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찬 발행인 ㅣ 미디어원
일본에 가면 일본을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많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리가 깨끗하다. 작은 음식점 하나도 정갈하다. 대중교통은 편리하고 서비스는 대체로 친절하다. 호텔에서든 백화점에서든 동네 슈퍼에서든 손님을 대하는 방식에 일정한 질서가 있다. 사람들은 좀처럼 고성을 지르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한번 가본 사람은 또 간다. 도쿄를 다녀오면 오사카로, 오사카를 다녀오면 후쿠오카로 향한다. 삿포로와 오키나와를 지나 이제는 다카마쓰, 마쓰야마, 가고시마, 아오모리 같은 지방 도시까지 들어간다. 밥을 먹으러, 온천을 하러, 골프를 치러, 쇼핑을 하러 간다.


숫자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5년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약 946만 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반복 방문까지 포함한 방일객 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오히려 지금의 한일 왕래를 더 정확히 보여주는 숫자다. 일본은 더 이상 한국인에게 ‘평생 한번 가보는 외국’이 아니라, 반복해서 찾아가는 생활권에 가까운 여행지가 됐다.
일본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들에게 붙는 말이 생겼다. 일뽕.
필자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을 좋아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일본 음식이 맛있으면 맛있다고 하면 되고, 일본 서비스가 좋으면 좋다고 하면 된다. 일본의 도시가 깨끗하고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느꼈다면 그것도 그 사람이 실제 경험한 일본이다. 몇 년 전처럼 일본 제품을 사지 않고 일본에 가지 않는 것이 애국심의 표시인 양 몰아가는 것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 일본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일뽕’이라 몰아붙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다만 여기서 전혀 다른 문제가 하나 생긴다. 일본을 좋아하는 것과 일본을 아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일본 여행 스무 번이면 일본을 아는가
일본을 스무 번 다녀왔다고 해보자. 도쿄도 알고 교토도 안다. 규슈를 렌터카로 돌아봤고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도 들어가 봤다. 일본 음식도 제법 알고 일본 호텔도 많이 이용했다. 그래도 일본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쉽게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호텔업에 몸담았던 시절 약 10년 동안 일본 지역을 담당했다. 관광객으로만 일본을 대한 것이 아니라 일본 여행업계와 고객을 상대했고, 여러 지역을 오가며 일본 사람들과 상당히 긴 시간 관계를 맺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일본을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거기서 태어나 자란 것도 아니고, 일본 사회의 학교와 직장과 지역공동체 속에서 평생을 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한 나라를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말이다. 서울에서 평생을 산 한국인이 전남의 어촌마을을 얼마나 아는가. 부산의 자영업자가 강원도 농촌의 삶을 얼마나 아는가. 20대와 70대 한국인의 생각이 같을 리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외국에 대해서는 쉽게 말한다. “일본인은 원래 그래.” “중국 사람은 원래 그래.” “미국인은 원래 그래.” 몇 번 여행하고 책 몇 권 읽은 뒤 1억 명이 넘는 사람을 한 문장 안에 넣어버린다.
일본을 이해하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일본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쉽게 안다고 착각한다.


일본을 설명해온 수많은 ‘열쇠’
일본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오래됐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론 가운데 하나가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다. 이어령은 부채와 도시락, 정원과 하이쿠 같은 일본 문화의 여러 현상을 ‘축소지향’이라는 하나의 독창적인 코드로 읽었다. 1982년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은 일본에서도 상당한 평가를 받았다.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도 일본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다. 속마음과 밖으로 드러내는 태도를 구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와(和)’가 붙고, 집단주의가 붙고, 사무라이가 등장하고, 장인정신과 천황제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일본을 질서의 나라라 하고 어떤 사람은 억압의 나라라 한다. 한때 한국에서는 『일본은 없다』 같은 강렬한 일본론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본 사회의 폐쇄성과 이면을 설명하는 하나의 틀이 널리 소비되기도 했다.
