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따가 가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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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따가 가는 여행
– 백석의 애틋한 첫사랑을 따라 통영기행 –

統營 2 – 남행시초 백석

구마산 ( 舊馬山 ) 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이라는 이 같고
난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녯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백석은 1912 년 평북 정주 출생이다 . 그런데 남쪽나라 통영에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 이것이 무슨 일일까 ?


『녯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 』 맞은편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 사당인 통영 충렬사 건너 쌈지공원에 백석의 시비가 서 있다 . 저 먼 북쪽 땅 정주가 고향인 백석의 시비가 남쪽 끝 이순신 장군 사당 바로 앞에 서 있는 이유는 무얼까 ? 그 죽일 놈의 사랑 때문이다 . 『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 』 “ 난 ” 이라는 통영의 여인 박경련을 그리워하며 충렬사의 돌층계에 앉아 한산대첩의 승전지인 한산도 바다를 바라보며 『 울듯울듯 』 한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는 듯하다 .


정말 충렬사의 돌계단에 앉아보니 그리운 연인 ( 박경련 ) 이 살았던 지붕 낮은 집도 보이고 동백꽃이며 우물인 “ 명정 ” 도 보인다 . 백석은 이곳에서 내 사랑 “ 난 ” 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으리라 . 1936 년 1 월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머나먼 통영까지 왔으나 결국 만나지 못하고 초라하게 돌계단에 앉아서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본다 .

그렇다면 시인 백석과 난 ( 본명 박경련 ) 과의 사랑을 잠시 훔쳐보자 .
1935년 6 월 초에 열린 친구 허준의 혼인축하 자리에서 딱 한번 본 박경련을 못 잊어 3 번에 걸쳐 통영을 방문하고 통영이라는 이름으로 3 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긴다 .
그 첫 번째 시는 1935 년에 발표한 “ 통영 ” 이다 .
“옛날엔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 ( 千姬 ) 라는 이름이 많다 / 미역 오리같이 말라서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줏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 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 ”(‘ 통영 ’ 전문 ·‘ 조광 ’ 1935 년 12 월호 )
1936년 1 월 8 일 전후에 이루어진 두 번째 통영 행에서 백석은 통영에 가게 된 속사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 통영 – 남행시초 ’ 를 짓고 발표한다 .
‘난 ’ 의 집 , 아니 박경련의 집은 명정골 396 번지에 있었다고 한다 . 하지만 그는 경련을 만나지 못한 채 쓸쓸하게 경성으로 돌아온다 . 이때의 심정을 담은 글이 조선일보 1936 년 2 월 21 일자에 실린 산문 ‘ 편지 ’ 이다 .
“남쪽 바닷가 어떤 낡은 항구의 처녀 하나를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 ( 중략 ) 그는 스물을 넘지 못하고 또 가슴의 병을 얻었습니다 .”
너무나 박경련을 사모한 24 세 열혈 청년이던 백석이 다시 3 번째 통영을 방문하였으나 박경련이 상경하는 바람에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하고 ‘ 통영 – 남행시초 2’ 를 발표한다 .
“통영 장 낫대들었다 / 갓 한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댕기 한 감 끊고 술 한 병 받어들고 / 화륜선 만저보려 선창 갔다 /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 문둥이 품파타령 듣다가 / 열이레 달이 올라서 /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 서병직씨에게 ”(‘ 통영 – 남행시초 2’ 전문 )
이 얼마나 애틋한 사랑이야기인가 ? 백석의 흔적을 따라 기행하는 것이 그때의 애틋한 사랑을 직접 보는 듯하여 가슴이 저려온다 .
그렇다면 백석의 눈에 비친 통영을 둘러보자 .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
그래서 백석이 갔을법한 전통시장을 찾았다 . 정말 바다의 내음 천지이다 .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 통영의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우면 시인 백석의 눈에는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일까 ?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 통영에서 생산되는 해산물 중에서 그 귀하다는 대구를 집집이 말리는 풍요로운 고장 통영 아마도 시인 백석은 통영에서 대구국을 맛보았을 것이리라 .
통영과 전혀 상관없는 평안북도 청년 백석이 첫눈에 반한 첫사랑 “ 난 ” 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시 속에 담겨 있어 그 시를 읽어가며 시를 따라 통영을 기행하는 것이 참으로 의미 있고 가슴에 오래토록 남는 기행이었다 .
글 사진: 김인철 기자/미디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