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가설의 영역이다
고대사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쟁은 학문이 아니라 감정에 가깝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국뽕과 반국뽕의 대립은 사실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믿음’으로 다루려는 태도의 문제다.
고대사는 단정의 대상이 아니라, 가설의 영역이다.
[미디어원=이정찬 기자] 요즘 한국 사회에서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은 학문이라기보다 감정에 가깝다.
누군가는 고조선을 거대한 제국으로 상상하며 열광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런 시도 자체를 ‘국뽕’이라 부르며 조롱한다. 겉으로 보면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이 두 태도는 하나의 공통된 오류를 공유한다. 역사를 ‘믿어야 할 것’으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적 사실’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배우는 역사조차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기록된 인식에 가깝다. 특히 고대사로 갈수록 이 문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문헌이 부족한 시대, 국가 형성 이전의 세계를 다루면서도 우리는 종종 확정된 결론을 요구한다. 이 지점에서 논쟁은 학문을 떠나 신념의 영역으로 미끄러진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다. 이 두 책은 한국 고대사를 이해하는 핵심 사료로 취급되지만, 동시에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삼국사기는 고려 시대 김부식이, 삼국유사는 그보다 더 뒤에 일연이 편찬했다. 즉, 당대의 기록이 아니라 수백 년 뒤 후손이 정리한 역사서다. 그 안에는 당시의 정치 질서, 지배 이념, 세계관, 편찬자의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생략했는지는 편찬자의 해석이고 선택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 말은 역사서를 부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사료를 절대적 진실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료는 진실의 종착점이 아니라 해석의 출발점이다. 기록된 역사조차 그 시대의 권력 구조와 사회 인식을 통과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역사 읽기는 곧 신앙이 된다.
이 지점에서 세계적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경고는 의미심장하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사실과 역사가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다.”
역사는 고정된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해석과 질문의 과정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 역시 “역사적 사실이 스스로 말해준다는 믿음은 위험한 환상”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은 언제나 선택되고 배열되며, 그 과정에는 인간의 시각과 시대적 조건이 개입된다.
아날학파의 핵심 인물인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를 사건이나 국가의 흥망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구조와 교류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대 세계를 오늘날의 국경 개념으로 재단하는 것이 왜 반복적인 오류를 낳는지를 정확히 짚은 관점이다.
영국의 사상가이자 역사학자인 R. G. 콜링우드 역시 역사를 과거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기록한 인간의 사고를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보았다.
이러한 역사 인식 위에서 보면,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 또한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책의 모든 내용을 사실로 믿는 태도는 물론 문제지만, 전체를 조롱과 혐오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태도 역시 학문적이라 보기 어렵다. 문헌은 믿거나 버릴 대상이 아니라, 분해하고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고대사는 본질적으로 가설의 영역이며, 가설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
최근 고고학의 발전은 이러한 태도의 필요성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유전자 분석, 정밀한 지층 조사와 유물 비교는 문헌 중심의 역사 해석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요하문명, 황하문명, 양자강문명이 단일한 ‘중국 문명’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병렬적으로 발전했다는 인식은 이미 국제 학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 흐름 속에서 고조선 역시 더 이상 ‘신화 속 나라’로만 치부되기 어렵다. 요하문화권에서 확인되는 청동기 유물, 비파형 청동검을 중심으로 한 북방계 문화는 고조선이 최소한 실재했던 정치·문화 집단이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제 논점은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성격의 집단이었느냐로 이동해야 한다.
그럼에도 고조선을 몽골제국이나 로마제국과 비교하며 조롱하는 태도는 여전히 반복된다. 이는 고조선을 과대평가하는 국뽕만큼이나 단순한 사고다. 고조선이 근대적 의미의 중앙집권 국가나 대제국이 아니었을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방 문화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일본 고대사 역시 마찬가지다. 왜(倭)를 곧바로 오늘날의 일본으로 등치하는 관점은 고대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 그리고 해상 교류권은 오랫동안 느슨한 문화·정치적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었다. 고대국가 성립 이전의 세계를 현대적 국경 개념으로 재단하는 순간, 역사는 왜곡된다.
결국 문제는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를 대하는 태도다. 역사는 자존심을 세워주는 도구가 아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언어다. 가설을 신앙으로 만들거나, 가설을 비웃음으로 덮어버리는 순간 사회는 소모적인 논쟁에 빠진다. 국뽕과 반국뽕의 싸움은 결국 과거를 이용해 현재를 소모하는 행위일 뿐이다.
역사 이전의 역사를 단정하는 순간, 우리는 학자가 아니라 신자가 된다. 그때부터 국가와 사회는 필요없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