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경제 국채 5.34%의 경고…세계는 다시 ‘비싼 돈’의 시대로 질주한다

국채 5.34%의 경고…세계는 다시 ‘비싼 돈’의 시대로 질주한다

미국 24년 만의 최고·일본 3% 돌파…정부와 AI 빅테크의 ‘자본 쟁탈전’, 한국 기업 자금줄과 주담대까지 겨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 5.34%와 글로벌 국채금리 상승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34%까지 치솟으며 세계 채권시장의 금리 상승 압력이 커지는 상황을 표현했다. 재구성 이미지 © 미디어원 편집부

 

세계 금융시장의 ‘북극성’이 흔들리고 있다.

하루에도 수 퍼센트씩 움직이는 주식시장 뒤편에서 수십 년간 글로벌 자본의 닻 역할을 해온 국채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장중 5.34%를 뚫었다. 2002년 이후 24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움직임은 국경을 가리지 않았다. 프랑스 10년물은 5%에 육박했고 영국 30년물은 6%를 넘어섰다. 수십 년간 제로금리의 방파제 안에 있던 일본 10년물 국채마저 3%를 돌파하며 30년 만의 영역으로 올라섰다.

나라와 통화는 제각각이지만 방향은 같다. 지난 20여 년 세계 경제의 전제가 됐던 ‘싼 돈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경고다.

AI 데이터센터와 글로벌 빅테크 설비투자
AI 경쟁은 GPU를 넘어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등 대규모 설비투자로 확대되고 있다. 정부의 국채 발행과 빅테크의 자금조달이 같은 자본시장에서 맞붙고 있다. 재구성 이미지 © 미디어원 편집부

정부와 AI 빅테크가 벌이는 ‘돈 쟁탈전’

이번 글로벌 국채금리 상승을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재발만으로 설명하면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채권시장 밑바닥에서는 더 구조적인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돈을 빌리려는 주체들이 동시에 늘어나면서 한정된 자본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쪽에서는 각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쏟아내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의 120%에 육박하고 미국 역시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부담을 안고 있다.

채권 공급이 늘어나는데 이를 받아줄 수요가 충분하지 않으면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른다.

여기에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규모로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자금 수요자가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이다.

AI는 소프트웨어만의 경쟁이 아니다. GPU를 확보하고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전력망과 냉각시설을 갖춰야 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설비투자 경쟁이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인프라를 선점하기 위해 채권시장에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기업은 AI 패권을 잡기 위해 같은 자본시장에서 돈을 빌린다.

정부의 국채와 빅테크의 회사채가 한정된 자본을 놓고 경쟁하는 순간 돈의 몸값, 즉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고유가가 다시 인플레이션에 불을 붙인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까지 가세했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시장에서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다시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채권 투자자에게 인플레이션은 치명적이다. 10년 동안 일정한 이자를 받기로 하고 돈을 빌려줬는데 물가가 계속 오르면 미래에 돌려받을 돈의 실질가치는 떨어진다.

투자자는 그 위험을 보상받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

물가가 다시 오르면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쉽게 내릴 수 없다. 결국 고유가와 물가, 통화정책, 국채금리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다.

공짜 돈의 저수지, 일본마저 달라졌다

더 주목해야 할 신호는 일본에서 나왔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가 3%를 넘어섰다.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싼 돈을 공급하던 일본 금융시장의 전제가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제로금리와 마이너스금리 시대 일본 투자자들은 국내에서 충분한 수익률을 얻기 어려웠다. 그래서 막대한 일본 자금이 미국 국채와 유럽 채권 등 해외자산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3% 수준의 장기금리를 받을 수 있게 되면 계산이 달라진다.

환율 변동과 환헤지 비용을 감수하면서 해외채권을 보유해야 할 이유가 이전보다 줄어들 수 있다.

세계 최대 자금 공급원 가운데 하나인 일본에서 해외로 향하던 돈의 계산법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 국채금리 3%는 미국의 5.34%보다 숫자는 작아도 글로벌 자금 흐름에서는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다.

태평양 건너 불길은 이미 한국에 옮겨붙었다

이 거대한 글로벌 머니게임은 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국고채 3년물은 지난달 4.11%까지 올라 2022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10월 1일에는 3년물이 4.010%, 10년물이 4.436%로 마감했다.

한국 경제에 갑자기 독자적인 대형 악재가 터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국채금리가 크게 뛰면서 한국 채권시장 역시 높은 금리를 요구받는 구조적 압력을 받고 있다.

정부도 움직였다. 시장의 금리 상승 부담이 커지자 10월 국고채 발행 물량을 당초 계획보다 5조원 줄이기로 했고 필요할 경우 긴급 바이백 등 시장 안정 조치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가 우려하는 곳 가운데 하나는 기업 자금시장이다. 높은 금리가 장기화하면 신용도가 낮은 기업부터 회사채 발행과 차환 비용이 급격히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5.34%가 내 주담대로 오는 길

국채금리는 정부만 부담하는 이자가 아니다.

금융시장에서 국채금리는 사실상 모든 돈값의 출발점 역할을 한다. 국가보다 신용위험이 높은 은행과 기업은 국채보다 더 높은 금리를 지급해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회사채와 은행채, 금융채 금리가 영향을 받고 결국 은행의 조달비용으로 전달된다. 그 비용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금리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기업에는 더 직접적이다.

5%의 자금조달 비용에서는 수익성이 있었던 사업도 금리가 7%로 올라가면 투자 판단이 완전히 달라진다. 차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나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새 채권으로 갈아타야 하는 기업에는 금리 몇 퍼센트포인트가 생존 문제로 바뀔 수 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집값은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집을 사기 위해 돈을 얼마에 빌릴 수 있는지가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월가의 5.34%가 태평양 건너 한국의 평범한 가계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비싼 돈’의 시대, 재무제표를 다시 써야 한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 5.34%가 앞으로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금리는 경제지표와 중앙은행의 정책 기대에 따라 언제든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세계 채권시장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숫자 하나보다 훨씬 크다.

끈질긴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가격, 늘어나는 국가채무와 국채 공급, AI 인프라를 둘러싼 천문학적인 민간 자금수요, 그리고 일본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이 구조가 지속된다면 높은 돈값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손님이 아닐 수 있다.

지난 20여 년간 정부와 기업, 가계는 금리가 결국 내려올 것이라는 환경에 익숙해졌다. 정부는 낮은 비용으로 국채를 발행했고 기업은 레버리지를 이용해 투자했으며 가계는 싼 대출을 기반으로 부동산을 샀다.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돈의 가격이 바뀌었다. 이제 문제는 금리가 언제 다시 내려오느냐가 아니다. 정부와 기업, 가계가 ‘싼 돈은 당연하다’고 믿으며 짜놓은 재무제표가 이 새로운 돈값을 견딜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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