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 옛 것 = ‘남대문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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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통의 남대문 역사와 함께 성장과 퇴보를 반복해 온 남대문 시장은 그 끈질긴 생명명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들의 발길을 ‘아직도’ 끌어 모으고 있다. 온통 최신식이 각광받고 판을 치는 요즘, 사람들을 사로잡는 남대문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이들과 옛것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남대문을 찾고 있는 그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

#알뜰살뜰 주부 9단 따라간 곳 ‘남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으로 가는 지하철역인 ‘회현’역부터 보다 싼 값에 질 좋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북적거린다. 그 주인공들은 역시 알뜰살뜰한 주부 9단들. 어떤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그 무리들에 휩쓸려 따라가 도착한 곳은 아니나 다를까, 남대문시장 입구다. 남대문 시장의 첫인상은 확실히 ‘다르다’ 다. 끝까지 살아남은 곳만의 특색 있는 끌림과 분위기가 기대했던 모든 것을 압도한다. 세상의 모든 시장들이 그렇듯 번쩍거리는 도시와는 차단된, 사람냄새 물씬 나는 남대문 시장의 분위기가 초행인데도 불구하고 몇 번 와 본 것 같은 데자뷰를 이끌어 냈다. 시장이라는 곳은 도시와는 달리 처음 온 사람들에게도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할뿐 결코 이질감을 주지는 않는다. 초입에서 눈에 띄는 상점이 가방가게라면, 남대문시장을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활개를 치는 상점은 다름 아닌 옷가게다. 대형 패션몰인 ‘메사’와 ‘굳엔굳’을 포함하면 남대문을 주도하는 상품 종류는 의류가 될 것이다. 특히 최근에 오픈한 메사는 지하 2층에서 지상 7층까지 9개 층으로 이뤄져 수입명품, 영캐주얼, 아동복, 남성복 등 다양한 상품구성으로 성별과 세대를 불문하는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서도 영캐주얼과 아동복매장은 디자이너 출신 우수 상인을 집중 유치해 ‘디자이너 벤처 존’으로 특화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일지라도 어떤 방향인지 1초도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 남대문 시장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의 일괄적인 발걸음이 놀랍기만 하다.

남대문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길 한가운데에 끝없이 줄지어 늘어선 노점상들이다. 늦은 오전 시간의 노점들은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라고 약속이나 한 듯 굵은 밧줄로 몸 전체를 꽁꽁 묶고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지런한 노점상들은 일렬로 늘어진 노점사이로 고개를 삐쭉 내밀고 부지런함을 꼿꼿하게 과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력에 흡족해 하는 마음이 얼굴에 떠오르는 것을 숨기지 않으면서.
남대문 시장의 초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상점들은 ‘결단코’ 가방 상점들이다. 시장의 모든 상점들처럼 규모가 매우 협소한 가방 상점들은 무리지어 있으면 광고효과가 있다는 것을 진작 깨우쳤을 것이다. 나름의 생존전략이 있는 가방 상점들이 그 곳에서도 살아 남기위한 방법으로 여행용 가방을 주로 파는 집, 핸드백을 주로 파는 집, 캐주얼 가방을 주로 파는 집으로 나뉘거나 한곳에 모든 가방을 모조리 파는 집으로 나뉘었다. 웬만한 가방의 가격대는 1만원에서 2만원 선으로 이래서 남을까 싶을 정도다.

많은 쇼핑자들을 동대문이나 명동에 빼앗기고 있다는 위기감이 만들어낸 현대적 요소임이 분명했다. 또 특이한 점은 기존 패션몰에서는 볼 수 없는, 입점 상인이나 판매원에게 디자인과 패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스쿨’과 상인과 외국인을 돕는 ‘외국인 구매상담소’가 들어섰다는 점이다. 600년을 살아남은 곳의, 결코 포기하지 않는 변화의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넘쳐나는 볼거리와 먹거리의 대향연

