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이미지가 축구와 삼바로 점철되는 ‘ 노란색 ’ 이라면 , 상파울루에 처음 도착해 느낀 색깔은 ‘ 회색 ’ 이었다 . 극심한 교통체증과 길가에서 쉽게 보게 되는 부랑자들 , 그리고 잿빛 하늘은 그동안 매체를 통해 접한 ‘ 범죄율이 높은 도시 ’ 라는 인식을 배가시켜주는 듯했다 .
하지만 상파울루라는 도시를 단지 ‘ 회색 빛깔 ’ 로 치부한다면 , 수도인 브라질리아보다 실제적인 경제 ‧ 문화의 도시라고 알려진 상파울루를 너무 기만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 왜냐하면 고물차들과 거지들 사이로 최고급 승용차들이 지나가고 , 초라한 아파트 반대편에는 호화저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이었다 . 극과 극이 공존하는 이곳 , 상파울루를 천천히 돌아보기로 했다 .
인간미 넘치는 도시 , 상파울루
상파울루의 주민들은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각각 뚜렷한 거주 구역을 형성하고 있다 . 비록 인종은 다양하지만 , 서로를 하나의 개체로 인정하고 , 각자의 존재를 공유하는 도시 분위기는 상파울루가 가진 특색이다 . 앞서 말했듯 , 일면만을 보고 규정지을 수 없으며 , 브라질을 포함한 전 세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인간 중심의 도시라고 볼 수 있다 .
브라질의 남동지역에 위치한 상파울루는 해발 800m 가 넘는 고원에 위치하며 , 도시 인구가 1,000 만 명이 넘는 남미 최대의 도시이다 . 1554 년 한 예수회 수도사가 전도를 목적으로 촌락을 세운 것이 도시의 기원이 됐으며 , 19 세기 후반 커피재배가 활발해지며 오늘날 대도시로 발전하게 됐다 .
상파울루 어디에서나 쉽게 한국인들을 볼 수 있긴 하지만 , 그중에서도 봉헤치로 (Bom Retiro) 는 대표적인 한인 밀집지역으로 , 2010 년 공식적으로 코리아타운이 지정되기도 했다 . 근처에 있는 루즈 역 (Estação da Luz) 에서도 쉽게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 또한 루즈역 앞 공원에서는 한가로운 산책과 함께 야외에 전시된 여러 조각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
역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주립 회화관 (Pinacoteca do Estado) 이 나온다 . 주립 회화관은 1905 년 창설됐지만 , 19 세기와 20 세기의 브라질 작품 전시를 위해 재건축 되었다고 한다 . 4 만 5 천 점이 넘는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브라질의 회화 역사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
회화관에서 남서쪽으로 대로를 따라 죽 내려가다 보면 성벤또 수도원 (Mosteiro de Sao Bento) 을 만날 수 있다 . 신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뾰족한 첨탑과 네모반듯한 건물이 모여 엄숙한 인상을 준다 . 수도원 내에는 웅장한 그림과 조각들 , 다양한 스테인드 글라스 벽화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 특히 성상들은 러시아 망명자들이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 그들의 안녕을 위해 잠시 기도를 드리고 서둘러 수도원을 빠져 나왔다 .
문화에 취한 후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다
수도원에서의 무거웠던 마음을 추스르고 이제 상파울루의 문화를 만나볼 차례다 . 하지만 상파울루에는 박물관만해도 50 여 개가 훌쩍 넘는다 . 또한 각 박물관에서는 날마다 전시회 , 강연회 , 영화제 등이 열리고 있어 , 박물관 구경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 그 중 대표적인 것은 파울리스타 대로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상파울루 미술관 (Museu de arte de Sao Paulo : MASP) 이다 . 도심 한가운데 넓게 자리 잡고 있는 이 미술관은 세계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가 가장 먼 건물로도 알려져 있다 .
남미 최대의 미술관 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 단 한 번도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않아 노획물 전시품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 이것 또한 특색이 아닐까 싶다 . 더욱이 이 박물관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라파엘로 , 반 고흐 , 세잔 , 렘브란트 , 피카소 등의 작품이 1,000 점 넘게 전시되어 있다 . 외양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이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삐랑가 공원 (Parque da Ipiranga) 을 찾았다 . 1882 년 만들어진 이 공원은 세 광장 남동쪽으로 약 4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 공원 내에는 1922 년 세워진 독립기념상이 있는데 , 포르투갈 황태자 돈 페드루 1 세가 말 위에서 칼을 빼 들고 ‘ 독립이냐 , 죽음이냐 ’ 라고 부르짖으며 브라질 독립선언을 한 곳이라고 한다 .
이 외에도 충성스러운 병사들의 동상들이 서 있고 , 그 밑에는 돈 페드루와 왕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 역동적인 동상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며 , 독립에 대한 그들의 확고한 신념이 느껴지는 듯했다 . 또한 , 공원 내에 있는 파울리스타 박물관 (Museu Paulista) 은 인디오들의 생활용품과 근대 상파울루의 역사적 유품들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 브라질과 상파울루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상파울루의 0 번지 , 세 광장
상파울루가 브라질의 중심 도시라고 한다면 , 세 광장 (Praça da Sé) 은 상파울루의 중심인 곳이다 . 이 광장은 이른바 교황청 관구 광장으로 상파울루 가의 0 번가로 알려져 있다 . 군사 독재 시절 지하 저항운동의 본산지로 브라질 민주화운동을 위한 집회장소로 유명하며 , 상파울루 최대 거리답게 30 미터도 넘는 거리들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
넓은 대로 한복판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건물이 바로 세 성당 (Categral da Sé) 이다 . 현재 성당의 모습은 약 40 년간의 건축 공사 끝에 1954 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나 , 1552 년에 처음 건축되었다는 설도 있다 . 성 벤또 수도원처럼 이 성당 또한 고딕양식으로 지어져 , 오래된 역사의 흔적과 어우러진 멋을 자아낸다 .
세 광장에서 15 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헤뿌블리까 공원 (Praça da República) 이 나온다 . 흡사 한국의 명동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노천 시장이 볼만하다 . 토산물과 수공예품 등을 거래하는 시장들 사이사이에는 브라질의 향토요리를 파는 노점상들도 많아 시끌벅적한 상파울루 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
다양한 인종들과 마주하며 , 거리를 누비다 보니 어느새 상파울루에서 처음 느꼈던 ‘ 회색 ’ 이 사라져 버렸다 . 상파울루는 극단이 공존하는 도시일 뿐만 아니라 , 세계 각국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열려 있는 도시였다 . 이 도시에서 여행객들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 어엿한 브라질인 중의 하나인 것이다 . 새로움이 낯설지 않은 도시 , 상파울루는 오늘 하루도 변신을 거듭하며 남미의 상업 , 산업 ,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 발전해 나가고 있다 .
가는 길
대한항공에서 LA 를 경유한 항공편을 월 ‧ 수 ‧ 금 운항한다 . 출발시간은 20 시 45 분이며 , 도착시간은 11 시 ( 현지 시간 ) 로 , 약 26 시간 30 분 정도가 소요된다 ( 시차 적용시 14 시간 30 분 ). 시차는 우리나라가 상파울루 보다 12 시간 빠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