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크라이나 대사 소환 결정으로 정부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자국 대사를 불러들이는 초강수를 뒀다. 북한군 포로 송환을 둘러싼 비공개 합의 공방이 발단이었다. 우크라이나 측의 사과 취지 메시지에도 정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사이 한국 항만을 거쳐 러시아로 향한 대규모 연료 운송 의혹까지 불거졌다. 외교적 체면을 세우기 위해 감수한 대가가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지 따져볼 때다.

외교부는 10월 8일 박기창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9월 2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과 관련한 합의를 공개한 지 보름 만이다.

정부는 비공개로 유지해야 할 외교적 협의 내용이 일방적으로 공개됐다며 반발했다. 9월 28일에는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안드리 베쉬킨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대리를 초치해 항의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사과 취지의 메시지까지 전달했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2008년 이후 18년 만에 외교적 항의를 위한 대사 소환이라는 강경 카드를 꺼냈다.

문제는 상대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라는 사실이다.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이 한반도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군의 실전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협력 상대국과 외교적 충돌을 선택했다.

英 가디언 폭로… 한국 항만은 러시아 연료 공급의 통로였나

외교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영국 가디언은 10월 6일 한국 항만을 거쳐 러시아로 향한 대규모 석유제품 운송 실태를 보도했다. 가디언이 선박자동식별장치(AIS)와 항만 기록 등을 분석한 결과, 7월과 8월 두 달 동안 17만 6000톤 이상의 연료가 한국 항만에서 출발해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운송됐다. 유조선 7척이 14차례 운항했으며, 이 가운데 최소 3척은 서방의 대러 제재 대상 선박으로 지목됐다.

일부 선박은 여수 앞바다에서 해상 환적을 거쳤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제재 대상 유조선들이 일본이나 싱가포르를 목적지로 신고한 뒤 실제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는 의혹이다.

정부는 해당 석유제품이 국내 대러 수출통제 품목에 해당하지 않아 한국 항만에서 선적한 행위 자체는 국내법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논란의 본질은 연료의 원산지나 국내법 위반 여부에만 있지 않다. 서방이 제재하는 선박들이 한국 항만을 이용해 러시아에 연료를 공급하는 동안 우리 정부의 감시망이 제대로 작동했는지가 핵심이다. 전쟁 상대국 우크라이나에 공개 사과를 요구하며 대사까지 소환한 정부가 정작 러시아로 향하는 제재 선박의 항만 이용을 얼마나 철저하게 통제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았다.

사과의 수준을 따지다 외교의 무게를 잊었나

조현 외교부 장관은 10월 6일 국회에서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으로부터 사과의 말이 포함된 메시지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다만 정부가 기대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정부는 비공개 합의 위반에 항의할 수 있다. 외교적 신뢰가 훼손됐다면 책임 있는 설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항의의 정당성과 대응의 적절성은 다른 문제다. 전쟁 중인 국가의 대통령에게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상대국 외교장관의 사과 취지 메시지마저 충분하지 않다며 대사를 불러들이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더구나 안철수 의원은 국회에서 정부가 주장하는 비공개 합의를 입증할 문서나 회의록의 존재를 따져 물었다. 외교적 충돌의 출발점이 된 합의의 구체적 내용조차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가장 강력한 외교적 항의 수단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다. 대사 소환은 단순한 인사 조치가 아니다. 상대국에 양국 관계가 중대한 갈림길에 놓였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다. 전쟁 중인 키이우에서 최고위 외교 책임자를 불러들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무겁다.

감정이 삼킨 외교… 국가가 떠안을 세 가지 청구서

이로 인해 국가가 떠안을 청구서는 명확하다. 첫 번째는 대북 군사정보다. 우크라이나 전선은 북한군이 현대전에서 어떤 전술을 구사하고, 북한산 무기가 실제 전장에서 어느 정도의 성능을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현장이다. 북한군 포로의 진술과 실전 자료는 한국의 대북 군사전략을 보완할 수 있는 정보 자산이다. 이처럼 중요한 협력 상대국과 외교적 신뢰를 훼손하면서까지 공개 사과를 관철하려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지 의문이다. 대사관이 문을 열고 있다고 해서 최고위 외교 채널의 위축이 갖는 전략적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는 서방 동맹국의 신뢰다. 한국 항만을 통한 대러 연료 운송 의혹이 국제사회에 제기된 시점에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을 더욱 키웠다. 정부가 제재 이행과 관련한 의혹을 얼마나 투명하게 규명하고 서방 국가들과 공조하느냐에 따라 국제적 신뢰가 달라질 수 있다.

세 번째는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이다. 우크라이나 재건 수요는 국제적으로 막대한 규모로 추산된다. 한국 기업들도 교통·전력·주택·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기회를 모색해 왔다. 전쟁이 끝난 뒤 재건사업은 단순히 기술과 자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전쟁 기간 어느 나라가 신뢰할 만한 협력 상대였는지도 중요한 외교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지금의 갈등이 장기화한다면 한국 기업의 사업 기회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외교는 통치자의 체면을 지키는 수단이 아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비공개 합의 공개가 외교적 신뢰를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가 설명해야 할 것은 상대국의 잘못만이 아니다. 대사 소환이라는 결정으로 대한민국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북한군이 러시아를 지원하며 실전 경험을 쌓는 동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립보다 치밀한 정보협력과 외교적 영향력이다. 우크라이나의 잘못을 따지는 일과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는 일은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그 두 가지를 대립시키는 선택을 했다.

외교는 통치자의 사적 분노를 투사하는 공간이 아니다. 국가 시스템이 최고 권력자의 자존심을 방어하기 위해 국익의 기본 축을 허무는 사병(私兵)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자존심은 상대국의 공개 사과를 받아내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국익을 지켜내는 데서 증명된다.

정부가 지키려 한 것은 외교적 체면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으로 위험에 놓인 것은 북한군 정보협력, 서방의 신뢰, 그리고 전후 재건이라는 대한민국의 전략적 기회다. 그 청구서는 대통령실이 아니라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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