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사의 극명한 두 장면은 똑같은 국제무대에서 벌어졌다.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짧게 악수하고 인사를 나눈 자리였다.
당시 국내 야당과 언론은 “외교 참사”라며 거세게 공격했다.
다른 하나는 올해 이재명 대통령이 같은 유엔 총회에 참석했을 때 벌어진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최한 리셉션에 145개국 정상과 외교 사절이 참석했지만, 한국 대통령은 불참했다. 기조연설 자리에는 퍼스트레이디 좌석이 마련됐지만 김혜경 여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순차 통역조차 무시한 채 한국어만 던지고 단상에서 내려와버린 사건은 국제무대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외교적 촌극’이었다. 그런데도 국내 언론의 반응은 조용했다.
윤석열 대통령 사례를 보자. 유엔 회의 참석 차, 수많은 정상들 속에서 1분 남짓 바이든 대통령과 인사를 나눈 장면은 “홀대”라는 제목으로 포장돼 대대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당시에도 조문객이 워낙 많아 줄을 서는 상황에서, 영국 정부가 리셉션 참석만 권유했음에도 한국 언론은 “왜 조문을 제대로 못했냐” “국가 망신”이라는 프레임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외교 관례상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고, 오히려 주재국 정부와 대사관은 “감사하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한 바 있다.
이와 달리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 총회 일정은 한두 건의 논란이 아니었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된 트럼프 리셉션을 회피했고, 트럼프 연설 직후에는 반대로 ‘친환경·기후변화 대응’을 강조하며 미국 대통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혜경 여사는 멜라니아 트럼프와의 만남을 속여 거짓말을 했다가 곧바로 들통이 났다. 심지어 뉴욕 체류 중 공개된 행보는 대형마트에서 김밥을 구입하는 모습뿐이었지만 한국 언론은 침묵하거나 미화에 가까운 보도를 이어갔다.
한편 국제 언론은 냉정했다. 르몽드(2025.9.22)는 “마크롱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취소하고 언론 인터뷰를 택한 것은 한국 외교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2025.9.23)은 “트럼프가 아르헨티나에는 스왑을 제공하고 한국은 거절한 것은, 워싱턴이 서울을 친중 성향으로 본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말은 동맹, 행동은 모호하다”라며 한국의 태도를 경고했다. 그러나 국내 언론은 정작 이 모든 장면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외교의 실패는 곧 경제의 후폭풍으로 직결되고 있다. 관세 협상 불발로 한국 수출품에는 25% 고율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반면 일본과 유럽은 15%에 그쳤다.
환율은 이미 1410원을 돌파했고 시장은 1500원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외국 자본은 빠져나가고, 한국의 대외 신인도는 추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는 “잘 해결됐다”고 말하고, 일부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쓴다.
국내 언론은 과거 보수 정권의 작은 장면에도 “망신” “참사”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 앞에서는 왜 침묵하는가. 정론직필은 사라지고, 편향된 선택적 보도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진실을 숨기고 이미지 정치에 부역하는 언론은 더 이상 ‘견제의 눈’이 아니다.
국제사회는 냉정하다. 미국과 서구 동맹국은 한국의 선택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외교적 고립, 경제적 추락, 그리고 동맹의 균열. 이 댓가는 결국 국민이 치르게 될 것이다.
언론이 침묵으로 이 모든 현실을 덮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배신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짓된 정권 홍보와 미화가 아니라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그 진실 말이다.
미디어원 ㅣ 이정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