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마거리트 히긴스, 6·25 최전선에서 타자기를 든 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6·25 최전선에서 타자기를 든 기자

여성 기자라는 이유로 전선에서 쫓겨날 뻔했던 서른 살 종군기자… 잊혀 가는 한국전쟁을 사람의 이야기로 다시 읽다

한국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의 모습을 재구성한 흑백 인물 이미지
한국전쟁 당시 마거리트 히긴스의 모습을 기록사진을 참고해 재구성했다. AI 재구성 이미지 | 미디어원 편집부

1950년 6월 27일,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이틀째. 김포공항에 도착한 미군 항공기에는 총 대신 취재 수첩과 타자기를 든 서른 살의 미국 기자가 타고 있었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도쿄 특파원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였다.

서울이 무너져 내리던 순간 한국에 들어온 그는 후퇴하는 군인들과 함께 남쪽으로 이동했다. 전쟁터에서 여성이 취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논란이던 시대였다. 미8군 사령관 월턴 워커는 여성 기자들의 전선 취재를 금지했다. 그러나 히긴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금지 조치는 철회됐다.

그가 남긴 말은 분명했다. “나는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종군기자로서 이곳에 있다.” 히긴스는 서울에서 걸어 나왔으니 다시 걸어 들어가고 싶다고도 했다. 성별이 아니라 기자의 임무로 자신을 판단해 달라는 요구였다.

야전 취재 현장에서 타자기로 기사를 작성하는 마거리트 히긴스 재구성 장면
한국전쟁 취재 현장에서 타자기로 기사를 작성하는 마거리트 히긴스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미디어원 편집부

포탄을 뚫고 타전한 진실

히긴스는 안전한 후방에서 전황 발표만 받아 적지 않았다. 낙동강 방어선과 인천상륙작전 현장을 누볐다. 인천상륙작전 때는 미 해병대의 상륙 대열을 따라 해안에 들어갔다. 그가 쓴 기사는 지도 위의 전선뿐 아니라 전쟁을 견디는 병사와 민간인의 현실을 전했다.

1950년 당시 미 육군 제27보병연대의 지휘관은 히긴스가 총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상병들에게 혈장을 투여하는 일을 도왔다고 신문사에 편지를 보냈다. 위험을 감수한 그의 행동이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였다. 전쟁을 기록하는 기자가 눈앞의 부상자를 외면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대화하는 마거리트 히긴스
마거리트 히긴스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전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미디어원 편집부

퓰리처상의 영광과 언론의 잃어버린 야성

1951년 히긴스는 한국전쟁 보도로 국제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여성으로서는 이 부문 첫 수상이었다. 단독 수상은 아니었다. 같은 해 한국전쟁을 취재한 기자 여섯 명이 각각 수상했고, 그 가운데 히긴스가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는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War in Korea》를 펴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상이나 책의 판매 성적이 아니다. 전선에서 물러나라는 명령 앞에서도 취재할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지 않았던 언론인의 태도다.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은 어떠한가. 클릭 수를 노리는 자극적인 텍스트가 범람하고, 현장의 피땀 어린 취재 대신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긁어모은 정보로 책상을 채우는 ‘데스크 저널리즘’이 늘고 있다. 기계가 기사를 쓰고 분석을 내놓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현장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진실을 캐내던 히긴스의 낡은 타자기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타자기의 무게와 미디어의 시대적 사명

6·25전쟁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기억을 되살릴 수 없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선택과 용기, 고통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때 역사는 다시 살아난다. 히긴스의 이야기가 오늘의 독자에게 의미를 갖는 까닭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쾌적한 사무실의 모니터 앞이 아니라, 포탄이 떨어지는 참호와 전선에서 진실을 기록하려 했던 기자들의 손끝에서 실감 난다.

기술이 발전하고 뉴스의 유통 방식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 하더라도 언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알고리즘의 정교한 텍스트만이 아니라 진실을 확인하려는 치열한 현장 정신이다. 미디어의 수장으로서, 그리고 펜을 쥔 언론인으로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타자기에는 과연 그날 히긴스가 감당했던 시대의 무게와 야성이 담겨 있는가.

잊혀 가는 6·25전쟁의 참상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의 전쟁을 세계에 알렸던 젊은 여성 종군기자의 헌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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