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훈이 만난 사람
제 1편 조각가, 차홍규 – 하이브리드 작가, 조각가
차홍규, 그는 누구인가?
화가이기도 하고 조각가 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또 바보이기도 하다.
그의 전시회에 굳이 찾아가 만난 지 벌써 해를 넘기는 인연, 시간의 두터움이 높아질수록 그의 깊이를 알아가게 된다.
차홍규 그의 약력을 간단히 본다. 그는 참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이다.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청화대 교수를 한국인으로 12년간 재직했다가 금년 정년 퇴임을 했다. 현재는 중국 화남이공대학 광주학원 고문교수와 폴리텍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 25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 북경 문화창의박람회 초대작가 , 북경 SUN ART 갤러리 전속작가로도 활동했다 .
이런 화려한 경력을 쌓기 이전 그는 국립직업훈련원의 교수로 그 성실함과 뛰어남을 인정 받아 70 년 대 초 일본을 유학한 경험도 있다 . 아마도 가장 그의 심성을 잘 표현하는 경력인 것 같다 .
위에서 언급한 전시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전시회가 있다. 그가 양국 모두의 대표를 맡아 진행을 했다. 그 만큼 그가 한.중 양국에서 객관적인 인정을 받은 것으로 풀이 된다.
내가 그를 일컬어 바보라고 하는 건 그런 그가 제대로 된 초대전 없이 작년 모미술가협회의 수백명 공동 전시의 한 부스에 초라(?)하게 전시를 하고 있던 걸 알기 때문이다. 필자는 전혀 그 미술협회를 깍아 내릴 의도가 없다. 다만, 그가 만든 인맥이나, 정치력을 동원한다면 보다 나은 장소에서 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며 화려한 전시를 할 수 있음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물질 문명보다는 정신 문명을 정신 문명보다는 자연을 추구하는 그이기에 자연히 때가 있다고 믿는다 .
그는 스스로 팔리지 않는 작품을 한다고도 얘기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다고 한다. 다들 팔리는 작품의 시류를 쫓아 간다면 마음 담긴 생각 담긴 작품은 누가 만드느냐고 반문을 한다 .
보다 깊이 있게 그를 알기 위해 3주에 걸쳐 두 차례의 그의 강의를 들었다. 국내가 아닌 중국 최고명문 청화대 미술대 교수 출신인 그의 강의가 어떤지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 .
그는 스스로를 Hybrid 작가라고 한다. 나무나 쇠나 흙이나 모든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이 그의 작품의 도구이고 굳이 마다 하지 않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작가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 건, 본인은 디자인만하고 대부분 기술자들에게 맡기는 일반적인 조각가들하고 궤를 달리 한다. 그는 직접 조각작품과 금속작품을 만들기 위해 국가기술 자격증을 딴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5시간 30분 동안 끝내야 하는 과업의 국가기술직 자격증을 58분만에 끝내고 자격증을 취득했으니 그의 손재주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필자가 칭찬하고 싶은 건 비단, 그의 기술이 아니라 생각이다. 그가 생각하고 창조하는 세계를 그의 손으로 직접 세밀하게 표현하겠다는 작가적 양심의 발로, 그 부분에 크게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
두 번에 걸쳐 들은 그의 강의 얘기를 해 보겠다.
그가 던지는 화두로 가득 찬 강의는 일반적인 작가, 조각가가 강의 하는 정도의 깊이가 아니다. 오래도록 연구한 철학자가 강의하는 수준 이상의 깊은 늪으로 사람들을 끌어 들인다.
그는 강의 말머리에서 물질문명과 풍요로움 그리고 행복을 가지고 시작 한다.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도 언급 한다.
그가 느끼는 세상을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세상은 수 천 년을 두고 변해 왔고 또 발전해 왔다. 적어도 물질 문명은 예전에 비해 급속도로 변해 오고 있다는 주지의 사실에 주목 한다. 그러나 그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로움과 만족을 끌어 내었느냐, 그로 인해 물질적인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느냐의 근원적 질문에서 시작하여 물질적인 탐욕으로 지구 온난화의 가속화 과정과 기상이변, 지구 존재 자체의 피폐화 등 그의 화두는 사람을 지나 지구에 까지 닿고 있었다.
그가 하고 싶은 얘기는 넓고 깊었다. 그러나 그 행간을 찬찬히 보면 지독한 인간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 느낌과 마음이 오롯이 담긴 게 그의 작품들이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어렵다. 게다가 변화와 반성을 촉구하는 마음을 이루고 탐욕을 깨고자 만든 작품이니 밝을 리가 만무하다.
누가 그런 작품을 구입하고 싶어 하겠는가, 그가 스스로를 조롱하며 던진 말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 생각을 담은 진정을 위한 작품을 하겠다고 공언 한다. 작품만큼이나 그는 진정 바보다.
내가 들은 두 번 째 강의는 기독교인들이 전부인 모임에서의 강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수 천년, 부처님이 오신지 수 천년 왜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가! 종교가 생긴 이후가 종교 이전의 시대보다 더 행복한가!” 그는 거침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미소, 온화한 얼굴 어느 곳에 저리도 강한 면이 숨어 있나 참 궁금했다.
그의 강의는 물질 문명과 정신 문명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 추구, 동성 연애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없는 성 정체성의 표현, 지구의 주인이 인간인가 지구 자체 인가에 대한 숙고, 인간이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음 등등의 철학적인 작품에 대한 열정작인 설명으로 가득 채워 졌다.
그는 또 전통과 현대 라는 일반적인 용어 대신 전통과 창조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 했다. 필자는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차홍규 교수에게 던졌다. 그는 “현재와 현대가 과거를 바탕으로 한 진보적이고 생산적인 창조가 없다면 존재 자체의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대라는 단어 보다는 창조라는 단어를 즐겨 씁니다.” 이렇게 답한다. 그다운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과 이력이 작가를 온전히 대변할 수는 없다. 이력과 경력이 없어도 뛰어난 훌륭한 작가들이 많다.
나는 그의 경력과 지난 삶의 과정에 주목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저토록 깊은 인간애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이제 그 완숙함을 가득 풍기며 이 땅으로 돌아와 다시 열게 될 그의 미술 세계, 예술 세계는 어디일까? 또 어디로 향할까 많이 궁금했던 탓이다.
차홍규, 그는 감추어진 사람이다. 적어도 아직 이 땅에서는 그렇다.
그렇다고 그가 덜 유명하거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의 감추어진 그리고 오래도록 묵힌 그리고 삭힌 그의 예술이, 돌아온 조국에서 시작해 다시 세계로 퍼져 나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