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돌무더기와 묵묵한 교감을 나누다
무심하게 보면 그저 돌무더기에 불과한 고인돌 . 그 차가운 맨살의 돌덩이에 마음을 빼앗기다 .
글 ․ 사진 박은경
세계를 홀린 고인돌을 만나다
고창의 고인돌 유적지는 그간 국내 관광객들에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해왔다 . 학원농장의 보리밭이 휘청 춤을 추고 선운사의 동백이 후두두 몸을 던질 때에도 고인돌만큼은 묵묵하게 침묵을 지키는 시간이 더 많았다 .
하지만 그 속을 살짝 들여다보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심드렁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 굳이 우리의 먼 조상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규모만으로 ‘ 와 ’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선사시대의 돌무덤 유적인 고인돌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유물 중 하나로 , 우리나라에만 3 만 여 기 이상 분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는 세계 고인돌의 40% 를 차지하는 수치다 . 그중에서도 고창에 남아 있는 고인돌은 확인된 것만 2000 여 기 . 그 가운데 약 450 기가 고창읍 죽림리 일대에 무리지어 있다 . 그야말로 고인돌 전시장인 셈이다 . 이만한 수효의 고인돌이 한곳에 밀집된 예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다 .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 두 다리에 널찍한 덮개돌을 얹은 고인돌만 머릿속에 맴돌 뿐 , 이렇다 할 감흥이 전해지지 않는다 . 아마도 직접 들여다봐야 그 까마득한 시간의 속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 .
그래서 서울에서 차로 3 시간 반 , 벅찬 세월을 견뎌온 돌무더기를 만나러 전북 고창으로 달렸다 . 그렇다고 큰 기대를 한 건 아니다 . 다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 미슐랭 가이드 > 최고점에 빛나는 , 그 매력적인 속내가 궁금했다 .
시작은 고창 고인돌박물관으로 정했다 . 이곳에서 기초 지식을 탄탄하게 쌓은 다음 , 진짜 주인공을 만날 요량이었다 . 게다가 이곳은 < 미슐랭 가이드 > 한국판이 ‘ 꼭 찾아가보라 ’ 며 별점 3 개의 만점을 매긴 곳이기도 했다 .
박물관에는 고인돌에 관한 거의 모든 해답이 체계적으로 전시돼 있었다 . 선사인의 생활상이 어떠했는지 , 어떤 기술을 써서 고인돌을 만들었는지 , 고인돌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 다른 나라 고인돌은 어떤 모습인지 , 박물관을 찬찬히 돌아보는 동안 평소 수수께끼 같았던 궁금증들이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다 .
이젠 됐다 싶어 고인돌 유적지로 출발했다 . 박물관을 나와 고인돌교를 건너 5 분 정도만 더 걸어 들어가면 듬성듬성 놓인 고인돌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
고인돌은 마치 그 자리에 묻혔을 사람들의 생김새처럼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 어떤 것들은 의미 없는 바위처럼 보이기도 하고 , 어떤 것들은 한눈에도 고인돌임을 알아볼 수 있다 .
또 다른 고인돌들은 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 그 모습이 마치 일가족의 모습 같아 절로 애틋하다 .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커다란 돌들을 어떻게 캐고 옮겼는지 아득해진다 . 바위에 작은 구멍을 내서 마른 나무를 끼워 넣고 , 거기에 물을 부어 돌을 떼어냈다지만 상상하기 버겁다 . 그러다 그 돌을 끌고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을까 생각하니 이번엔 씁쓸한 감정이 복받친다 .
도대체 그들은 무슨 이유에서 저렇게 무거운 돌로 무덤을 만든 것일까 . 단순히 매장된 시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하기엔 들이는 공력이 만만치 않다 .
돌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 영원불변의 존재 . 아마도 그들에게 돌은 영생 또는 사후의 삶을 보장해주는 일종의 신앙이 아니었을까 싶다 . 아니면 애니미즘의 시대를 살았던 그들이기에 돌 속에 깃든 정령이 죽은 자를 돌봐주리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인돌을 살펴보는데 그 사이로 요즘 사람들의 무덤이 눈에 들어온다 . 수천 년을 뛰어넘어 같은 땅을 베고 누운 모습에서 묘한 감동이 느껴진다 . 저들과 지금의 우리는 대체 어떤 인연의 끈이 있어 이렇게 만났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
여섯 코스 따라 펼쳐지는 고인돌 왕국 이젠 본격적인 고인돌 탐방에 나설 차례다 . 어디부터 보면 좋을까 고민하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 걷기로 했다 . 유적지에 조성된 코스는 모두 여섯 개 . 반대편에 따로 떨어진 6 코스를 제외하고 1~5 코스는 고창천의 물길과 평행을 이루며 늘어서 있다 .
1 코스부터 5 코스까지의 거리는 약 1.8km.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탐방열차를 타면 편하게 돌아볼 수 있지만 , 다섯 개 코스를 25 분 만에 모두 들렀다 와야 하는 만큼 빠듯한 편이다 .
따라서 시간이 허락한다면 걸어서 다니는 것이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 길이 평탄해 그다지 힘을 빼지 않고도 속속들이 감상할 수 있으니 부담도 적다 .
