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원)“이란 정권은 시민을 처형하는 살인 정권이다.”
최근 이란 정세가 급격히 흔들리는 가운데, 전선에 서 있는 한 쿠르드 여성 전사가 외부 세계를 향해 던진 이 메시지가 중동 정치권의 시선을 끌고 있다. 단순한 선전 구호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발언은 중동 정치의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끌어올린다.
지금 이란 사태의 이면에서 쿠르드 문제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북서부와 이라크 북부 국경지대에서는 쿠르드 무장세력의 이동 정황이 포착되고 있으며 일부 외신은 수천 명 규모의 쿠르드 전투원들이 접경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을 전하고 있다.
쿠르드는 약 3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민족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직 국가가 없다. 오늘날 쿠르드 인구는 터키·이란·이라크·시리아 네 나라에 걸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이 지역을 쿠르드인들은 쿠르디스탄(Kurdistan)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러한 국명을 가진 국가는 국제 지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쿠르드는 종종 이렇게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 없는 민족.”
쿠르드 전투원들은 스스로를 “페쉬메르가(Peshmerga)”라고 부른다. 쿠르드어로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오랜 전쟁 속에서 형성된 정체성이다.
쿠르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의 거의 모든 전쟁에서 전선에 등장했다.
1980년대에는 사담 후세인 정권과 싸웠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에는 미군 특수부대와 함께 북부 전선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2014년 “이슬람국가(IS)”가 중동을 휩쓸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라크 정규군이 무너지고 도시들이 순식간에 함락되던 시기에도 쿠르드 전선은 무너지지 않았다. 쿠르드 전투원들은 에르빌과 키르쿠크 주변에서 방어선을 유지하며 IS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당시 현장에서 함께 싸웠던 미군 병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The Kurds never ran.” 쿠르드는 도망치지 않았다.
이 평가는 단순한 미담이 아니다. 전쟁에서 기술과 장비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전선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의 여러 전장에서 그 역할을 맡아 온 민족 가운데 하나가 바로 쿠르드였다.
그러나 쿠르드의 역사는 전사의 영웅담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이 필요할 때는 전선에 등장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국제정치에서 다시 주변으로 밀려나는 민족이기도 했다.
쿠르드 정치인들과 전투원들은 오래전부터 같은 말을 반복해 왔다.
“We are not mercenaries.” 우리는 용병이 아니다.
쿠르드는 강대국이 필요할 때 불러 쓰는 용병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 한 세기 동안 국제정치의 현실은 종종 그 주장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체결된 세브르 조약(1920년)에서는 쿠르드 국가 설립 가능성이 논의됐다. 그러나 불과 3년 뒤 체결된 로잔 조약(1923년)에서 그 계획은 완전히 사라졌다. 쿠르드 지역은 터키·이란·이라크·시리아 네 나라로 나뉘어 편입됐고, 쿠르드 민족은 다시 국경 속으로 흩어졌다.
그 이후 쿠르드는 수많은 전쟁에서 싸웠지만 독립 국가를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란 사태에서도 같은 질문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직접 지상군을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쿠르드 무장세력이 또다시 전선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쿠르드에게 이 선택은 단순하지 않다.
전선에 서지 않으면 역사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전선에 서면 또다시 강대국의 전략 속에서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 딜레마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쿠르드 민족이 반복해서 마주해 온 현실이다.
지금 중동에서는 다시 같은 질문이 떠오르고 있다.
쿠르드는 또다시 전선에 서게 되는가.
그리고 그 전선이 이번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국가로 이어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