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무게를 잃은 정치… “말은 능력이 아니라 책임이다”

(미디어원)말은 능력이 아니라 책임이다.
정치권에서 흔히 말하는 ‘대언론 창구’, 즉 공보 시스템은 대변인 제도, 메시지 관리(Message discipline), 미디어 대응 프로토콜(Media protocol), 그리고 넓게는 PR(퍼블릭 릴레이션즈) 통제 체계를 의미한다. 특히 미국 정치나 대기업에서는 이것이 거의 군대 수준으로 통제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개인 의원이라도 공식 입장과 다른 발언을 하면 즉시 경고를 받는다. 기업 임원 역시 PR 승인 없이 인터뷰하는 것은 금지된다. 기자 질문에도 ‘No comment’가 공식 전략으로 사용된다. 모든 발언은 조직의 전략과 일치해야 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말은 정보가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는 주가를 움직이고, 외교 관계를 바꾸며, 선거 판세를 흔들고,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통제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흔히 말하는 ‘설화(舌禍)’는 가장 오래된 위험 요소이기도 하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를 경고해 왔다. 공자의 『논어』에는 “군자는 말에 신중하고 행동에 민첩하다(君子欲訥於言 而敏於行)”는 구절이 있다. 『중용』에서도 “한마디 말이 나라를 흥하게 하고, 한마디 말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했다.
서양에서도 같은 의미의 격언이 있다. “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en.” 말은 은이지만 침묵은 금이라는 뜻이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언제 말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진실 그 자체보다 시점, 대상, 맥락, 그리고 파장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위대한 정치인일수록 말수가 적었다.
박정희, 드골, 처칠의 공통점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한 번 말하면 무게가 있었다.

지금 시대는 반대로 말의 양은 많고 무게는 가벼운 시대가 됐다.
정치는 이제 행동이 아니라 ‘노출 경쟁’이 되었기 때문이다. TV 출연, 유튜브, 인터뷰, SNS 등에서 존재감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 결과 정치인이 아니라 ‘출연자’가 되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말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말은 필요할 때, 필요할 사람에게, 필요할 만큼만 해야 한다. 그 이상은 정보가 아니라 소음일 뿐이다.
결국 정치에서 말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침묵의 무게를 잃은 정치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