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OP “군대 안 갑니다” 그 말이 가벼웠던 이유… 축구 금메달 병역특례는 누가 준...

“군대 안 갑니다” 그 말이 가벼웠던 이유… 축구 금메달 병역특례는 누가 준 선물인가

일본 U-21 꺾고 4연패 뒤 터져 나온 ‘군 면제’ 환호… 특례는 탈출권이 아니라 공동체가 청춘의 시간을 양보한 ‘특별한 배려’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우승 뒤 금메달과 마스코트를 들고 환호하는 한국 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4연패를 달성한 한국 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우승 뒤 함께 환호하고 있다. 참고사진=미디어원 편집부

금메달을 땄다. 결승전에서 일본을 1-0으로 꺾었고, 한국 남자축구는 2014년 인천 이후 아시안게임 사상 첫 ‘4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마땅히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다.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그라운드에 쓰러져 환호하고, 시상대 위에서 소리를 지르며 서로를 껴안는 청년들의 감격을 탓할 사람은 없다. 그 90분을 위해 흘린 땀방울의 무게는 온전히 선수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축제의 뒤끝에 남겨진 몇몇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걸린다.

주장 완장을 찼던 이기혁은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카메라를 향해 “군대 안 갑니다!”라고 외쳤다. 팀의 주축 양민혁은 메달이나 우승 트로피보다 병역 해결이 더 중요했고 그 혜택을 바라보며 뛰었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박승수는 소셜미디어에 이른바 ‘전역모’를 쓴 사진을 올렸다. 논란이 일자 선수들은 사과했다.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선수들이다. 유럽 무대 진출과 선수 경력을 짓누르던 병역 부담이 해결됐으니 그 해방감이 얼마나 컸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러나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뛴 국가대표라면, 그 환호의 말을 내뱉기 전에 한 걸음만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

그들이 손에 쥔 혜택은 도대체 누구에게서 온 것인가.

한국 선수가 일본 수비수를 앞에 두고 공을 향해 발을 뻗는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 경기 장면
한국과 일본의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 경기 장면. 참고사진=미디어원 편집부

일본 U-21을 이긴 환호 뒤에 남은 질문

이번 결승 상대 일본은 2년 뒤 올림픽을 겨냥해 어린 선수들로 꾸린 21세 이하(U-21) 대표팀이었다. 반면 한국은 23세 이하 최정예에 와일드카드까지 더한 사실상의 성인 전력이었다. 두 살 어린 유망주들을 상대로 거둔 진땀승이었다. 물론 승리는 승리이고, 4연패라는 기록의 가치를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는 자부심보다 경기 뒤 선수들의 입에서 가장 크게 터져 나온 말이 “군대 안 간다”는 안도감이었다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선수들은 무엇을 위해 그라운드를 달렸는가. 한국 축구의 성취인가, 아니면 병역 문제를 털어내기 위한 90분이었는가.

선수 개인에게 병역이 절박한 현실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20대 초반의 18개월 공백은 유럽 무대 도전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변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체육요원 병역특례’라는 예외적 통로를 열어둔 것이다. 제도가 특별한 만큼, 그 제도를 대하는 태도 역시 가벼워서는 안 된다.

엄밀히 따지면 이 제도는 ‘면제’가 아니다. 법적으로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돼 34개월간 해당 분야에 종사하며 544시간의 공익복무를 마쳐야 하는 대체복무다. 현역 입영을 피해 운동을 계속할 수 있으니 엄청난 혜택임은 분명하지만, 제도의 본래 취지는 운동 잘했다고 주는 면죄부가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낸 인재가 경력 단절 없이 기량을 발전시켜 사회에 기여하도록 국가가 다른 방식의 의무 이행을 허용한 것이다.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군대 안 간다”고 소리치는 순간, 이 제도의 의미는 너무나 손쉽게 ‘군대 탈출권’으로 쪼그라들고 만다.