각각 볼 만한 대목이 있다. 문제는 하나의 열쇠로 일본이라는 거대한 집의 모든 문을 열려고 할 때 생긴다. 혼네와 다테마에를 알았다고 일본인을 다 아는 것이 아니다. ‘축소지향’을 이해했다고 일본 문명을 모두 설명할 수도 없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현대 일본 직장인을 설명할 수 없고, 과로사라는 단어 하나로 일본 노동자를 설명할 수도 없다. 일본은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여기서 조금 역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일본 사회는 매우 복잡하다. 그런데 일본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까이 가보면 이야기는 오히려 단순해진다.
필자가 오랫동안 만나본 많은 일본인은 정이 많았다. 처음에는 거리가 있다. 쉽게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말도 조심한다. 한국인처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형님, 동생 하며 금세 가까워지는 경우도 드물다. 그러나 관계가 쌓이면 달라진다. 한번 자기 사람이라 받아들인 뒤에는 오래 기억하고 챙기는 사람이 많다. 다시 만났을 때 반가워하고, 작은 약속을 기억하고, 어려울 때 뜻밖의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정이라는 것을 한국 사람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일본인은 속과 겉이 다르다’고 한 줄로 결론 내면 또 틀린다. 한국 사람도 회사에서 하는 말과 집에서 하는 말이 다르고, 친구에게 하는 말과 거래처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혼네와 다테마에가 있다. 다만 일본 사회에서는 그것을 표현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한국보다 훨씬 중요한 사회적 기술로 발달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의 친절을 모두 가식이라 보는 것도 어리석고, 친절하니까 속마음까지 친절할 것이라 믿는 것도 순진하다. 친절은 친절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인을 보는 일본의 눈도 하나가 아니다
일본인의 한국관도 마찬가지다. 지금 일본에 처음 가는 젊은 한국인은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필자 역시 일본을 오랫동안 상대하면서 한국 사람을 자신들과 같은 위치에서 보지 않는 듯한 시선과 태도를 느낀 적이 있다. 노골적으로 욕을 해야만 멸시는 아니다. 말투와 표정, 상대를 대하는 미묘한 거리에서도 사람은 그것을 알아챈다. 그런 일본도 있었다.
그렇다고 30년 전의 일본을 오늘의 일본에 그대로 덮어씌우면 또 틀린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달라졌고, 한류가 일본 사회 깊숙이 들어갔고, 젊은 세대의 경험도 크게 달라졌다. 실제로 2026년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국제문화회관(IHJ)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54.3%로 조사 시작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런데 반대편을 보면 또 재미있다. 같은 조사에서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상은 35.3%로 전년보다 크게 올랐지만,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 답한 비율은 24.5%에 그쳤고 ‘신뢰하기 어렵다’는 응답은 50.2%였다. 동시에 57%는 한일관계가 일본에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 숫자가 보여주는 일본은 간단하지 않다. 한국을 좋아할 수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서울로 여행을 갈 수 있다. 그러면서도 국가로서 한국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모순인가. 아니다. 사람의 생각이 원래 그렇다. 한국 사람 역시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여행을 즐기면서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에는 화를 낼 수 있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감정과 문화에 대한 취향과 개인에 대한 호감을 지나치게 하나로 묶어왔다. 그래서 일본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깨끗한 거리는 누구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는가
최근에는 또 다른 식의 일본론이 등장한다. 일본의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그 질서 뒤에는 과로하는 남성, 차별받는 여성, 폐쇄적인 사법제도와 억압적인 조직문화가 있다는 식이다.
각각 따져볼 만한 문제다. 일본에는 과로사 문제가 있다. 여성의 관리직 진출과 임금격차 문제도 있다. 99%가 넘는 형사재판 유죄율과 장기간의 신병구금에 대해서는 일본 안에서도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돼왔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한 줄로 이어놓으면 일본의 거리와 서비스가 왜 깨끗하고 친절한지 설명되는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입증해야 할 것이 산처럼 많다. 일본의 형사사법 문제와 편의점의 청결은 서로 다른 문제다. 여성의 관리직 비율과 철도의 정시 운행이 어떤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있는지도 증명해야 한다. 과로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일본 사회의 모든 질서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다.
