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2월 17일자 쿠팡 보도를 함께 읽는다 ” [단독] ‘과로사 CCTV 본 쿠팡 김범석 “시급제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겠어?”
2025년 12월 17일, 한겨레는 쿠팡을 다룬 기사 한 편을 보도했다. 이 글은 그 기사에서 제시된 사실의 진위를 다투지 않는다. 대신 제목과 문장, 배열과 출처 처리 방식이 어디에서 설명을 멈추고 판단을 대신하기 시작했는 지를 차분히 짚어본다.
한 편의 기사는 사실을 전달할 수도 있고, 결론을 대신 내려줄 수도 있다. 두 방식은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보이지만, 저널리즘의 선을 가르는 기준은 분명하다. 판단을 독자에게 남기는가, 아니면 판단을 기자가 선점하는가. 문제의 보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제목에서 이미 결론을 쓴다
기사의 제목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기능적으로는 판결문에 가깝다. ‘과로사 CCTV’라는 전제를 깔고, 특정 인물의 발언을 단정적으로 인용한다. 이 배열 속에서 독자는 본문에 들어가기 전 이미 감정적 결론에 도달한다.
판결형 제목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하다. 독자가 판단에 도달하기 전에, 기자가 먼저 방향을 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제목이 사실의 범위를 제시하지 않고 도덕적 평가를 선점하는 순간, 기사는 정보 제공에서 정서 주입으로 성격을 바꾼다.
첫 문단에서 감정을 먼저 호출한다
문제의 기사는 27세 노동자의 사망으로 시작한다. 실명과 나이, 사인과 고강도 노동이 한 덩어리로 제시된다. 이 배열은 설명 이전에 분노를 호출한다. 죽음이 먼저 제시되고, 그 다음 책임자를 찾게 만드는 구조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사망 원인과 이후 등장하는 내부 메신저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아직 설명되지 않는다. 감정이 앞장섰지만, 설명이 뒤따르지 않는다. 이는 독자의 판단 순서를 거꾸로 배치하는 방식이다.
메신저는 사실이 아니라 해석으로 쓰인다
기사의 핵심 증거로 제시된 것은 내부 메신저 일부다. 인용된 문장은 “시급제 노동자는 성과가 아니라 시간급을 받는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 문장은 노무·경영의 맥락에서 보면 성과 평가 구조에 대한 설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기사에서는 이 발언을 노동관·인간관의 고백으로 번역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맥락들이 빠진다. 실제 물류센터의 평가 방식은 무엇인지, 물량 압박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계약과 배치 구조는 어떻게 설계돼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분석이 생략된 자리에는 도덕적 해석만 남는다.
이 기사에서 가장 위험한 단어, ‘의지’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은 ‘의지’라는 단어의 사용이다. 기사에는 책임 회피의 배경에 특정 인물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취지의 문장이 등장한다.
의지는 형사·행정 책임 판단에서 가장 엄격하게 입증돼야 하는 영역이다. 단일 메신저 일부, 단일 제공자, 제공자는 현재 회사와 소송 중인 전 임원이라는 조건에서 개인의 의지를 추정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레드라인에 가깝다. 이는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성격 규정에 해당한다.
출처 정보의 배치가 판단을 제한한다
이 기사에서 핵심 자료를 제공한 인물은 쿠팡과 부당해고 소송을 진행 중인 전 CPO다. 이 사실은 기사 말미에서야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출처를 숨겼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다만 출처 정보의 배치 방식이 독자의 판단 가능성을 제한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론직필이라면 왜 이 인물이 해당 자료를 보유했는지, 소송의 쟁점은 무엇인지, 메신저의 법적·기술적 신뢰성은 어떻게 검증됐는지를 본문에서 설명해야 한다. 그 설명이 뒤로 밀릴수록 독자의 판단은 기자의 해석에 더 의존하게 된다.
반론은 읽히지 않게 배치된다
쿠팡의 반론은 기사 마지막에 짧게 처리된다. 추가 설명이나 교차 검증은 없다. 이 시점에서 독자의 판단은 이미 형성된 뒤다.
이는 균형 잡힌 반론이라기보다 형식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반론의 존재 자체보다, 그것이 언제 어떤 맥락에서 제시되는 지가 독자의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정리하면
이 기사가 노린 것은 무엇인가
여기까지를 종합하면, 이 보도가 노린 것은 과로사의 규명도, 노동 구조의 해부도 아니다. 법적 책임을 따지는 기사도 아니다.
기사의 문장과 배열, 타이밍이 향하는 결론은 비교적 분명하다. 특정 인물은 문제가 있으며, 기업은 문제 기업이고, 지금 압박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개인정보 유출 논란과 국회 공세가 겹친 시점에 맞춰진 타이밍 역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 기사는 사실을 사용했지만, 판단을 독자에게 남기지 않았다.
사실은 재료였고,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순간, 기사는 보도를 넘어 공격이 된다.
미디어원 ㅣ 이만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