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호남이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사실과, 2026년 현재 광주·전남이 여전히 ‘낙후지역’이라는 주장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면 지금의 숫자를 보자.
이만재 기자 ㅣ 미디어원
도로부터 보자
국토교통부 도로통계의 2025년 말 기준 시·도별 도로보급률을 보면, 국토 면적과 인구를 함께 고려한 ‘국토계수당 도로연장’은 광주가 2.31이다. 부산은 2.48, 울산은 2.40, 대구는 1.62다. 도 단위에서는 전남이 2.33, 경남이 2.29, 경북이 1.99다. 이 지표만 놓고 보면 전남의 도로보급 수준은 경남이나 경북보다 낮지 않다.
도로 전체 연장도 전남 1만929㎞, 경북 1만3524㎞, 경남 1만3313㎞다. 면적이 큰 경북의 절대 연장이 더 길 뿐, 면적과 인구를 함께 보정한 지표에서는 오히려 전남이 앞선다.
물론 이 숫자가 전남의 교통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뜻은 아니다. 도로연장이 충분해도 지역 간 이동시간이나 철도 접근성, 생활권 연결성은 별개의 문제이고, 전남 서남부를 비롯해 더 확충해야 할 교통망도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의 광주·전남을 통째로 ‘도로에서 소외된 지역’이라 규정하는 것 역시 지금의 인프라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말이다. 호남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순천완주고속도로, 광주대구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이미 권역을 촘촘히 연결하고 있고, 호남고속철도도 서울과 광주송정·나주·목포를 잇는다.


경제지표가 더 흥미롭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지역소득 통계에서 전국 1인당 GRDP는 약 4,948만원이었다. 울산이 약 8,519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전남은 약 5,918만원으로 전국 4위였다. 경북은 약 5,230만원, 경남은 약 4,655만원이었다. 광주는 약 3,768만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낮았지만, 부산(약 3,709만원)이나 대구(약 3,137만원)보다는 높았다. 같은 영남 안에서도 울산과 대구의 1인당 GRDP는 2.7배 가까이 벌어진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 대한민국의 경제격차는 ‘영남 대 호남’이 아니라 ‘강한 산업을 가진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격차로 설명하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전남의 높은 GRDP도 같은 맥락이다. 여수의 석유화학, 광양의 철강·항만처럼 대규모 자본집약 산업이 있기 때문에 지역 안에서 만들어지는 부가가치 자체가 크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봐야 한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돈과 그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 돈은 같지 않다.
2024년 1인당 개인소득은 전국 평균이 약 2,782만원이었다. 광주는 약 2,778만원으로 전국 6위, 전남은 약 2,680만원으로 전국 8위였다. 부산은 약 2,616만원, 대구는 2,578만원, 경남은 2,506만원, 경북은 2,486만원이었다.
이 수치가 중요하다. 전남은 1인당 GRDP가 전국 4위인데 개인소득은 8위로 떨어진다. 지역에서 생산된 부가가치가 그대로 주민 지갑으로 흘러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반대로 광주는 GRDP가 전국 평균에 못 미치지만, 1인당 개인소득은 전남보다 높고 부산·대구보다도 높다.
그러니 전남의 높은 GRDP만 들고 “호남은 이미 부유한 지역”이라 말하는 것도 틀리고, 낮은 지표 몇 개만 골라 “호남은 여전히 국가에서 버림받았다”고 말하는 것도 틀린다. 지역경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재정도, 인구도 다른 이야기를 한다
재정도 마찬가지다. 2026년 당초예산 기준 재정자립도는 광주 38.19%, 전남 26.77%다. 부산은 41.41%, 대구는 38.55%, 울산은 44.34%, 경남은 31.05%, 전북은 23.32%다. 광주는 부산·울산보다는 낮지만 대구와 비슷한 수준이고, 전남은 광역도 가운데 재정 기반이 튼튼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 역시 한쪽 주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전남은 대규모 기간산업을 갖고 있고 1인당 생산액도 높지만, 지방정부의 자체 재원 기반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결국 생산 규모와 주민소득과 지방재정은 서로 다른 지표이며, 따로따로 봐야 한다.
인구를 보면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2025년 3분기 호남권에서는 3,632명이 순유출됐다. 그중 20대 순유출만 3,610명이다. 지역별로는 광주 1,657명, 전남 1,499명, 전북 476명이 빠져나갔다.
특히 20대 유출은 인구감소 통계 한 줄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도로가 없어서가 아니다. 고속철도가 없어서도 아니다. 전남에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있고 광주에는 광역도시 인프라가 있다. 그런데도 젊은 층은 빠져나간다.
그렇다면 문제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산업은 있는데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는 충분한가. 지역 대학을 졸업한 인재가 머물 만한 기업과 직종이 있는가. 광주와 전남의 산업이 새로운 기업과 서비스업, 연구개발, 고급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내는 생태계로 이어지고 있는가. 지금 호남이 마주한 진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최근 성장률 역시 지역을 영구적인 ‘승자’와 ‘피해자’로 나누는 설명과는 맞지 않는다. 2024년 실질 GRDP 성장률은 울산과 전남이 각각 3.4%로 높은 편이었고 대구는 -0.8%였다. 반면 2025년 3분기에는 호남권 GRDP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 감소했고, 전남은 3.6% 감소했다. 지역경제는 산업경기와 투자, 수출, 건설경기에 따라 계속 움직인다. 한 해의 숫자로 지역의 운명을 규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의 광주·전남은 무엇인가
‘낙후지역’이라는 한 단어로는 설명이 안 된다. 도로와 고속철도는 잘 들어서 있다. 호남여수와 광양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석유화학·철강·항만 산업이 있다. 나주에는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를 비롯한 에너지 공공기관, 그리고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가 모여 있다.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도 뚜렷하다. 전남은 높은 생산액에 비해 주민에게 돌아가는 소득과 지방재정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광주는 대규모 제조업 기반이 충분히 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청년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이것이 현재의 광주·전남이다. 그리고 이 현실은 “호남은 잘산다”는 주장도, “호남은 지금도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주장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문제의 중심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도로와 철도와 산업시설을 끌어오는 것 자체가 과제였다. 지금은 이미 들어와 있는 SOC와 산업시설이 주민소득과 양질의 일자리, 기업 생태계, 청년 정착으로 얼마나 이어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됐다.
그래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호남은 아직도 소외됐는가”가 아니라, “이미 갖춰진 산업과 SOC를 어떻게 스스로 성장하는 산업생태계로 연결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과거의 부족을 바로잡기 위한 국가 지원은 여전히 필요할 수 있다. 지역의 구조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균형발전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인프라가 구축되고 대규모 국가산업과 공공기관까지 들어선 뒤에도, 모든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을 ‘과거의 소외’에서만 찾는다면 처방은 언제나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 국가가 더 투자하고, 더 지원하고, 더 배려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이제는 그 요구 자체를 검증해야 할 차례다. 균형발전을 위한 추가 지원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그리고 어느 선을 넘으면 다른 지역이 역차별로 느끼기 시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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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서 그 경계를 따져본다.
호남 소외론은 망국병인가③ 균형발전인가, 역차별인가…800조 반도체부터 입시 특례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