대형 쇼핑몰에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었지만, 남대문을 찾는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넘쳐나는 옷가게에 한눈을 팔고 있었다. 가방의 생존 전략처럼 원피스만 파는 집, 운동복만 파는 집, 아동복만 파는 집 등으로 나뉘어져 이었는데, 아직 철이 아닌 모피 상품만 판매하는 상점이 독특했다. 이 더운 여름의 끝자락에 모피라니, 어디 가당키나 한가. 그러나 이런 생각과 동시에 슬쩍 뇌리를 스치는 생각은 ‘겨울에 사는 것보다야 싸겠지’ 와 ‘지금 장만해놨다가 겨울에 입으면 되겠다’ 였다. 모피 상점 주인의 수준 높은 손님 공략은 땀이 주르륵 흐르는 여름철에 더욱 그 빛을 발한다. 또 심지어 아기자기한 커피숍 앞에서도 가판을 내어 놓고 옷가지들을 팔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남대문 시장의 주요 고객이 주부 9단임이 명백한 가운데서도 여기저기에서 낯선 언어들의 대화가 들려왔는데, 특히 눈에 띄는 외국인은 일본인이었다. 일본인은 명동, 동대문, 심지어 백화점 까지, 한국의 유명 쇼핑공간이라면 어딜 가나 있다. 자신의 개성을 패션으로 스스럼없이 드러내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은 정녕 패션을 위해 태어난 민족이란 말인가. 비약적인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멀리서도 ‘우리는 패션을 사랑하는 일본인’ 이라는 냄새를 폴폴 풍기는 그들은 작은 상점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꼼꼼하게도 살펴봤다. 심지어 아동복 매장을 기웃거리면서 ‘어디 쓸 만한 물건이 없나’ 열심히도 들여다본다. 손님을 끌기위해 각설이 분장을 하고 떠들썩하게 노래를 부르는 장사꾼의 모습은 그들의 눈에도 즐겁고 정겨웠으리라.
남대문 시장의 특징 또 하나, 바로 간이 환전소다. 환전소 앞에는 영어, 일본어, 한자로 이곳이 바로 ‘환전소’임을 밝히고 있었다. 쇼핑 아이템이 넘치는 이곳에서 외국인들이 설령 그저 관광의 목적으로 왔어도 빈손으로 그냥 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간파한 결과물임이 분명했다.
만약 쇼핑을 초인적인 힘으로 물리치는데 성공했더라도, 그 넘쳐나는 먹거리들의 유혹을 과연 뿌리칠 수 있을까. 남대문 시장에 들어서서 얼마 걷지 않으면, 텔레비전에 소개됐던 유명한 잔치국수집이 보인다. 방송이력을 현수막으로 선전하고 있는 그곳은 한눈에 봐도 이곳 명물임을 짐작케 했다. 잔치국수 하나를 팔기위해 20년 동안 우려낸 사골을 내어 놓는 다는 ‘일류분식’의 작은 식당 안에는 아직 식사할 시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꽉 차있다. 식당 안 모든 메뉴의 가격은 유명세에도 겸손한 3천원에서 5천원 선으로 부담이 없다.

남대문 시장의 거리가 정돈되고 큰 쇼핑몰이 들어서고 있는 가운데, 이곳이 예전에는 정으로 넘쳐났던 재래시장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것이 바로 먹거리들이다. 주로 시장의 대표 음식인 잔치국수가 영세한 식당들의 주요 메뉴이며, 직접 만들어 튀겨내 온 도넛과 꽈배기는 늘어서 있는 식당들 앞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주전부리다.

또 만두를 직접 빚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식당은 ‘손만두’라는 식당의 철칙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손님들의 발길을 잡고 있었다. 그 투명성과 장인정신을 모토로 하는 식당에 묘한 끌림을 느끼며, 식당의 주요 메뉴인 ‘얼큰이 해물 칼국수’를 주문했다. 그리고 감동을 자아냈던 1인분에 5개하는 손만두와 함께. 그러나 칼국수가 나오기 전, 먼저 등장한 손만두 5개가 나오면서 두 가지 메뉴를 한꺼번에 시킨 것은 실수였다는 것이 명백해 졌다. 다른 식당에서 간식처럼 먹던 그 만두 5개가 아니라 메뉴판에 성실하게 적힌, 진짜 1인분에 만두 5개였던 것이다. 칼국수가 나오기 전 에피타이저로 먹으려 했던 계획이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엄청난 양의 칼국수가 등장했다. 정말로 ‘얼큰한’ ‘해물’ ‘칼국수’ 였다. 어찌나 정직한 음식의 모습에 식사를 하면서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먹거리도 진화하고 있었다. 명동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식거리 잡채스틱부터 핫도그, 슬러시 같은 것들이 깔끔한 노점에서 깔끔하게 차려 입은 노점주인들에게서 판매됐다.

또 시장 주변에는 실제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의 ‘한국은행화폐박물관’이 도로 건너 맞은편에 있다. 남대문 시장과 묘하게 어울리는 건물이다. 남대문 시장의 진면목을 몸소 느끼고 정직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 뒤, 박물관이 주는 역사의 생명력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