같은 시간, 전방 철책을 지키는 또래 청년들의 몫

병역특례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이 있다. 그라운드에서 환호하는 선수들과 똑같은 나이의 평범한 청년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전방 철책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누군가는 서해 함정에서 당직을 서고, 누군가는 비행단과 해병대 초소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학을 휴학하고 입대한 청년, 막 시작한 직장을 잠시 내려놓은 청년, 각자의 꿈을 18개월 뒤로 미뤄둔 또래들이 도처에 있다. 그들에게도 그 18개월은 축구선수의 시간만큼이나 소중한 인생이다.

그럼에도 사회가 운동선수에게 병영 대신 운동장을 허락하는 이유는, 그들의 성취가 국민에게 기쁨을 주고 사회적 활력이 된다는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합의의 가장 무거운 무게는, 같은 시기에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또래 청년들이 떠받치고 있다.

“스무 살 안팎의 선수가 그 시간을 온전히 운동장에 쏟아붓도록 허락한 자리는, 같은 나이의 또래 청년들이 전방 철책의 칼바람과 서해 함정의 당직 속에서 자신의 18개월을 내어주며 떠받친 자리다. 병역특례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에 진 무거운 ‘빚’이다.”

병역특례는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청년들의 양보와 배려 위에 얹힌 사회적 부채다.

선수들에게 죄책감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그 귀한 시간을 얻었으니 더 치열하게 뛰어야 한다. 유럽 무대에서 경쟁력을 증명하고, 월드컵에서 국민을 즐겁게 하면 된다. 다만 그 출발선에는 최소한의 겸허함이 있어야 했다.

“이 소중한 기회를 주신 국민과 지금 복무 중인 또래 청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몫까지 부끄럽지 않게 뛰겠습니다.” 시상대에서 나왔어야 할 말은 이것이었다. 태극마크의 진짜 무게는 메달을 딴 뒤에 더 무거워지는 법이다.

아시안게임을 ‘병역 해결용 무대’로 만든 어른들의 책임

선수 몇 명의 철없는 언행만 탓하고 끝낸다면 그것 역시 비겁하다. 스무 살 청년들의 가벼운 태도는 결국 우리 사회와 체육계가 오랫동안 보여준 모습이 투영된 결과다.

대한축구협회는 대표팀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라는 자리가 갖는 사회적 무게를 제대로 가르쳤는가. 코칭스태프는 결승전을 앞두고 ‘군 면제’를 가장 손쉬운 동기부여 수단으로 쓰지 않았는가.

언론도 돌아봐야 한다. 대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누가 군 면제를 받나”, “병역 해결의 마지막 기회”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앞다퉈 쏟아낸 것이 누구였는가. 대회의 스포츠적 의미를 지우고 아시안게임을 ‘병역 탈출 무대’처럼 소비해 온 것은 바로 우리 언론이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몰아가 놓고 막상 선수들이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자 일제히 품격을 따져 묻는 것은 모순이다.

일본이 U-21 대표팀을 파견해 다음 세대를 준비할 때, 한국 축구가 아시안게임에 최정예를 쏟아부으며 기형적인 총력전을 벌여온 이면에는 이 병역특례라는 현실적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구조를 만든 것은 선수가 아니라 어른들이다.

제도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마일리지 점수제 등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보완할 것인지는 앞으로 사회가 차분히 논의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제도가 존재하는 한, 국가대표로 나서는 선수들에게 이 기회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스포츠는 전쟁이 아니다. 선수들에게 나라를 위해 뼈를 깎는 희생을 바치라고 강요하던 시대는 끝났다. 자신의 꿈을 위해 당당히 뛰는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로부터 특별한 배려를 받았다면, 그에 걸맞은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 역시 당연한 도리다.

한국 축구는 아시안게임 4연패를 이뤄냈다. 박수를 보낸다. 이제 남은 것은 선수들이 그 금메달로 얻은 18개월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다. 병영 대신 얻은 시간을 더 뛰어난 기량과 성숙한 모습으로 사회에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축구계와 어른들도 가르쳐야 한다.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오만한 환호가 아니다.

자신에게 기회를 허락해 준 공동체를 향한 감사, 그리고 그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감이다.

뉴스레터 구독미디어원 뉴스레터 서비스 준비 중입니다회원가입미디어원 회원 서비스 준비 중입니다
Previous article인도 핑계 대는 체육회, 메달표는 보고 말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