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찬 기자 ㅣ 미디어원
법은 권력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그것이 국가를 지탱하는 유일한 상식이다.
지난 4월 9일, 이스라엘 법원은 국가 비상사태가 해제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 재판을 다시 열겠다고 밝혔다. 그 뒤 네타냐후 측은 안보 상황을 이유로 증언 연기를 요청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연기 신청은 피고인의 권리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권리 행사조차 법원의 문 안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총리라 해도 법정 밖에서 결론을 가져갈 수 없고, 자신의 사정을 법률 언어로 설명하며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법치다. 강한 국가는 권력이 센 나라가 아니라, 가장 센 권력조차 법의 절차 안에 묶어두는 나라다. 이스라엘이 보여준 것은 네타냐후 개인의 유불리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거대한 충격 속에서도 사법 시스템이 제자리를 찾아 다시 움직인다는 국가 운영의 근육이었다.
그래서 이 장면은 한국 정치의 민낯을 더욱 선명하게 비춘다. 대한민국은 전시국가도 아니고 국가 비상사태 아래 놓여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정치 권력과 맞닿은 사건만 가면 법의 시간은 이상하리만치 늘어진다.
재판은 단순히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해설 대상으로 바뀌고, 수사는 법률 판단 이전에 진영 논리 속에서 해체되며, 판결은 선고되기도 전에 정당성과 권위를 의심받는다. 특히 문제의 중심에는 결국 한 사람의 이름이 놓여 있다.

여의도의 방패는 과연 누구를 위해 세워졌는가. 추상적인 제도 방어도 아니고, 일반론적 사법 개혁도 아니다. 지금 여의도를 둘러싼 수많은 언어와 행동, 공방과 입법의 그림자는 결국 이재명이라는 이름 하나를 향해 모여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사건이 지난해 대선 직후 무기한 연기되면서 한국 사회가 받은 인상 역시 바로 그것이었다. 법이 권력자를 따라 움직인다는 인상, 혹은 최소한 그렇게 보이게 만든 정치의 실패 말이다.
물론 피고인의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절차는 엄격해야 하고, 재판은 정치적 감정이 아니라 법률과 증거에 의해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권리 보장과 제도 흔들기는 전혀 다른 문제다.
법정 안에서 자신의 사유를 제출하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과, 법정 밖에서 정치적 세력을 총동원해 재판의 권위와 제도 자체를 압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차이를 외면하는 순간 법치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네타냐후는 연기를 원해도 법원에 신청서를 낸다.
그런데 여의도에서는 너무 자주, 너무 노골적으로 정치가 법원을 향해 먼저 해석을 던지고 압박을 건다. 법적 문제는 정치적 음모로 번역되고, 사법 절차는 지지층 결집의 연료가 되며, 제도에 대한 존중은 언제나 진영의 유불리 뒤로 밀린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의도는 정말 법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가, 아니면 법치를 방패 삼아 특정 권력자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는가.
이스라엘과 한국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갈라진다. 이스라엘에서는 총리도 법의 지배를 받는다. 그는 연기를 신청할 수는 있어도, 판결이나 절차를 정치적 명분만으로 정지시킬 수는 없다.
반면 한국 정치에서는 너무 많은 순간, 법이 사람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 지도자의 사법 리스크 하나가 국회 전체를 빨아들이고, 민생과 정책, 국가 운영의 우선순위까지 뒤틀어놓는다.
대통령 개인의 법적 부담이 곧 진영 전체의 과제가 되고, 그것을 막아내는 일이 마치 시대적 대의인 것처럼 포장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듯한 언어를 덧칠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특정인을 위한 방패는 결코 법치의 방패가 아니다. 그것은 법치를 가장한 정치적 엄호일 뿐이다.
지도자의 자격은 권력을 휘두르는 힘에 있지 않다. 법 앞에 설 수 있는 담대함에 있다.
법치를 믿는 지도자라면 법원의 문 앞에서 자신을 예외로 만들어달라고 정치 전체를 동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 안에서 다투고, 불리한 절차까지도 감수하며, 국가 시스템이 자신보다 크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런 점에서 텔아비브의 법정은 지금 한국 정치에 아주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저 나라에서는 총리도 법원 안에서 말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정치가 먼저 법원 밖에서 결론을 내려 하는가.
왜 저 나라는 연기 신청조차 제도의 정상 작동으로 읽히는데, 우리는 사법 절차 하나하나가 늘 정치적 흥정처럼 보이게 되었는가.
법치는 작동하지 않을 때 이미 법치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법치는 특정 권력자를 위한 방패로 쓰이는 순간 썩기 시작한다. 지금 여의도의 방패가 정말 국민 전체를 위한 방패인지, 아니면 결국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한 방패인지 국민은 보고 있다.
텔아비브의 재판 재개 소식은 그래서 단순한 외신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치권을 향한 경고장이다.
법은 지연될 수 있다. 그러나 멈춰 서서는 안 된다.
권력은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법 위에 숨을 수는 없다. 이제 여의도는 답해야 한다. 당신들이 지키는 것은 법치인가, 아니면 피고인 이재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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