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공간을 찾는 작업이 쉬운건 아니지만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아주 꽉 막힌것 만도 아니다.
명의 요청에 의해 사얼후 전역에 참전한 강홍립의 조선군이 압록강을 도강했던 장소는 평안북도 창성이다. 좀 더 정확히는 창성의 묘동인데 그동안 학계에서도 묘동의 위치나 대안의 팔팔박에 대해서 정확한 위치를 밝혀낸 글은 찾기가 어려웠다.
자료를 준비하면서 심하전역에 관한 몇차례 연구를 진행해 온 이승수교수의 논문<심하전역 현장 연구>外 몇 편과 년전에 이교수님과 답사 동행시 취재했던 답사결과물이 많은 참고가 되었다.
또한 동북아역사재단이 펴낸 조선시대북방사자료집 내 <건주견문록>, <책중일록>, 인평대군의 <연도기행>, 소현세자의 <심양일기>와<심양장계>, 그리고 중국측자료인 <명청시기 전쟁사>(+도록) … 등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국내외 고지도 몇 점과 중국의 전자지도. 우리지도. 북한행정지도를 종합하여 검토한 결과 강홍립조선군의 출발지인 창성 묘동의 위치는 파악된다. 그러나 대안의 지명인 팔팔박은 확인되지 않는다. 지명은 오로지 이민환의《책중일록》, 《건주견문록》과 같은 문헌에만 존재한다.
압록강인 이 지역은 이미 대형 수고(수풍댐 저수지)로 변하였고, 지형도 많이 변하였다. 그러나 문헌의 꼼꼼한 기록 덕분에 주요 지점의 위치는 비정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팔팔박은 수고 안에 수몰되었을가능성이 높다.
댐을 막아 물을 가뒀으니 낮은지역의 강폭이 더 넓게 확장되었을 것이므로 지금 현재의 수심이나, 강폭은 예전의 그것이 아닐 가망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대지도에 마을지명이 나오지 않는 것도 그렇고, 수몰지구 즉 수원이기에 사람이 살기도 어려워 인가가 거의 없을것으로 생각된다.
조선군이 도강했던 위치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조선군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그들의 동선을 추적해봄으로써 당시 상황을 재구해 본다거나 전쟁의 진행 과정을 추적해 볼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출발지가 아닌가! 이밖에도 강홍립군이 명군과 합류하여 조명연합군 대오를 형성했던 지역, 이동중에 넘었던 강과 큰 고개, 후금군과 교전했던 지역, 주둔지(숙영지), 전투지역, 포로가 되어 머물렀던 지역 등 이번 조사에서 얼마나 확인이 가능할지는 지금 알 수 없다. 현장에 가서 현지의 사정을 살펴 봐야 한다.
이번 현지조사에서 찾아봐야 하는 여러 노정 중에 특히 개인적으로 관심 가는 곳이 있다. 강홍립의 조선군이 전멸하다시피 했던 부찰(홍당석일대)전투가 있기 얼마전에 온 종일 넘었다던 우모령(우모대령)이다. 우모령은 미군제작 군사지도나 여타의 지도에 위치가 잘 나와 있지만, 현장을 찬찬히 둘러볼 예정이다.
우모령은 소현세자가 심양 볼모시절 청태종을 따라 사냥에 참여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모시고 동행했던 인평대군의 <연도기행>에 나온다.
소현세자일행이 우모령을 찾았을때는 1643년이니 강홍립군이 넘었던 1619년이후 24년만의 일이 된다. 조선의 백성(군대) 수천명이 후금의 말발굽에 도륙 당했던 현장을 조선의 왕세자가 다시 찾은 격이니 그 소회가 오죽이나 남달랐을까! 그것도 조선을 짓밟은 후금의 황제를 따라 나선 길이었으니 오죽하랴!
강홍립군대의 실패이후 병자호란과 같은 참상이 일어나 왕세자가 그 현장까지 오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지 않았던 당시 조정이나 지배층의 오판에 작살난건 백성들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우모대령의 현장을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이유다.
강홍립의 조선군은 부찰전투의 패배이후 후금에 (이미 광해군의 밀지에 따라) 항복의 의사를 전하였고, 후금의 본거지인 허투알라로 이동하였다가 곧 계번성(철배산)으로 옮겨진다.
1619년 사얼후전역(조선군은 심하 지역 일대에서 전투를 벌였으므로 심하전역으로 기억한다)은 명의 대 참패로 끝을 맺었고, 전쟁의 결과 명은 쇠퇴일로를, 후금은 중원공략의 전기를 맞는 중요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중원공략에 앞서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7년)을 일으켰으니 모두 사얼후전투 이후의 일이다. 청은 결국 입관하여 명을 무너뜨리고 북경을 접수(1644년)했다.
답사팀은 며칠후, 강홍립의 조선군 이동로를 따라 압록강 창성 묘동 대안으로부터 시작하여 중국내 심하전역의 행로를 추적하는 현장조사를 진행한다. 며칠동안 짬짬이 고지도와 현대지도를 분석하고 답사용 지도첩을 제작했다.
주요지점(지명)은 모두 체크를 했다. 이동경로는 GPS좌료를 채록한 후 대조작업을 하겠지만, 지도제본은 현장용 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다행히도 답사 목적을 채워주는 고지도자료를 몇 점 확보했다는 것이 힘이 된다. 이미 위성지도와 전자지도를 정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동경로에 대한 도상(圖上)답사가 몇차례 이루어진 셈이 되었다.
이번 답사는 GPS좌표기록과 사진 등 영상기록물, 문헌자료들의 정보를 취합해서 궁극적으로는 GIS전자지도와 문화지도로 구축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역사문화콘텐츠’로 개발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난 다큐멘터리 제작하는 것이 꿈이고!
날씨가 매우 추울 것으로 예상된다. 해는 오후 4시쯤이면 떨어지고 5시면 어둑해지는 동북의 날씨다. 그래도 답사가 기대가 되는건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믿음과 답사지역에 대한 궁금증이 크기 때문이다.
나라의 부름에 목숨바쳐 뛰어든 1만3천의 조선사람들! 그들이 걸었던 395년전의 현장을 추적하는 중이다.
코스모스팜 소셜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