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 ㅣ 김미래기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인공지능을 단순한 보조 기술이 아니라 창작 과정의 동반자로 무대 위에 세운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오는 6월 2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인문학 콘서트 〈공존(Survive)〉을 공연한다. 이번 공연은 국악 장르로 분류되며 관람시간은 70분, 초등학생 이상 관람 가능, 티켓은 R석 4만 원·S석 2만 원이다.
이번 공연의 핵심은 “AI가 만든 음악을 사람이 연주한다”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다. 작곡, 작사, 보컬 협연, 공연 진행까지 AI의 역할을 넓히고, 그 과정에서 인간 예술가가 무엇을 해석하고 덧붙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앞서 로봇 지휘자 ‘에버6’를 무대에 올렸던 〈부재〉가 “지휘자의 부재가 가능한가”를 물었다면, 〈공존〉은 “창작의 과정에서 인간과 AI가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는가”로 질문을 옮긴다.
로봇 지휘에서 AI 창작으로 넓어진 실험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23년 로봇 지휘자 ‘에버6’가 참여한 공연 〈부재〉를 통해 기술과 국악관현악의 접점을 실험한 바 있다. 당시 공연은 로봇이 국내 공연 지휘에 도전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로봇의 정확한 박자 계산과 인간 지휘자의 해석력이 비교되는 방식이었다. 이번 〈공존〉은 그 다음 단계다. 기술이 지휘 동작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창작 아이디어와 음악 생성, 무대 대화, 협연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프로그램은 AI와 인간의 역할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배치한 다섯 작품으로 구성된다. 〈데이터의 발아〉는 관객 설문에서 모은 감정 데이터와 음악적 선호도를 AI가 분석해 만든 곡이다. 약 170명이 응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불안함과 두려움’, ‘휴식’ 등의 감정을 국악관현악 선율로 풀어낸다. 〈알고리즘 아리랑〉은 여러 형태로 전승돼 온 아리랑 데이터를 AI가 학습해 제시하고, 편곡자가 이를 새롭게 완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다섯 초연곡, AI와 인간 편곡자의 공동 작업
〈그대라는 기적〉은 관객들이 남긴 ‘나를 위한 한마디’를 바탕으로 AI가 작사·작곡뿐 아니라 노래까지 참여하는 작품이다. 〈경계의 확장〉은 AI가 만든 전자 사운드와 국악관현악이 협연하듯 호흡하는 무대로 소개된다. 마지막 곡 〈공존의 울림〉은 AI가 제공한 아이디어가 인간 연주자와 편곡자의 해석을 거쳐 하나의 음악으로 바뀌는 과정을 담는다.
이번 작업에는 생성형 AI 음악 스타트업 포자랩스가 참여했다. 포자랩스는 100만 개 이상의 자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섯 편의 국악관현악 작품을 완성했다. AI가 관객 설문과 알고리즘 데이터를 다루고, 인간 편곡자와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이를 실제 공연 언어로 바꾸는 구조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AI가 곡의 재료를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연주자의 호흡과 무대 해석을 거쳐야 비로소 공연이 된다는 점이다.
정재승 교수와 AI 페르소나 ‘지음’ 공동 진행
무대 진행 방식도 공연의 한 축이다. KAIST 뇌인지과학과 정재승 교수가 국립국악관현악단 전용 AI 페르소나 ‘지음(知音)’과 함께 공동 사회자로 나선다. ‘지음’은 성격, 성향, 가치관 등을 바탕으로 설계된 대화형 AI로 소개되며, 공연 현장에서 실시간 대화를 통해 관객과 소통할 예정이다. 기술을 설명하는 강연형 공연에 머물지 않고, AI와 인간 진행자가 같은 무대에서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꾸며진다.
지휘는 정예지가 맡는다. 그는 앞서 〈부재〉 공연 당시 로봇 지휘자 ‘에버6’의 지휘 동작 학습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이번에는 AI가 만든 음악에 인간 지휘자의 해석과 호흡을 덧입히는 역할을 한다. 공연 구성은 KBS 〈남자의 자격〉, 〈불후의 명곡〉, SBS 〈런닝맨〉 등에 참여한 방송작가 김미연이 맡았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AI와 예술의 문제를 관객이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 구조로 풀어내려는 의도다.
AI가 예술가를 대체하느냐보다 중요한 질문
〈공존〉이 주목되는 이유는 국악관현악이 AI 시대의 창작 논의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무대화한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AI와 예술의 결합은 주로 서양 클래식, 대중음악, 미디어아트, 영상 분야에서 많이 다뤄졌다. 국악관현악은 악기의 음색, 장단, 호흡, 선율의 굴곡, 즉흥성과 집단 연주의 결이 강한 장르다. 이 장르에서 AI가 만든 데이터 기반 아이디어가 실제 연주로 구현될 때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는 중요한 관찰 지점이다.
다만 이번 공연의 의미는 AI가 전통음악을 대체할 수 있는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 예술가의 역할이 어디에서 더 분명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AI는 감정 데이터와 음악 패턴을 분석할 수 있지만, 무대 위의 긴장, 악기 사이의 호흡, 지휘자의 순간 판단, 관객의 반응까지 완결된 예술로 만드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공존〉은 바로 그 경계에서 질문을 던지는 공연이다.
전통예술은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일만으로 살아남지 않는다. 시대의 감각과 만나고, 새로운 기술과 충돌하고, 때로는 낯선 방식으로 다시 해석될 때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이번 시도는 AI를 화려한 장식으로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국악관현악이라는 공공 예술 장르 안에서 창작 방식 자체를 실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6월 26일 달오름극장 무대는 AI가 예술가가 될 수 있는지를 판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인간 예술이 기술과 함께 무엇을 새로 만들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매와 문의는 국립극장 홈페이지 또는 국립극장 대표전화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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