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 밭에서 찾는 보성의 여름향기

전라도 ‘순천·보성’ 여행’

보성 녹차밭은 영화나 드라마 배경지로 종종 등장한다. 그때마다 아름다우면서도 어마어마한 녹차밭의 규모에 감동하며 ‘가보고 싶다’를 되뇌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정보도 없이 덜렁 보성 녹차밭만 다녀오기도 섭섭하다.

여름에는 무조건 바다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보성 주변에는 여행을 할 만한 곳들이 많다. 보너스로 바다까지! 바로 옆 마을, 순천과 보성을 잇는 알찬 여행 루트를 소개한다.

#보성 가기 전, 순천 전주곡

드라마 ‘여름향기’에 보성 녹차밭이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햇빛에 반짝이던 녹차잎을 보며 여주인공만큼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여름향기를 맡으러 보성 녹차밭으로 가면 되는 거다. 아는 것이라고는 그 아름다웠던 녹차밭에 대한 정보 밖에 없으니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보성으로 가기 전에 순천을 들르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꽤나 한다는 사람들은 순천여행이 얼마나 알찬 여행이 되는지 알고 있다.

도착한 순천역에서 웅성웅성 몰려있는 사람들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것을 들으며, 나도 그 여행자들과 함께 순천을 찾은 동행자임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작은 도시의 역 답지 않게 얼마 전 새로 지어져서 그런지 깔끔한 외관이 돋보였다. 순천역에서 빠져나와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 ‘송광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숲 한가운데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사찰에 간다고 생각하면, 가기 전부터 푸른 녹음과 상쾌한 공기가 떠올라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다.

송광사에 도착하자마자 송광사 구석구석을 볼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가람배치도를 살펴봤다. 배치도를 위해 간소하게 세운 기와지붕 밑에 송광사에 대한 설명이 한글과 영문으로 함께 설명돼 있는 모습을 보고 사찰이 생각보다 큰 규모임을 알 수 있었다.

송광사로 올라가는 길은 울창한 나무 사이에 색색까지 연등으로 길을 만들어 송광사를 찾은 사람들을 안내한다. 발끝으로 흙을 밟는 진동 하나 하나를 느끼며, 나뭇잎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이 반짝반짝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쯤 어디선가 청량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물소리를 따라 눈길을 돌려보니, 산꼭대기서부터 내려온 계곡물이 작은 돌에 부서져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개구쟁이 꼬마 하나는 벌써 엄마 눈을 피해 계곡물에 뛰어들어 옷 젖는 줄 모르고 물장난을 친다.

계곡물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가 곳곳에 사람들의 희망과 소원을 담은 돌탑들이 쌓여있다. 어른 머리만한 돌부터 손톱만한 돌까지, 쌓아 올린 돌의 크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정성스레 쌓아올린 그 희망과 소원의 크기는 같을 것이다. 그렇게 한눈을 팔며 20여분 만에 송광사에 도착했다. 송광사를 찾은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사찰과 썩 잘 어울리는 찻집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다음으로 배치도를 보며 짐작했던 송광사의 큰 규모가 들어 왔다.

송광사의 구석구석을 살펴본 다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선암사에 들르기로 했다. 무슨 절을 또 보냐는 동행자들의 불만 여론이 조금 일어났으나, 여행의 거창한 의미를 피력하며 설득해 선암사 6Km의 산행을 시작했다. 선암사로 가는 길은 잘 닦여져 산행이 매우 수월해 생각보다 일찍 선암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암사의 규모는 송광사보다 훨씬 작지만, 작은 사찰만이 갖는 그만의 매력이 있는 법이다. 선암사의 사진 포인트 장소인 승선교에서 사진을 찍고 난 후,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향했다.

# 환희에 찬 감동 ‘보성 녹차밭’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보성으로 가야되는데, 순천에서 보성까지의 거리가 52Km 밖에 되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이동했다.

