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 기자 ㅣ 미디어원
서울의 낮 기온이 39도에 육박하는 폭염권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같은 숫자를 본다. 그러나 그 온도가 몸에 닿는 방식은 주거와 소득, 노동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에어컨이 있는 집에서는 전기료를 걱정하며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냉방기기가 없거나 전기요금이 두려워 켜지 못하는 가구, 뜨거운 작업장을 떠나는 순간 하루 수입이 끊기는 노동자, 한여름 쪽방과 반지하에 홀로 남은 고령자에게 폭염은 생활의 불편을 넘어 생존의 위험으로 바뀐다.
질병관리청은 2026년 폭염 건강영향 분석에서 체감온도가 38도에 이르면 전체 사망위험이 평상시보다 1.16배, 심혈관질환 사망위험은 1.14배 높아진다고 밝혔다. 특히 기초생활수급자와 외국인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 홀로 사는 사람, 고령자와 기저질환자는 온열질환이 입원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위험이 더 큰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2026년 5월 15일부터 7월 26일까지 온열질환자는 1,399명, 추정 사망자는 8명이었다. 지난해에는 총 4,460명의 온열질환자와 29명의 추정 사망자가 발생했고, 7월 하순 단기간에 피해가 집중됐다.
같은 39도, 누구는 피하고 누구는 견딘다
폭염특보가 내려지면 정부는 외출을 줄이고 냉방시설에서 쉬라고 권고한다. 이 조언을 그대로 따르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쪽방과 오래된 다세대주택, 반지하, 옥탑방은 단열성능이 낮다. 낮 동안 벽과 지붕에 축적된 열이 밤까지 방 안으로 전달되면서 야외기온이 내려간 뒤에도 실내 온도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어도 전기요금이 걱정돼 사용을 줄이는 가구가 있다. 선풍기만으로 버티거나 공공기관과 지하철역, 대형마트 등 냉방이 가능한 공간을 찾아 낮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에게는 무더위쉼터까지 이동하는 일 자체가 또 다른 부담이 된다.
폭염 취약계층 보호는 냉방시설의 개수를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 공간까지 갈 수 있는지, 냉방기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전기료 때문에 사용을 포기하고 있는지까지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질병관리청도 확인했다…기초생활수급자 중증 위험 높아
질병관리청이 2026년 공개한 심층분석에서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온열질환의 중증화 위험과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외국인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 혼자 사는 사람은 온열질환이 입원 또는 사망으로 이어질 위험이 상대적으로 컸다. 고령과 만성질환이 함께 있는 경우 위험은 더 커질 수 있다.
저소득층의 폭염 위험은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높아진다. 단열이 취약한 집, 냉방비 부담, 만성질환, 혼자 사는 생활환경이 동시에 작용한다. 일용직과 배달·건설·농업 등 야외노동에 종사하면 가장 뜨거운 시간에도 일을 멈추기 어렵다.
특히 소득이 하루 노동과 바로 연결되는 사람에게 한낮의 작업 중단은 그대로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쉬어야 하지만 생계를 위해 다시 작업장으로 나가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에너지바우처 1인 29만5,200원…여름과 겨울을 함께 버틴다
정부는 에너지 취약계층의 냉난방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에너지바우처를 운영하고 있다. 2026년 총 지원금액은 1인 세대 29만5,200원, 2인 세대 40만7,500원, 3인 세대 53만2,700원, 4인 이상 세대 70만1,300원이다.
지원금은 2026년 7월 1일부터 2027년 5월 31일까지 하절기와 동절기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한정된 금액을 여름 냉방과 겨울 난방에 나눠 써야 한다는 뜻이다.
1인 세대가 여름 폭염기에 냉방비를 많이 사용하면 겨울 난방에 남는 금액이 줄어든다. 겨울을 걱정해 여름 사용을 아끼면 뜨거운 방 안에서 건강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폭염과 혹한이 모두 강해지는 상황에서는 에너지바우처가 단순한 공과금 보조를 넘어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재난복지의 기능을 맡게 된다. 실제 사용량과 기후 위험을 반영해 지원 수준과 지급 방식을 계속 조정할 필요가 있다.


야외노동자는 더위를 피하면 수입이 줄어든다
건설현장, 배달, 농업, 도로정비 등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은 냉방시설이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기 어렵다. 작업을 멈추는 시간은 바로 임금과 수입에 영향을 준다.
폭염 시 작업중지와 휴식시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사업주 권고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위험한 시간대에 작업을 멈출 수 있도록 하고, 그 시간의 소득 손실을 노동자가 혼자 떠안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농촌의 고령 농민도 같은 문제를 겪는다. 작물 관리와 수확 시기를 놓치면 생계에 직접적인 손실이 생기기 때문에 폭염경보가 내려져도 논밭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고령과 만성질환이 겹치면 짧은 야외작업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온열질환은 며칠 사이 급증한다
폭염 피해는 긴 여름 동안 일정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질병관리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2025년에는 7월 20일부터 31일까지 불과 12일 동안 전체 온열질환자의 약 30%, 사망자의 약 35%가 집중됐다.
2026년에도 감시체계 운영 첫날인 5월 15일 서울에서 80대 남성이 온열질환으로 숨졌다. 당시 서울 최고기온은 31.3도였다.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기 전의 기온도 고령자와 기저질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폭염이 며칠 이어지면 밤 동안 체온과 실내 온도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다. 수면 부족과 탈수, 만성질환 악화가 누적되면서 몸이 회복할 시간을 잃는다. 독거 고령자와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하루 한 번 이상 직접 확인하는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전기료를 아끼다 건강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
폭염 대책은 물을 나눠주고 무더위쉼터 위치를 알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이 실제로 쉼터까지 갈 수 있는지, 쪽방 안에 냉방기가 있는지, 에어컨을 가지고도 전기료 때문에 켜지 않는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방문형 냉방지원과 전기요금 긴급지원도 폭염 대책에 포함해야 한다.
저소득층 에너지 지원은 여름과 겨울의 극단적인 기온 변화를 함께 반영해야 한다. 여름 냉방을 충분히 사용하면 겨울 난방이 부족해지는 구조에서는 계절별 재난 위험에 맞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
폭염 속 전기료는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생명을 지키는 비용이 된다.
같은 39도에서도 누군가는 냉방된 집으로 들어가고, 누군가는 뜨거운 방과 작업장에 남는다. 폭염과 혹한이 가장 먼저 시험하는 것은 주거와 소득, 그리고 사회가 마련한 안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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