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은 언제 내란이 되는가
헌법이 예정한 비상권력과 형법상 내란죄의 성립 한계
[미디어원=이정찬 발행인]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한국 사회의 담론은 급격히 단순화됐다. 계엄이 선포되었고, 그 자체가 곧 내란이라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특검은 이 등식을 전제로 수사를 진행했고, 야당 지도부와 일부 정치 세력은 “계엄 = 내란”이라는 구도를 기정사실처럼 반복해왔다.
그러나 과연 이 단순한 등식은 법률적으로 성립하는가.
이 글은 정치적 평가를 다루지 않는다. 오직 헌법과 형법, 그리고 축적된 판례의 기준 위에서, 현직 대통령의 계엄 선포라는 행위가 언제, 어떤 조건에서 형법상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를 차분히 살펴보고자 한다.
내란죄는 결과범이 아니라 목적범이다
형법 제87조는 내란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때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 조문에서 핵심은 세 가지다.
① 목적, ② 수단, ③ 결과가 아니라 행위 구조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내란죄를 목적범·집단범·폭동범으로 해석해왔다. 단순한 위헌적 행위나 권한 남용, 심지어 중대한 헌법 위반만으로는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반드시 국헌 문란 또는 국토 참절이라는 목적이 입증돼야 하며,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폭동, 즉 조직적이고 실질적인 폭력 행사 또는 그에 준하는 위력이 존재해야 한다.
대법원은 “국헌 문란이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의 기능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폭동에 대해 “다수인이 집단적으로 폭행·협박을 행사해 국가의 통치 기능을 현실적으로 마비시킬 정도의 실력 행사를 하는 경우”라고 판시해왔다.
여기서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이 있다.
헌법이 예정한 권한 행사 자체는 원칙적으로 ‘국헌 문란’에 해당하지 않는다.
계엄은 헌법이 예정한 권한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77조는 계엄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동시에 국회의 통제와 사후 해제 절차를 전제로 한 조건부 비상권력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헌법은 계엄을 ‘예외적이지만 합법적인 제도’로 규정하고 있다. 계엄 선포 자체는 위헌·위법 행위가 아니라, 헌법 질서 내부에 존재하는 장치다.
따라서 계엄을 논할 때의 출발점은 분명해야 한다.
계엄은 원칙적으로 합헌적 권한 행사이며, 그 자체로 범죄가 될 수 없다.
“잘못된 계엄”과 “내란”은 다른 문제다
특검과 반계엄 진영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논리 구조를 가진다.
① 계엄 선포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② 따라서 계엄은 위헌적이다
③ 위헌적 계엄은 곧 국헌 문란이다
④ 그러므로 내란죄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법률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첫째, 위헌 또는 위법 판단과 형사 범죄 성립은 전혀 다른 문제다. 헌법 위반이 곧바로 형법상 범죄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내란죄처럼 국가 존립과 직결된 중대 범죄는 극도로 엄격한 구성요건 해석이 요구된다.
둘째, 설령 계엄 선포에 대한 판단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 판단 착오 자체가 곧바로 국헌 문란의 목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란죄는 결과범이 아니라 목적범이다. 국가 기능을 전복하거나 무력화하려는 목적이 입증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
셋째, 현실에서 계엄은 국회의 요구에 따라 즉시 해제되었고, 헌법이 예정한 통제 절차는 실제로 작동했다. 국가기관의 기능이 장기간 마비되거나 헌정 질서가 현실적으로 전복된 사실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 점은 내란죄 구성요건 판단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폭동은 어디에 있었는가
내란죄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면서도 종종 간과되는 것이 폭동 요건이다.
대법원 판례는 폭동을 단순한 물리력 행사로 보지 않는다. 다수인이 조직적으로 국가 권력에 대항해, 국가의 통치 기능을 현실적으로 마비시킬 정도의 실력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는 행위를 요구한다.
이번 사안에서 이 요건은 충족되었는가.
무장한 다수의 집단이 국가기관을 점거했는가.
국회의 기능을 물리적으로 봉쇄했는가.
헌법기관을 강제로 해산시켰는가.
현재까지 공개된 사실만으로는, 형법이 요구하는 폭동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군 병력의 이동이나 경계 강화만으로 폭동이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태도다.
대통령의 형사책임과 헌법적 지위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재임 중에는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 형사 소추되지 않는다. 이 조항은 대통령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특혜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역설적이다.
대통령의 행위를 내란으로 규정하려면, 일반인의 범죄 판단보다 훨씬 더 엄격한 법리 검증이 요구된다. 헌법이 부여한 고유 권한 행사마저 형사처벌의 문턱으로 끌어올린다면, 그 순간 헌법 질서 자체가 불안정해진다.
정치적 책임과 형사 책임은 다르다
계엄 선포가 정치적으로 정당했는지, 국정 판단으로 적절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 평가는 국민과 역사, 그리고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형법은 다르다. 형법은 의도와 구조, 그리고 법이 요구하는 요건이 충족되었는지를 묻는다. 계엄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계엄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내란죄를 구성하는 것은 형법의 최후성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결론: 계엄은 자동으로 내란이 되지는 않는다
결론은 분명하다.
계엄은 헌법이 예정한 권한이다.
잘못된 계엄 판단이 곧바로 내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란죄는 목적·폭동·행위 구조가 모두 입증될 때만 성립한다.
이 기준이 흐려지는 순간, 내란죄는 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낙인이 되고, 헌법은 권한이 아니라 위험이 된다. 그래서 이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법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 연재는 다음 편에서 계엄 제도의 역사와 주요 판례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왜 계엄은 위험한 권한이면서도 동시에 헌법의 울타리 안에서 엄격히 해석되어야 하는 제도인 지를 계속해서 짚어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