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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핑계 대는 체육회, 메달표는 보고 말하나

유승민 회장의 ‘중앙아시아·인도 약진론’이라는 착시… 그들의 금메달도 줄었는데 왜 한국만 낡은 핑계 뒤로 숨는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기장에 모인 한국과 아시아 각국 선수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기장에 한국과 아시아 각국 선수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표현한 재구성 이미지. © 미디어원 편집부

[위기의 한국 엘리트 스포츠, 길을 묻다 ②]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현주소와 다음 시스템을 짚는 3부작 기획.

▶ 이전기사 | ① 축구는 4연패, 양궁 신화는 붕괴…우리가 가르친 아시아의 역습

한국 엘리트 체육의 성적표가 바닥을 쳤다.

숫자는 냉정하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58개였던 한국의 금메달은 2010년 광저우 76개, 2014년 안방 인천에서 79개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환호는 거기까지였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에서 49개로 꺾이더니 2022년 항저우에서는 42개로 주저앉았다. 2026년 일본 아이치·나고야의 풍경은 한층 더 처참하다. 대회 막바지인 현재 금메달은 30개대 중반에 턱걸이하고 있다.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굳건히 지켜왔던 ‘아시아 종합 2위’ 자리는 일본에 내준 지 오래고, 이제는 메달표 아래쪽을 불안하게 곁눈질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1편에서 짚었듯, 한국이 세계에 전수한 K-스포츠의 노하우를 흡수한 아시아 각국이 국경을 넘어 턱밑까지 추격해 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참패를 두고 체육계 수장이 내놓은 진단은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짚었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은 한국 체육의 위기를 설명하며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가리켰다. 국가가 전폭적으로 엘리트 스포츠를 밀어주고, 대통령이 직접 올림픽위원회를 챙기며, 막대한 오일머니와 정부 예산을 쏟아붓기 때문에 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왔다는 논리였다. 언론 역시 이 해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었다.

그런데 메달 집계표를 한 줄만 위로 올려다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인도의 금메달은 지난 항저우 대회 28개에서 이번 아이치·나고야 21개로 오히려 줄었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22개에서 21개로 감소했다. 카자흐스탄만 10개에서 12개로 2개 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무서운 약진’인가.

인도와 중앙아시아가 비약적으로 치고 올라온 것이 아니다. 그들의 걸음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질 쳤는데, 오직 한국만이 가파른 내리막을 굴러떨어졌을 뿐이다. 경쟁국이 거대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소해진 것이다. 메달 집계표 몇 줄만 훑어봐도 확인되는 이 단순한 숫자의 모순을 두고, 현장 기자도 체육회도 단 한 번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비겁한 핑계와 게으른 받아쓰기가 만들어낸 완벽한 합작품이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진짜 위기는 인도나 카자흐스탄에 있지 않다. 우리 안에서 돌아가던 엔진이 멈춰 섰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기억하는 메달 제조 공식은 명확했다. 교실을 떠나 사계절 내내 합숙소에 갇혔고, 선후배 위계와 지도자의 폭력은 ‘카리스마’로 둔갑했다. 인대가 끊어지고 뼈에 금이 가도 참고 뛰어야 ‘투혼’이란 칭호를 얻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을 갈아 넣는 군대식 병영 체제, 즉 집념과 인내, 애국심이라는 이름의 강압적 동력으로 메달을 쥐어짰다.

그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돌아가서도 안 된다. 학생 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폭력과 강압을 걷어낸 것은 불가역적이며 지극히 마땅한 역사의 진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폭력과 억압이라는 낡은 엔진을 떼어냈지만, 그 빈자리에 새 엔진을 달아주지 못했다. 세계 정상에 서려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치열한 훈련과 승부욕이 필수적이다. 강제로 시킬 수 없다면 스스로 뛰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체육계는 “참아라”, “시키는 대로 뛰어라” 다음의 언어를 끝내 찾지 못했다.

프로 무대가 없는 아마추어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 애국심을 들이밀기엔 세대가 변했다. 23.6세에 은퇴해 절반 가까이가 무직으로 내몰리는 사회에서 평생을 걸고 운동하라는 요구는 공허하다. 강압이 빠져나간 자리에 들어찼어야 할 것은 첨단 스포츠 과학과 정밀 데이터, 부상을 방지하는 스포츠 의학, 그리고 군기 대신 전술적 논리로 선수를 설득하는 ‘납득의 리더십’이었다. 하지만 체육 행정은 선진 시스템 구축을 방기한 채 손을 놓았다.

그리고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어김없이 해묵은 레퍼토리를 꺼내 든다. “요즘 선수들은 정신력이 없다”, “인도와 중앙아시아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자신들의 시스템 혁신 실패를 청년 세대의 나약함 탓으로 돌리고, 들통날 게 뻔한 통계 왜곡으로 위기를 호도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선 직무유기다.

스포츠에서 영원한 비밀과 독점은 없다. 우리가 가르친 기술을 남들이 배우는 동안, 우리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안주하며 주저앉았다. 체육회가 가짜 통계 뒤에 숨어 핑계를 외주화하는 한 한국 스포츠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분명해진다.

국가의 명령과 군대식 희생이 끝난 자리, 도대체 무엇으로 선수를 뛰게 할 것인가. 선수의 인권과 삶을 지켜내면서도 세계 정상의 경쟁력을 만들어낼 ‘새로운 엔진’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 3편에서는 비판을 넘어, 선수 보상 체계와 실업팀 구조, 은퇴 선수 안전망, 스포츠 과학과 지도자 육성까지 한국 엘리트 체육을 근본부터 다시 움직일 구체적인 대안 시스템을 짚어보고자 한다.

▶ 다음기사 | ③ 애국심으로 뛰라던 시대는 끝났다…한국 엘리트 체육은 무엇으로 선수를 뛰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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