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도 까도 미담만 나오는 사내의 첫 연설문을 듣는 순간

올 1월 23일 윤 대통령 탄핵 정국 가운데 조기대선설이 살짝 흘러나오면서 일극 체제의 이재명 대표와 깜짝 양자 대결에서 1위를 차지한 인물이 있었다. 김문수 46.4% vs 이재명 41.8%였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잊힌 인물 ‘김문수’, 우리의 기억에는 “나 도지사 김문수인데”라는 갑질 기억밖에 없다. 어느 날 김문수는 핸드폰으로 남양주 119상황실에 전화를 건다. 경기지역 119 총대장이기 때문이다. 제복과 유니폼의 차이는 단 하나다. 제복에는 반드시 계급과 성명이 달린 명찰이 있고, 유니폼에는 그런 것이 없다. 관등성명이다. 김문수가 관등성명을 밝혔듯이, 119상황실 대원도 반드시 관등성명을 대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다. 김문수는 몇 번이나 관등성명을 대었다. 그러나 119상황실 대원은 관등성명이 없었다.

좌파들은 물고 늘어졌다. “갑질이다.” 그렇게 그는 전 국민에게 갑질 도지사가 되어 잊혀져 갈 무렵, 박근혜 탄핵 때 홀로 탄핵을 막겠다고 광화문 광장으로 뛰어든다.

야인처럼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늑대처럼 그렇게 누가 관심을 가지든 말든 자신이 옳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그렇게 황야에 내버려졌다. 세간의 관심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다가 혜성처럼 등장한 기억이 ‘차기 대권후보 1위 김문수’, 그렇게 좌파들의 서슬 시퍼런 내란 선동 비상계엄 사태에서 그를 다시 불러낸 것은 국민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데이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발견한 동영상이 “박정희 대통령 41주기 추도사”라는 제목이 달린 반삭 머리의 늙은 투사 김문수! 중년의 사내인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늙은 투사의 고해성사였다. 고3 때 당신의 3선 개헌을 막겠다고 데모하던 날 무기정학을 당했고, 사회주의혁명을 꿈꾸며 한일공업으로 출근하던 날 당신이 죽어 기쁨으로 가슴 두근거렸고, 경부고속도로가 히틀러의 아우토반처럼 독재 강화의 수단이라며 무조건 당신을 반대하면서 드러누웠고, 마이카시대를 외치는 당신에게 우리나라는 자동차 제조 기술도, 자본도, 시장도 없는 후진국이라면서 조목조목 반대했는데, 내가 도지사를 해보니 내 생각이 모두 틀렸다고 양심 고백을 한다.

내가 눈물을 찔끔거린 대목은 이것이 아니었다. 고3 시절 사회주의혁명을 꿈꿀 때부터 당신을 가장 미워했는데, 정작 내 꿈을 이룬 것은 당신이라면서, 그 꿈은 바로 “배부르게 먹는 꿈, 건강하게 오래 사는 꿈, 전기를 마음껏 쓰는 꿈, 물을 마음껏 쓰는 꿈”이었다면서 “당신의 무덤에 침을 뱉은 그 어떤 자도 당신을 뛰어넘지 못했다”라면서, 사회주의에 물들어가는 이 조국을 반드시 막겠다고 한다.

군집성 동물에게는 ‘처음’이라는 ‘각인(imprinting)’ 심리가 있다. 오리는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동물이 자신의 어미가 되며, 송아지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습성은 우리 인간에게도 있어 여전히 첫사랑, 첫 직장, 첫 집은 기억하지만, 두 번째 사랑, 두 번째 직장, 두 번째 집은 기억하지 않는다.

김문수에게는 그런 각인이 있다. 단 한 줄의 홍보도 없던 사람이 단숨에 대선 후보 1위를 차지한 기억에는 ‘어떻게든 억지를 써서라도 곡학아세해야만 되었던 과거 후보’에 비하여 ‘까도 까도 미담만 나오는 그런 사내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

글: 페이스북

윤원일/ 칼럼니스트

사진은 추도사(202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