먼저 1 코스에서는 한 번에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볼 수 있다 . 북쪽에서 흔히 발견되는 탁자식 ( 북방식 ) 과 남쪽에서 주로 나타나는 바둑판식 ( 남방식 ) 은 물론 탁자식 받침돌에 바둑판식 덮개돌이 얹힌 혼합형 고인돌도 만날 수 있다 . 2 코스는 거대 고인돌이 눈에 띈다 . 두꺼비 모양을 닮거나 덮개돌 무게만 100 톤에 육박하는 고인돌이 경외심과 궁금증을 동시에 불러 일으킨다 .
고인돌 박물관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3 코스에는 너른 초지에 128 기의 고인돌이 널려 있다 . 특히 이곳에서는 탁자식과 바둑판식의 중간 형태인 지상석곽식의 고인돌을 많이 만날 수 있다 .
4 코스는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잘라내던 당시의 채석장을 돌아보는 탐방로다 . 절단한 암석은 산의 경사를 이용해 완만한 지역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 또 5 코스에는 이 일대 고인돌의 절반가량인 220 기가 몰려 있는데 , 빽빽하게 열을 지어 늘어선 모습이 독특하다 .
1~5 코스 정 반대편에 있는 6 코스에는 고인돌이 5 기뿐이다 . 하지만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이에 훤칠한 외모를 갖춘 탁자식 고인돌이 있어 꼭 한 번 들러볼만 하다 . 이른바 ‘ 도산리 고인돌 ’ 이라 불리는 이 고인돌은 병자호란 당시 이 마을 출신 선비가 의병을 일으켜 진군하던 중 굴욕적인 항복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돌아와 고인돌 앞에서 평생을 망북통배 ( 望北痛拜 , 북을 향해 통곡하며 절을 함 ) 했다는 데서 ‘ 망북단 ( 望北壇 )’ 이라고도 부른다 .
이처럼 홀로 떨어져 있으나 놓치기 아쉬운 고인돌이 하나 더 있다 . 동양 최대의 고인돌로 알려진 ‘ 운곡고인돌 ’ 이다 . 3 코스 옆 오르막길과 이어지는 오베이골 탐방로를 따라 3.4km 가량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 고인돌은 높이 5m, 둘레 16m 에 무게가 300 여 톤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찾아가는 길
자가운전
서울 출발 서해안고속도로 → 고창 IC → 아산 방면 → 주곡교차로 → 고인돌교차로 → 고인돌박물관 / 경부고속도로 → 논산 – 천안간 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정읍 IC → 고창 방면 → 흥덕 제하사거리 → 성두교차로 → 주곡교차로 → 고인돌교차로 → 고인돌박물관
부산 출발 남해고속도로 ·88 고속도로 → 고창 – 담양간 고속도로 → 서해안고속도로 → 고창 IC → 아산
방면 → 주곡교차로 → 고인돌교차로 → 고인돌박물관
대중교통
[ 버스 ] 서울 ~ 고창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6 시 30 분 ~19 시 10 분 1 일 16 회 운행 (3 시간 10 분 소요 ), 고창공용버스터미널에서 고인돌박물관까지 택시로 10 분
관람시간 9 시 ~18 시 ( 관람종료 1 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 1 월 1 일 및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요금 어른 3000 원 , 청소년 2000 원 , 어린이 1000 원
탐방열차요금 어른 1000 원 , 청소년 700 원 , 어린이 500 원 * 당일 기상조건 및 박물관 상황에 따라 운행이 중단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반드시 확인할 것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74
문의 063-560-8666 www.gcdolmen.go.kr
고창에서 놓치기 아쉬운 맛 , 풍천장어구이
풍천장어를 풍천 지방에서 나는 장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 그러나 풍천은 지명이 아니라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이나 남해안과 접해진 강 중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을 이르는 말이다 .
이런 곳엔 흔히 물결이 회오리치고 거센 바람이 일어나 ‘ 풍천 ( 風川 )’ 이라 부른다 . 뱀장어는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 풍천장어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서만 잡을 수 있다 . 고창 선운산 어귀의 인천강 역시 강물과 바닷물이 10km 이상 드나드는 유명한 풍천 중 한군데다 .
바다에서 태어난 뱀장어는 강으로 올라와 자란 후 알을 낳기 위해 다시 바다로 내려간다 . 전에는 인천강에서도 가을이면 알을 낳기 위해 바다로 내려가려던 장어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 그러나 무분별한 포획이 늘어나면서 요즘에는 고창에서도 완전 자연산 풍천장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
고심을 하던 고창사람들의 대안은 바로 자연산화 시킨 양식장어 . 양식으로 키운 장어를 바닷물에 6 개월 정도 풀어 키운다 . 이때 사료는 일절 주지 않는다고 . 따라서 장어들은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활동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불필요한 지방은 쏙 빠지고 중요한 영양분만 간직하게 된다 . 이렇게 키운 장어를 ‘ 고창갯벌풍천장어 ’ 라고 부른다 .
고창갯벌풍천장어의 진정한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고 가볍게 소금만 뿌려 구워 먹는 것이 좋다 . 달콤하고 짭조름한 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담백한 장어의 맛이 혀에 착착 감긴다 . 고창의 또 다른 명물 복분자주와 함께 먹으면 맛이 더욱 좋다 .
강나루집 063-561-5592, 아산가든 063-564-3200, 산장회관 063-562-1563, 신덕식당 063-562-1533, 참좋은집 063-562-3322
글 사진: 박은경 기자 Ⓒ한국관광공사 청사초롱 본 기사의 copyright는 한국관광공사에 있으며 관광공사의 정책상 무단전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