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찬 기자 ㅣ 미디어원
가족을 살린 제도, 한국 복지의 중요한 진전
장기요양인정제도는 대한민국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핵심 관문이자, 한국 복지의 중요한 진전이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으로 6개월 이상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돌봄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출발했고, 실제로 수많은 가정을 버티게 했다. 가족이 홀로 감당하던 돌봄의 무게를 사회가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한국이 만든 가장 좋은 정책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누구도 장기요양인정제도의 존재 이유를 쉽게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초고령사회가 현실이 되면서 장기요양인정제도가 꼭 필요한 중증 돌봄의 버팀목을 넘어, 자칫하면 광범위한 노년 생활지원으로까지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지금처럼 대상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흐름이 이어질 경우 재정 부담과 형평성 논란이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부자도 받을 수 있는 장기요양인정제도… 쟁점은 자격보다 운영 방식이다
현행 장기요양인정제도는 재산이 많다고 해서 자격을 원천적으로 막지 않는다. 이 제도는 빈곤층만을 위한 선별 복지가 아니라 사회보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가급여는 본인부담 15%, 시설급여는 20%가 원칙이고, 의료급여 수급권자나 일정 소득·재산 이하 계층은 본인부담을 감경받는다. 다시 말해 지금 제도는 “부자는 못 받는다”가 아니라 “부자도 받을 수 있지만 부담 경감 폭은 다르다”는 방식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란이 시작된다. 재산이 많고 자녀들이 전문직이며 사적 돌봄 능력이 충분해 보이는 가정도 인정등급만 나오면 공적 돌봄을 이용할 수 있다. 법적으로만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초고령사회에서 수급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라면, 이제 따져야 할 것은 자격 그 자체보다 이 제도가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좋은 제도인데, 왜 불안이 커지는가
훌륭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려가 커지는 부분도 있다. 바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다. 장기요양 인정은 원칙상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지를 보는 제도지만, 현장에서는 경계가 생각보다 모호하다. 겉으로 걸을 수 있고 말도 또렷해 보여도 실제로 식사, 배변, 이동, 낙상 위험, 복약 관리, 야간 안전, 인지 저하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일상생활이 상당 부분 가능한데도 제도를 잘 아는 가족과 기관이 개입하면 인정의 문턱이 느슨하게 작동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방문요양 역시 원래는 수급자 본인을 위한 신체활동·가사활동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관련 기준도 가사 및 일상생활 지원은 수급자 본인을 위해 제공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 사이에서 “조금만 준비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제도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부유층이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가야 할 자원이 넓고 느슨하게 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미 시작된 재정 압박
이 우려를 과장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숫자에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장기요양보험 수입은 16조 1,296억 원, 지출은 15조 2,937억 원이다. 수급자 수는 2022년 101만 9천 명, 2023년 109만 8천 명, 2024년 116만 5천 명으로 계속 늘었다. 정부가 2026년도 장기요양보험 수가와 재정운영 방향을 논의하면서 보험료율을 0.9448%로 유지·조정한 것도 이 같은 증가 흐름을 이미 무겁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당장 제도가 무너진다고 말할 단계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대상자가 해마다 빠르게 늘고, 평균수명은 길어지고, 돌봄 기간은 더 길어지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운영 방식이 오래 버틸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피할 수 없다. 제도는 한번 넓혀놓으면 다시 줄이기 어렵다. 결국 부담은 보험료 인상, 급여 축소, 혹은 더 절박한 사람의 대기와 배제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75세 이후 폭증하는 돌봄 수요
인구 구조를 보면 걱정은 더 선명해진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치매역학조사에 따르면 치매 유병률은 75~79세 10.70%, 80~84세 15.57%, 85세 이상 21.18%로 올라간다. 정부도 연령이 증가할수록 치매 유병률이 뚜렷하게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치매만이 문제가 아니다. 근력 저하, 이동 능력 저하, 낙상 위험, 복약 관리, 배변과 식사 보조 등은 고령층에서 함께 늘어난다.
결국 75세, 80세, 85세를 지나며 기능 저하 노인이 폭증하는 사회에서는, 장기요양 인정 신청이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때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 원하니 많이 준다”는 식의 단순 확대가 아니다. 정말 공적 돌봄이 먼저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기준과 순서다.
선의에 맡겨둘 수 없는 문제
물론 이상적인 사회라면 재산이 넉넉한 가정이 “우리는 사적으로 감당하겠다”고 양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는 개인의 선의에 기대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남들도 다 받는데 왜 우리만 안 받느냐”는 심리가 강하게 작동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개인의 양심을 탓하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제도든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 손봐야 할 것은 사람보다 운영 기준과 적용 방식이다.
이제는 운영 방식을 손볼 때다
해법은 단순하지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먼저 인정조사를 더 엄격하고 촘촘하게 다듬어야 한다. 외형상 걷느냐 못 걷느냐가 아니라 식사, 배변, 이동, 야간 안전, 낙상 위험, 인지 상태, 복약 관리 같은 실제 생활 능력을 더 세밀하게 봐야 한다. 재평가 주기도 현실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
또 자격을 일괄적으로 막는 방식보다 본인부담을 더 세분화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 사회보험의 틀은 유지하되, 상위 자산가와 고소득층의 공적 재정 의존도는 낮추는 방향이다. 가족의 돌봄 역량이나 사적 부담 능력을 자격 박탈 기준으로 삼는 데에는 신중해야 하지만, 서비스 한도나 우선순위 조정에는 일정 부분 반영하는 논의가 가능하다. 지금처럼 모두를 거의 같은 문으로 들여보내는 방식으로는 초고령사회의 재정 압박을 오래 버티기 어렵다.
더 많이 주는 복지가 아니라, 먼저 가야 할 곳에 가는 복지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없애야 할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지켜야 할 제도다. 그래서 더 냉정하게 손질해야 한다. 좋은 제도일수록 남용과 팽창 가능성까지 함께 점검해야 오래 간다. 중증 돌봄이 필요한 노인에게 먼저 가야 할 공적 자원이 경계가 흐려진 채 넓게 퍼지기 시작하면, 가장 약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본다.
초고령사회에서 복지는 무조건 넓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누가 먼저 받아야 하는지, 어디까지를 공적 책임으로 볼 것인지, 그리고 누가 더 많이 부담해야 하는지를 다시 따지는 일, 바로 거기서부터 지속 가능한 복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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