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로 더 따뜻해지는 세상, 21살 8개월 봉사여행으로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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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바운드 여행객 1천 만을 넘어선 지금, 여행의 형태는 보고 듣는 것이 아닌, 체험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로 떠나는 봉사활동의 수요도 증가하고, 봉사 여행을 주관하는 단체도 늘고 있다. 최근 2개국에서 7개월 이상 봉사활동을 한 대학생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봉사와 나눔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이를 만나봤다.

# 평범한 그녀, 비범한 봉사를 꿈꾸다
1남 2녀 중 둘째, 한국기술교육대학에 재학 중인 전소라씨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21살의 대학생이다. 그러던 그녀가 지난 1월,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해온 봉사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때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많은 봉사단체와 연락하던 중, ‘오코보(오타루 코리안 볼룬티어)’와 ‘행심(행동하는 양심)‘ 이라는 봉사 단체를 알게 됐다.
우연일까? 비슷한 시기 교내 동아리에서 기업의 홍보를 주제로 한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게 됐고, 한 달 간의 인턴 생활 때문에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계획만 세우다가 끝나면 안 되잖아요, 우선 자리를 알아 본 후에는 서둘러 떠나고 싶었습니다”
인턴 활동이 끝난 직후, 그녀는 계획으로만 그치는 봉사가 되지 않으려면 빨리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많은 고민 후 그녀가 고른 곳은 눈의 도시 삿포로, 세계 3대 축제인 눈 축제의 서포터로 뽑히게 됐다. 출국 전, 행심을 통해 동남아 봉사활동까지 신청 했단다. 이때부터 그녀의 빡빡한 봉사 여행의 여정이 시작 됐다. 일본에서 그녀가 담당하게 된 곳은 북해도의 오타루 지역이다. 삿포로만큼 큰 규모의 축제는 아니지만, 그 곳에서도 거대한 설상과 조각 등이 제작되고 있었다.
“수천 톤의 눈을 트럭으로 나르는 장관은 평생 잊지 못 할 것 같습니다.”
마을 주민의 화합하는 모습과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감은, 그녀에게 ‘세계는 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는 교훈을 전해줬다. 계획보다 현지에 일찍 가게 돼 남들보다 일도 많이 하고 고생도 했지만, 20일가량의 약속 된 일정은 훌쩍 지나 2월 19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온 그 날, ‘필리핀 현지에 봉사자가 필요하니 연락 부탁한다’ 는 소식이 전소라씨에게 전해졌다. 당초 계획했던 곳은 캄보디아지만, 경험이 전무한 그녀에게 캄보디아 행은 허락되지 않았고, 대신 자리가 잡혀 있는 필리핀이 결정 된 것이다.
“처음엔 주변에서 많이 말렸어요, 학점도 걸렸고 치안도 좋지 않다는 곳에 왜 굳이 혼자가냐고 하더군요. 하지만 재미있게도 부모님 은 한 번도 저를 말리신 적이 없어요.”
한 번 생각한 일은 꼭 하고야 만다는 그녀, 너무 제멋대로 일지도 모르지만 지킬 것은 지키기 때문에 부모님도 믿고 보내지 않았을까?
취업과 미래에 대해 한창 진지하게 고민할 대학교 3학년, 그렇게 그녀의 6개월 일정의 필리핀 봉사 여행 일정은 시작됐다.
#내가 살아가는 길이 옳은 것일까?
안티폴로는 시에라마드레산맥 서쪽 기슭에 위치한 가톨릭교 성지로 1578년 건설됐다. 1626년 멕시코에서 가져와 이곳 성전에 안치한 ‘평화와 안전항해를 보살피는 성모 마리아’상이 기적을 행한다고 해서 관광객들이 종종 들르는 곳이다. 이름이 알려진 관광지라고 해도, 현지인들의 삶도 아름다울까.
“저를 비롯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필리핀에서의 봉사는 어땠냐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 대답한 답변이다. 그녀가 필리핀에서 생활한 곳은 안티폴로의 썸머빌, 마닐라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처음 공항에 내려서 자동차로 이동하는 동안, 마닐라의 모습에 ‘이곳에서 봉사를 할 것이 있기는 할까?’ 라고 고민 했다는 전소라씨. 잠시 후 펼쳐진 풍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쓰러질 것 같은 집들과 티셔츠 한 장에 조리를 신고 있는 사람들, 썸머빌의 첫 인상이었다.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목수를 생업으로 가지고 있지만, 일거리가 많지 않아 아이들 학비도 내지 못하는 집이 허다하다.
"길에서 노숙 과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부모들은 그런 모습을 방관하고 있고 학교를 보내려는 의지도 약하지요”
길에서 삶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낄 틈도 없이 첫날부터 일선에서 봉사를 했다. 이곳에서 6개월을 머물며 전소라씨가 한 일은 배식과 기초과목 교육이었다. 대부분의 빈곤한 가정이 그렇겠지만, 이곳 사람들도 하루하루를 먹고사는 극빈층이 대다수다. 아이들에게 배식을 하며 눈물을 흘린 적도 여러 번, 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가난도 빈곤도 모르는 맑은 눈에 힘을 얻었다고 한다.
기초 교육과목으로는 미술, 컴퓨터, 피아노, 한국어가 있는데, 전소라씨가 처음 맡은 과목은 미술이었지만 부족한 일손에 한 번에 여러 과목을 가르치기도 했다.
“많은 아이들이 무관심으로 마약과 매춘 등의 유혹에 빠지고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수업은 가르치기도 중요했지만, 가난 때문에 아이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함께 있어주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한다.
현지에 오래 있으면서 여행은 많이 했냐는 질문에 “단기 봉사자들과는 달리 장기 봉사자는 직원의 개념이라며 6개월 동안 많은 곳을 다니지는 못 했고, 이곳에 온 목적을 잊기 싫어 일부러 다니지 않았다” 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은 ‘한국에서의 삶이 행복한 것인가’ 였다. 당장 먹을 음식이 없는 환경에 사는 사람도 있는데 치장과 멋을 위해 돈을 쓰는 한국인의 모습이 이곳에서 낯설게만 느껴졌다고 한다.
지난 8월 23일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두 가지 영광의 상처를 얻었다. 대기 오염이 심각한 써머빌에서의 6개월은 그녀의 기관지를 혹사시켰고 결국 한국에 와서 천식 진단을 받아 1달 간 고생했다. 다른 하나는 이, 이제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이가 옮았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서 저도 모르게 이가 옮았더라구요. 미용실에 갔을 때 정말 창피했지만, 전후 사정을 들은 미용사가 많이 신경을 써줬어요”
이제 다 나았다며 괜찮다고 얼굴을 붉히는 그녀는 천상 21살의 여학생이었다.

자신에게 역마살이 있는 것 같다며 내년 1월에 중국 교환학생으로 한 달간 떠난다는 전소라씨는 여행업계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곳을 다니며 여행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확실한 것을 정하지는 못 했다고 한다.
봉사하는 삶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대학생, 그녀가 만든 여행 상품이라면 누구나 믿고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여행업계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