이런 글에는 흔히 숫자와 학자 이름, 영어와 일본어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그러면 전문적인 글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문성이란 자료가 많다는 뜻이 아니다. 자료와 자료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는 것, 반대 자료를 함께 검토하는 것, 시간에 따라 바뀐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 전문성이다. 무엇보다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그 결론에 필요한 숫자만 찾아오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전문성이다.
일뽕도 반일도 일본을 대신할 수 없다
일본의 장점을 칭찬하는 것을 일뽕이라 부를 생각은 없다. 반대로 일본의 식민지배와 역사 문제를 비판하는 것을 무조건 반일이라 몰아붙일 생각도 없다. 역사는 역사대로 따져야 하고 현재는 현재대로 봐야 한다.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고, 도쿄와 지방도 다르게 봐야 한다. 80대 일본인과 20대 일본인을 같은 사람처럼 취급해서도 안 된다. 기업에서 일하는 일본인과 동네 이자카야 주인도 다른 삶을 산다. 그것들을 한데 모아 ‘일본인은 원래 이렇다’라고 말하는 순간 일본은 사라지고 우리의 선입견만 남는다.
필자는 일본을 조금 안다. 아마 보통의 한국인보다는 일본을 많이 보고 많은 일본인을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본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보면 볼수록 다른 일본이 나오기 때문이다.
좋은 일본도 있고 이상한 일본도 있다. 고집스럽도록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놀라울 만큼 융통성 있는 사람도 있다. 차갑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고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정을 주는 사람도 있다.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이 있고 싫어하는 일본인이 있다. 역사 문제에 놀라울 만큼 무지한 사람도 있고 한국인보다 한일 역사를 더 열심히 공부한 일본인도 있다. 그게 사람 사는 사회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일본만 만나면 하나의 답을 찾으려 하는가.
이제 일본을 하나씩 다시 보려고 한다
그래서 ‘일뽕과 반일 사이’에서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한꺼번에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나씩 볼 것이다.
일본인은 왜 속마음을 직접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가. 혼네와 다테마에는 정말 일본만의 문화인가. 일본 사람에게도 우리가 말하는 ‘정’이 있는가. 일본인은 한국인을 어떻게 보아왔고 그 시선은 어떻게 변했는가. 일본의 그 놀라운 질서와 서비스는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 99%가 넘는 유죄율은 정말 ‘잡히면 유죄’라는 뜻인가. 과로사의 나라 일본은 지금도 그렇게 많이 일하는가. 일본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실제 어느 정도인가. 임금이 오르고 주가가 오르는 일본에서 평범한 일본인은 더 잘살게 됐는가. 팩스와 도장의 나라라는 일본은 지금도 아날로그 국가인가. 그리고 천황과 국가, 전쟁과 식민지배를 오늘의 평범한 일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리 답을 정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 유리한 답이 나오면 그대로 쓸 것이고 불편한 현실이 나오면 그것도 그대로 쓸 것이다. 우리의 통념이 틀렸으면 틀렸다 할 것이고, 일본에서 통용되는 자기합리화가 틀렸다면 그것 역시 따져볼 것이다.
일본을 좋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본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감정도 지식은 아니고, 싫어하는 감정도 지식은 아니다. 일본 여행을 서른 번 했다고 일본을 아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 관한 책을 서른 권 읽었다고 일본을 아는 것도 아니다. 한 나라를 안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해보려 한다. 찬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일뽕과 반일 사이에서, 일본을 다시 본다.
다음 편 예고
〈일뽕과 반일 사이 ②〉 혼네와 다테마에, 일본인은 정말 속과 겉이 다른가
일본인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다.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내는 태도를 구분한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만으로 일본인의 행동방식을 설명할 수 있을까.
다음 편에서는 혼네와 다테마에의 실제 의미부터 우치와 소토, 엔료, 메이와쿠, ‘공기를 읽는다’는 문화까지 살펴본다. 일본인은 정말 속과 겉이 다른 사람들인지, 아니면 갈등과 관계를 관리하는 방식이 한국과 다른 것인지 하나씩 들여다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혼네와 다테마에’는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일본인을 단순화한 이미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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