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사건이 거의 동시에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하나는 이관술에 대한 재심 무죄 구형이고, 다른 하나는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서훈을 다시 문제 삼겠다는 움직임이다. 한쪽은 사법적 판단의 문제처럼 보이고, 다른 한쪽은 역사 평가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지금 이 사회가 법과 국가의 기준을 어디까지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정확히 이어진다.
[미디어원=이정찬 기자] 재심 무죄는 법의 영역이다. 과거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가 지켜졌는지, 국가권력이 개인에게 과도한 폭력을 행사했는지를 다시 따지는 일이다.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재심 무죄는 개인의 형사적 책임을 다시 묻는 문제이지, 그 사람이 속했던 조직이나 사상, 이후의 정치적 노선까지 국가가 승인하거나 복권하는 절차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담론은 이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린다. 개인에 대한 재심 무죄가 곧바로 ‘역사의 재평가’로 확장되고, 나아가 국가가 과거에 내린 모든 판단이 부당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법적 시정이 정치적·이념적 재해석으로 비약하는 순간이다. 이 지점에서 사법은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역사 재편의 수단으로 오해되기 시작한다.
박진경 대령의 서훈을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혼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서훈은 사법 판결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어떤 행위를 공적으로 기억하고 기릴 것인지에 대해 내린 공식적 판단이다. 개인의 삶 전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점에서 국가의 존립과 안전에 기여한 공적을 판단하는 행위다.
서훈의 기준은 단순한 도덕적 호불호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와 국가 정체성에 대한 판단이며, 그 질서를 지키기 위해 누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국가의 기록이다. 이 기준은 정권의 성향이나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가볍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국가의 기억은 더 이상 축적되지 않고 매번 재편된다.
최근 등장한 논리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 국가폭력이 있었으니, 그 폭력과 연루된 모든 판단은 다시 써야 한다고. 이 주장은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위험하다. 사법적 잘못을 바로잡는 것과 국가의 공적 판단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정의의 회복이지만, 후자는 기준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차이를 지우는 순간, 국가는 스스로를 부정하게 된다. 오늘의 정부가 어제의 국가를 부정할 수 있다면, 내일의 정부는 오늘의 판단을 언제든 다시 뒤집을 수 있다. 그때 남는 것은 기준이 아니라 권력뿐이다. 국가의 판단이 시대의 감정이나 정치적 요구에 따라 흔들리기 시작하면, 공적의 의미는 사라지고 모든 평가는 일시적 유불리에 종속된다.
이관술 재심 무죄 구형이 의미하는 것은 그 개인이 받았던 형사 처벌의 정당성에 대한 재검토다. 그것이 곧바로 특정 조직의 정당성이나, 이후 체제 전복 노선까지 포함한 역사 전체를 다시 승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선을 넘는 순간, 법은 공정함을 잃고 정치의 언어로 전환된다.
박진경 대령의 서훈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서훈을 박탈하려면, 그 공적 자체가 허위였거나 국가의 존립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가 입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재평가가 아니라 정치적 재단이다. 국가는 스스로 세운 기준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를 향한 분노의 확장이나 성급한 뒤집기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구분이다. 재심은 재심대로, 서훈은 서훈대로 다뤄야 한다. 법의 영역과 국가의 기억은 다르다. 이 둘을 섞는 순간, 정의는 또다시 흐려진다.
이 연재가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을 바로잡으려 하는가. 개인의 억울함인가, 아니면 국가의 기준인가.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려는 욕심이 결국 둘 다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다음 회 차에서는 ‘독립운동’이라는 이름이 어디까지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과 이후의 좌익 활동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구분이 사라질 때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다시 쓰이기 시작하는 지를 짚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