보성 벌교읍에 도착하면 반드시 벌교 꼬막을 맛봐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한 터라 이동하는 동안 내내 입안에 침이 고였다. 30여분 만에 보성 벌교읍에 도착하자마자 주린 배를 잡고 허겁지겁 꼬막 정식을 파는 식당을 찾았다. 맛은 전국적으로 소문이 파다한 전라도 음식답게 상다리 휘어질 듯 인심 후하고, 맛 또한 일품이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잠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원래의 목표를 떠 올려, 벌교읍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향했다. 짚으로 덮인 초가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낙안읍성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민속마을이 그렇듯 대부분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지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장터도 열리고 도자기도 구우며 여행을 온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이런 분위기에 다른 민속마을에서는 그저 구경이나 했을 법한 곤장치기, 전통 그네타기 같은 놀이를 의식하지 않고 체험할 수 있었다.

민속마을 안에는 민박집도 여기저기 눈에 띄어 가까운 곳에 있는 보성 녹차밭으로 가기 전, 이곳에서 하룻밤 정도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이제 보성 녹차밭으로 향하는 시간이 왔다. 꿈에 그리던 녹차밭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둘러 녹차밭으로 가는 입구에 들어섰으나, 예상하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진다. 순간 보성 녹차밭을 깨끗하게 잊을 정도로 아름다운 삼나무가, 햇빛조차 들어설 틈 없이 들어차 장대한 키를 뽐내고 있는 게 아닌가. 유달리 쪽쭉 뻗어 있는 삼나무가 만들어낸 숲길은 외부 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돼 공기마저 은은한 연두빛깔을 띄고 있는 것 같다.

들이 쉬는 숨은 공기 알갱이들이 캡슐처럼 코 안으로 들어오는 듯, 상쾌한 자극이 느껴질 정도다. 삼나무 숲길이 끝날 즈음, 주변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노란 차양에 하얀 계단을 가진 찻집을 발견해 잠시 이곳에서 숨을 돌리기로 했다. 주문한 메뉴는 녹차의 본 고장과 어울리는 시원한 녹차라떼.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도시에서 먹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차밭을 옆에 두고 최고 품질의 녹차잎을 사용해 만든 것이 그 맛의 비법일 것이다.

찻집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는 곳에 녹차밭이 있었다. 녹차밭은…….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TV에서 본 장면은 그저 영상에 불과하지 않는다. 실제 내 눈앞에 펼쳐진 녹차밭 전경의 아름다움은 숨이 멎을 듯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자연을 이용해 만든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음부터 그곳에, 그렇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만 같다.

보성 녹차밭은 마치 흑인의 굵은 레게머리칼처럼 구불구불 줄지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여기저기에 녹차 잎을 따는 아주머니들의 머리가 녹차밭 사이사이로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했다. 감탄에 감탄을 하느라 벌어진 입을 다물 틈이 없었다. 여행을 자주하다보면 아무리 멋진 광경을 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이 흐릿해지기 마련인데, 이 광경은 그 감동 그대로 쭉 오래도록 이어질 것 같다.

그래도 여름은 여름인지라 햇빛 강렬한 녹차밭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더니,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사전에 보성 녹차밭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율포 해수욕장’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터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바다까지의 이동거리는 그리 길지 않으나 차밭에서 바다로 가는 차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더운 여름철에 걷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느끼고 있을 때 즈음, 뒤에서 트럭 한 대가 경적을 울린다.

‘태워 줄 테니 타세요’라는 시골 인심이 훈훈하게 발휘되는 순간이다. 도시에서라면 의심부터 할 테지만, 지금 이 아름다운 곳에서 망설일 것 뭐있나? 순도 100% 시골인심, 순수하게 느껴보면 되는 거다. 트럭 뒤 칸에 몸을 싣고 청정한 바람을 맞으며, 율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바다에 입수하기 전에 우선 들고 있던 짐부터 풀어 놓고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해수욕장 부근에는 민박집이나 펜션이 많이 있어 손쉽게 방을 잡았다. 이제 남은 것은 바다를 마음껏 즐기는 것뿐이다! 쉼 호흡 크게 하고 하나, 둘, 셋! 바다로 뛰어들었다.

<추천코스>

순천-송광사-선암사-보성군벌교읍-낙안읍성민속마을-보성삼나무숲-보성찻집-보성녹차밭-율포해수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