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만에 역전패… 한국이 잃어버린 ‘팀 스피릿’

(미디어원)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대표팀이 연이어 역전패를 당했다. 일본에게 8대6으로 역전패했고, 이어 대만에게는 연장 10회 접전 끝에 5대4로 패했다. 두 경기 모두 한때 앞서던 경기를 뒤집힌 패배였다. 팬들의 실망은 컸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이 결과는 충격적인 사건이라기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흐름의 연장선에 가깝다.
특히 대만전 패배는 상징적이다. 한때 한국 야구가 분명한 우위를 보였던 팀에게 역전패를 당했다는 사실은 한국 야구의 현재 위치를 보여준다. 아시아 야구의 구도 속에서 한국이 차지하던 자리 역시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스포츠는 한때 단체 경기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나라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는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일본과 미국, 쿠바 등 강팀들을 모두 꺾으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듬해 열린 2009년 WBC에서도 한국은 일본을 여러 차례 이기며 결승에 올라 결국 준우승을 기록했다.

당시 한국 스포츠의 가장 큰 무기는 기술이 아니었다.
팀 스피릿(team spirit)이었다.
대표팀 유니폼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공동체의 명예였다. 선수들은 개인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고 강한 합숙 훈련과 단체 훈련 속에서 조직력을 만들어 냈다. 체격이나 선수층에서 불리했던 한국 팀이 세계 정상권과 싸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야구뿐만이 아니다. 쇼트트랙에서도 예전처럼 압도적인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한때 한국이 사실상 독점하던 종목이었지만 이제는 여러 나라가 메달을 나눠 갖는다. 축구 역시 내부 갈등과 팀 문제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단체 스포츠 전반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여기에는 분명한 구조적 변화가 있다.
먼저 한국이 만들어낸 스포츠 기술이 세계로 확산됐다. 쇼트트랙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이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시절 이후 여러 나라들이 한국 감독과 코치를 영입했고 한국식 훈련 시스템이 세계로 퍼졌다. 지금 세계 쇼트트랙 강국들의 지도자 상당수가 한국 출신이다. 한국이 만든 기술과 훈련 방식이 사실상 세계 표준이 된 셈이다.

태권도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과거에는 한국이 거의 모든 체급에서 우위를 보였지만 지금은 세계 각국 선수들이 메달을 나눠 가진다. 양궁은 아직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 지도자들이 해외 대표팀을 지도하는 상황을 보면 이 역시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술의 확산과 보편화만으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다.
더 큰 변화는 한국 사회 내부에서 일어났다. 과거 한국 스포츠를 지탱했던 강한 단체 문화가 크게 약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대표팀에 선발된다는 것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공동체의 명예였다. 선수들은 개인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고 그 문화가 강한 조직력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 문화가 크게 약해졌다. 개인의 권리와 선택이 강조되는 사회가 되면서 선수 개인의 자유는 확대됐다.
그러나 동시에 단체 스포츠를 지탱하던 집단 문화도 약해졌다. 강한 합숙 훈련과 단체 규율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단체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 능력이 아니다.
팀이다.
뛰어난 선수들이 모였다고 해서 자동으로 강한 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규율과 희생, 그리고 팀을 위해 개인이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문화가 있을 때 비로소 조직력이 만들어진다.

한국 스포츠는 지금 그 균형을 잃었다.
일본과 대만에게 당한 연속된 역전패는 단순한 경기 결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기술이나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팀의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 스포츠가 오랫동안 강했던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팀 스피릿이었다.
지금 한국 스포츠는 그 가장 중요한 자산을 잃어버렸다.
이번 WBC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 대회였다.
한국 스포츠는 기술을 잃은 것이 아니다.
한국 스포츠는 팀 스피릿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