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30일 | 이정찬 기자 미디어원
이란 상공이 화염에 휩싸인 2026년 3월, 한국의 뉴스 소비자들이 마주한 것은 전쟁의 실체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공포의 파편들이었다. 주요 일간지와 방송사를 막론하고 쏟아진 보도들은 하나같이 ‘제3차 세계대전’, ‘호르무즈 봉쇄 초읽기’와 같은 극단적인 언어로 지면을 채웠다.
하지만 정작 그 불길이 왜 시작되었는지, 현대전의 복잡한 보급망과 외교적 억지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조적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은 단순한 오보의 문제가 아니라, 페이지뷰를 위해 독자의 불안을 동력으로 삼는 한국 언론 생태계의 구조적 파산을 의미한다.
디지털로 전환된 한국 언론의 수익 모델 안에서 전쟁은 더 이상 전달해야 할 비극이 아닌, 가장 효율적인 클릭 생성기이자 매력적인 상품으로 전락했다.
‘후티, 미사일 발사’라는 짧은 사실 뒤에는 반드시 ‘확전 임박’이라는 감정적 자극이 덧붙여진다. 기사 본문에는 이 미사일이 어디서 왔는지, 이란의 내부 권력 구조 변화가 이 발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대신 그 자리는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검증되지 않은 전문가들의 공포 섞인 전망이 차지한다.
독자들은 기사를 읽을수록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다음 속보를 기다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BBC가 경고했던 ‘공포 기반 독자 참여(Fear-based engagement)’의 한국적 변종이다.
실제로 지난 28일 후티 반군의 이스라엘 공격을 다룬 보도 행태는 이러한 진단을 증명한다. 대다수 국내 언론은 미사일 발사라는 현상 자체를 부풀려 ‘중동 전면전’의 서막으로 규정했다. 반면 같은 날 글로벌 외신들은 이 사건을 이란의 보급선 차단에 따른 후티 내부의 균열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략적 셈법이라는 다층적인 구조 속에서 풀어냈다. 사건의 의미를 전달하여 독자의 판단력을 돕는 저널리즘과, 사건을 이용해 독자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마케팅의 차이가 여기서 극명하게 갈린다.
이러한 무책임한 보도의 대가는 고스란히 독자와 시민사회의 몫으로 돌아온다. 검증되지 않은 ‘봉쇄 가능성’ 보도는 시장에 즉각적인 왜곡을 일으키고 유가 관련 지표를 요동치게 만들며, 시민들의 비합리적인 경제적 판단을 유도한다.
언론사가 공포를 팔아 조회수 수익을 챙기는 동안, 독자들은 그 공포에 기반한 잘못된 선택으로 실질적인 재산상 손실과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결국 전쟁 보도의 부정확성은 언론의 신뢰도 하락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의사결정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태가 특정 매체의 일탈이 아닌, 예외 없는 시스템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동일한 수익 구조와 클릭 경쟁 체제 아래서라면 아무리 양심적인 기자라도 심층적인 분석 기사를 쓰기보다 자극적인 속보 한 줄을 더 올리도록 강요받는다.
현재 한국 언론 어디에서도 이 파멸적인 공포 마케팅을 멈추려는 자정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변화의 열쇠는 독자에게 있다.
공포를 주는 헤드라인 대신 사건의 구조를 설명하는 기사를 선택하고, 맥락 없는 속보를 거부하는 독자들의 연대만이 공포를 파는 뉴스룸의 문법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전쟁은 전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우리가 마주하는 뉴스창 안에서도 저널리즘의 사활을 걸고 벌어지고 있다.

이 기사가 공포를 팔지 않는 이유: 사실과 맥락의 체크리스트
본지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는 ‘공포 마케팅’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우리가 전쟁과 갈등을 보도할 때 반드시 지키는 세 가지 원칙은 단순한 보도를 넘어 독자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돕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첫째, 형용사가 아닌 숫자의 궤적을 쫓습니다. ‘일촉즉발’, ‘파멸적’, ‘대폭발’과 같은 감정 과잉의 단어는 사건의 본질을 가립니다. 본지는 대신 이란의 실제 미사일 재고량,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의 실시간 항적 데이터, 그리고 국내 정유사의 비축분 일수와 같은 ‘딱딱하지만 정직한 숫자’를 기사의 뼈대로 삼습니다. 독자가 느끼는 공포는 모호함에서 오지만, 정확한 수치는 냉정한 대처를 가능하게 합니다.
둘째, 단편적 사건보다 거시적 구조를 우선합니다. 미사일 한 발이 발사된 순간의 충격에 매몰되지 않고, 그 미사일이 발사되기까지의 보급망 체계와 주변국들의 외교적 이해관계를 먼저 분석합니다. 특정 무장 단체의 도발이 전면전으로 번지기 어려운 군사적 한계와 국제사회의 억지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독자가 사건의 ‘다음 수’를 스스로 읽어낼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셋째, 보도의 책임이 독자의 삶에 닿아 있음을 잊지 않습니다. 언론의 조회수 수익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내리는 경제적·사회적 판단의 정확성입니다. 과장된 위기설이 시장을 왜곡하고 독자의 소중한 자산에 손실을 입히지 않도록, 본지는 모든 정보의 경제적 인과관계를 철저히 검증합니다. 우리는 공포를 팔아 광고를 얻는 대신, 정확한 맥락을 전달하여 독자의 신뢰라는 가장 값진 자산을 얻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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