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밤, 쑥, 홍화, 쪽, 황토, 오베자, 조개 등 자연에서 나오는 염료를 이용해 색을 만드는 것을 ‘천연염색’이라 한다. 천연염색은 화학염료에 비해 채도가 높지 않아 화려해도 튀지 않는다. 또한 은은하고 소박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는 매력적이고 친환경적인 염색방법이다. 게다가 인체 친화적인 요소가 많아 최근에는 한복, 매듭, 노리개, 스카프, 넥타이, 쿠션, 베개, 이불, 옷, 커튼 등 여러 가지 생활소품에 아름다움까지 더할 수 있다. 하지만 대량생산이 어렵고 제한된 수요로 천연염색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홍루까 소장(사진. 전통천연염색연구소)은 그 중 쪽염색 연구가로 국내에서 가장 오랜시간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그의 작업실에서 천연염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오릉 근처에는 특별한 비닐하우스가 있다. 밖에서 보면 특용작물이나 원예작물이 자라고 있을 것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울긋불긋 자연으로 물든 천들이 빨래집게에 매달려 천천히 나부끼고 있다. 이곳은 홍 소장의 작업장 겸 야외강습실이다. 그는 토요일마다 북촌 문화센터에서 천연염색을 가르치고 주중에는 이곳에서 염색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천연염색 강의와 실습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날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천연염색 실습이 끝난 직후여서 밤피를 우려낸 냄새가 먼저 반겼다.
자리에 앉자마자 언제부터 천연염색에 관심을 갖고 일을 시작했냐고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조일순)께서 전통매듭장인이셔서 어릴 때부터 전통적인 것을 보고 자란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염색은 80년대 중반부터 어머니를 도와서 조금씩 하다가 90년부터 관심을 갖고 시작하게 되었죠.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97년 천안에서 일어났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염색 후 천을 널어놓고 평상에 누워서 담배를 피우는데 파란 하늘에 흔들거리는 색색의 천이 그렇게 곱고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어요.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그 충격은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일을 도우며 20년 동안 그 일을 해왔지만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거든요. 눈을 뗄 수가 없어서 한 참을 그렇게 바라만 보았습니다.”
홍 소장은 그 날 이후 염색에 빠지고 말았다. 아니 그의 표현을 빌리면 염색에 미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하루 24시간을 염색에 매달렸다.
그가 전통염색을 되살리기 위해 처음에 한 일은 쪽 염색이었다.
“70년대 당시에는 어머니가 쪽염색으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전역을 뒤져 찾아보았으나 씨앗이 없었어요. 결국 79년 일본까지 가서 쪽 씨앗 한스푼을 얻어와 쪽염색을 할 수 있는 윤병헌 씨에게 주었고 이것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어 쪽염색이 시작된 것입니다.”
홍루까 씨는 그 후 쪽 염색에 빠졌고 매일 반복되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해오는 동안 그는 무엇을 얻었을까? 힘든 고비는 없었을까? 궁금했다.
“없었어요. 매번 염색을 하기위해 쪽을 우려내고 천을 널고 할 때마다 설레 였으니까요. 천이 마르면서 어떤 색이 나올까 너무나 궁금했어요. 같은 열매와 같은 작업과정을 거쳐도 색은 달랐어요. 조금씩 차이가 있었거든요. 그게 너무나 신기한 거예요.”
홍 소장은 “그 설렘이 마치 신혼여행의 첫날밤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그렇게 자신의 손을 통해 나온 색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진다”며 웃는다.
자연이 주는 색은 감동을 주고 생명을 주기 때문에 자신은 평생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요즘 웰빙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천연염색이야말로 진짜 웰빙입니다. 가지, 잎, 뿌리, 열매 등은 실크, 삼베, 면에만 염색이 되기 때문에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항균과 탈취 기능도 있어요. 요즘엔 의학과 염색이 만나 아토피를 잡는 옷도 나왔습니다.”
천연염색에 대한 그의 자랑은 쉬지 않는다. 화제를 돌려 우리나라의 천연염색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환했던 얼굴이 잠시 굳어지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일제 때 쪽염색부터 천연염색 장인들이 모두 일본에 끌려갔고 우리는 값싼 화학염료로 옷을 해 입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정부차원에서 천연염색연구가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지원이 거의 전무하죠. 그러다보니 염색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일본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입니다. 문양의 경우 일본은 회화적인 기법을 사용하는 데 우리는 이제 겨우 중학생 수준이니까요.”
그는 “”우리의 전통염색이 발전하려면 국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장소와 세금, 유통지원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폭넓은 염색연구와 시장이 형성되어야 일본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루까 소장은 앞으로 자신의 뒤를 잇는 수제자가 나오길 희망한다. 그 꿈을 위해 그는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좀 더 많은 것을 제자에게 가르쳐 주려면 자신이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