 소리 자체의 질감과 진동, 침묵과 공간의 관계로 다시 바라보는 공연이다.
서울남산국악당은 2026년 국악의 날 ‘국악위크’ 특별 프로그램으로 전통예술 창작단체 리퀴드사운드의 신작 ‘Vocal Space – 조각눈’을 6월 6일 크라운해태홀에서 공연한다. 공연은 오후 3시와 6시 두 차례 진행된다.
이번 작품은 2026 프랑스 아비뇽 축제에 공식 초청된 리퀴드사운드의 신작으로, 판소리와 정가를 중심으로 전통 성음의 물질성과 공간성을 탐구한다. 국악을 보존과 재현의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동시대 공연예술의 언어로 다시 배치하려는 시도다.

전통 목소리를 서사가 아닌 ‘공간’으로 듣다
‘Vocal Space – 조각눈’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전통 성음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내용을 설명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정작 목소리 그 자체의 음악적 매력은 얼마나 충분히 들어왔는가라는 질문이다.
작품은 판소리와 정가의 발성법, 농음, 시김새, 아니리, 발림을 해체하고 다시 조합한다. 익숙한 서사 구조를 따라가는 대신, 목소리가 가진 입자와 결, 호흡과 떨림, 침묵 사이의 긴장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이 무대에서 소리는 고정된 성악가의 몸에서 관객석으로 곧장 전달되는 정보가 아니다. 분절된 음성의 파편은 공간 안에서 충돌하고 흩어지며 다시 연결된다. 관객은 전통음악을 ‘이해해야 할 이야기’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감각하는 진동으로 마주하게 된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문 구성
공연 형식도 기존 국악 공연과 다르다. ‘Vocal Space – 조각눈’은 일반 객석을 사용하지 않고 무대 위에 의자와 방석을 배치해 관객석을 운영한다. 관객은 무대 밖에서 바라보는 위치가 아니라 소리가 발생하고 이동하는 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이 구성은 작품의 주제와 맞물린다. 소리와 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공연에서 관객은 단순한 청취자가 아니라 공간을 함께 점유하는 존재가 된다. 목소리의 방향, 거리, 울림, 침묵의 밀도가 관객의 감각에 직접 닿는다.
공연은 총 3막으로 구성된다. 1막 ‘조각 공간 – 소리의 파편’에서는 해체된 음성의 단편들이 공간 속에 흩어지며 새로운 감각 구조를 만든다. 2막 ‘빈 공간 – 심연의 침묵’에서는 침묵과 여백을 통해 소리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긴장을 드러낸다. 3막 ‘현존 공간 – 열린 판’에서는 분절됐던 전통의 소리가 다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열린 감각의 장을 완성한다.
리퀴드사운드, 전통예술의 동시대적 감각 실험
리퀴드사운드는 2015년 창단 이후 한국 전통연희를 바탕으로 현대무용, 설치미술, 바로크 음악 등 다양한 장르와 협업해왔다. 이 단체는 전통예술을 고정된 형식으로 다루기보다 장르 간 충돌과 융합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주목해왔다.
이번 신작에서는 그 관심이 ‘소리와 공간의 관계’로 더 깊어진다. 판소리와 정가의 성음은 노래나 대사의 기능을 넘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을 흔들고, 관객의 감각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요소로 제시된다.
정우정 평론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소리는 더 이상 무대 위의 고정된 성악가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정보가 아니다. 물리적 부피를 가진 채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이자 관객 감각의 체계 안으로 침투하는 날선 진동”이라고 평했다.
아비뇽 초청 단체의 신작, 서울에서 먼저 만난다
리퀴드사운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무대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아왔다. 2026 프랑스 아비뇽 축제 공식 초청을 비롯해 프랑스 오리악 세계거리예술축제, 서울거리예술축제, 팸스초이스,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등 여러 무대에서 활동해왔다.
이번 서울남산국악당 공연은 국악위크 특별 초청 공동기획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전통예술 창작단체의 국제적 확장성과 서울의 국악 전문 공연장이 만나는 무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공연에는 연출 이인보, 작곡 주준영, 안무 심주영, 무대디자인 이휘순 등 창작진이 참여했다. 출연진으로는 소리꾼 신유진, 이혜진, 구민지와 사운드·인스트루먼트 연주자 최혜원이 함께한다. 이들은 전통 성음의 다층적 질감과 공간 안에서 변화하는 소리의 구조를 구현한다.
국악의 날, 전통을 다시 듣는 방식
국악의 날을 기념한 이번 공연은 전통예술을 기념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전통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만 살아남지 않는다. 동시대 관객이 다시 듣고, 다시 느끼고, 다시 해석할 수 있는 형식으로 변주될 때 현재성을 갖는다.
‘Vocal Space – 조각눈’은 판소리와 정가의 목소리를 낯설게 들려준다. 익숙한 장단과 서사, 가사의 의미보다 목소리의 떨림과 호흡, 침묵의 밀도에 집중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국악을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만난다.
공연은 6월 6일 오후 3시와 6시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열린다. 티켓은 전석 3만원이며, 자세한 내용과 예매는 서울남산·돈화문국악당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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