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 앞 폭발음…그 순간 ‘죽음 직감’”… 단어를 모르는 기자, 걸러내지 못하는 데스크

(미디어원)한때 신문기사와 칼럼은 국어의 교과서였다. 활자에는 품격이 있었고, 단어는 정확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100미터 앞 폭발음…그 순간 ‘죽음 직감’”… 중동에 발 묶인 한국선원들
이 제목을 보면서 기자가 ‘직감’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 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직감(直感)은 막연한 불안이나 공포가 아니다. 실제로 그 상태에 이르렀을 때 쓰는 말이다. 사고를 직감했다면 사고가 발생해야 하고, 죽음을 직감했다면 죽음의 문턱까지는 갔다와야 한다. 큰 부상을 입어 병원에 누워 있거나,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든 사람이 회상하며 쓸 수 있는 표현이다.
폭발음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히 살아 돌아온 사람이 ‘죽음을 직감했다’고 쓰는 것은 맞지 않는다. 그것은 공포였을 뿐, 직감이 아니다.
요즘 기자들 가운데는 단어의 뜻과 사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한자어를 가져다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이 잘못된 표현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부끄러움도 없다.
문제는 데스크조차 이런 표현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때 우리는 신문기사와 칼럼으로 국어공부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기대를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신문이 국어를 망치고 있다면, 그것은 언론의 위기 이전에 언어의 위기다.
덧) 두시간 후에 보니 고쳤네, 그나마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