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기자 ㅣ 미디어원
[생각의 발견]
아리랑.
한국 사람 가운데 아리랑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조금 멀어진 노래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였다.
해외에 나가 한국을 알릴 때도 아리랑이었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흥이 오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구성지게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너무 익숙한 가사다.
그래서 우리는 별생각 없이 불렀다.
아리랑에는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겨 있다고 했다. 한(恨)의 정서가 있고, 떠나고 헤어져야 했던 조상들의 슬픔이 있고, 수많은 고난을 견뎌온 한국인의 삶이 녹아 있다고 배웠다.
물론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가사를 거창한 ‘민족의 한’ 같은 말은 모두 내려놓고 그냥 말뜻 그대로 한번 읽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특히 마지막 두 줄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잠깐.
이게 그렇게 애잔하고 얌전한 노래인가?
나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에게 십리도 못 가서 발에 병이나 나라고 한다.
요즘 말로 풀면 거의 이렇다.
“나를 버리고 가? 그래, 가봐라. 어디 잘 가나 보자.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나 나봐라.”
생각보다 독하다.


“어디 잘 가나 보자”
사랑하던 사람이 나를 버리고 떠났다.
남은 사람은 화가 났다.
그리고 한마디 한다.
“어디 잘 가나 보자.”
그런데 백리 가서도 아니고 천리 밖에서도 아니다.
십리도 못 가서.
십리길은 옛사람에게 세상 끝까지 가는 엄청난 장거리 같은 것은 아니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오리길”, “십리길”이라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썼다. 학교까지 십리길을 걸어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니 이 말의 재미는 십리가 엄청나게 먼 길이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정도도 제대로 못 가서 탈이나 나버려라.”에 가깝다.
그리고 걷는 것이 기본이던 시절에 발에 병이 난다는 것은 꽤 곤란한 일이다.
택시를 부를 수도 없고,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없다.
가기는 가야겠는데 발이 아프다.
상당히 실용적인 악담이다.


그런데 왜 ‘놈’이 아니라 ‘님’일까
그런데 이 노래를 정말 재미있게 만드는 말은 따로 있다.
‘놈’이 아니라 ‘님’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놈은”이 아니다.
자기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인데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이라고 한다.
그렇게 미우면 그냥 ‘놈’이라고 해도 될 텐데 끝까지 ‘님’이다.
여기서 속마음이 조금 들킨다.
미워 죽겠는데 아직 좋아한다.
화가 났는데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저주도 묘하다.
죽으라는 것도 아니다.
망하라는 것도 아니다.
멀리 가지 못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노랫말을 조금 거칠게 풀면 이런 얘기로도 들린다.
“그래, 나 버리고 가봐라.
어디 얼마나 잘 가나 보자.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날 텐데.”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네가 튀어봐야 벼룩이다.”
아리랑은 생각보다 꽤 독하고 꽤 솔직한 노래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리랑을 ‘한민족의 한’이라는 말로 설명해왔다.
슬픔을 참고, 이별을 견디고, 눈물을 속으로 삼키는 사람들의 노래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적어도 이 대목의 화자는 그렇게 얌전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자 고개 숙여 울고만 있지 않는다.
“그래, 가봐라.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나 나봐라.”
악담도 한다. 저주도 퍼붓는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을 끝까지 ‘놈’이 아니라 ‘님’이라고 부른다.
미워할 줄도 알고, 화낼 줄도 알고, 사랑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리랑 속 정서를 단순히 ‘한’이라는 한 글자로만 가둬두는 것은 어쩌면 너무 점잖은 해석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어머니와 누이들이 언제나 슬픔만 삼키며 살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억울하면 원망했고, 버림받으면 화도 냈고, 때로는 떠나는 사람의 등에 대고 독한 말 한마디쯤 내뱉었을 것이다.
“어디 잘 가나 보자.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나 나라.”
아리랑에는 그런 힘도 있다.
슬픔만 있는 노래가 아니다.
정도 있고, 화도 있고, 사랑도 있고, 악담도 있다.
그래서 오래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너무 고상해서가 아니라,
너무 사람 같아서.
찾아보니까…우리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아리랑을 우리처럼 읽은 사람은 없었을까.
그래서 조금 더 찾아봤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게 나왔다.
우리가 “이거 생각보다 꽤 독한 노래인데?”라고 느낀 것이 전혀 엉뚱한 생각만은 아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이별’ 항목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대목을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결국 악담이지 축복일 수는 없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더 재미있는 노래도 있었다.
국립국악원 아카이브에 남아 있는 서도민요 〈사설난봉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이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고, 이십리도 못 가서 불한당을 만나고, 삼십리도 못 가서는 결국 되돌아온다.
기가 막힌다.
십리 — 발병.
이십리 — 불한당.
삼십리 — 귀환.
떠나기는 떠났는데 가는 길이 영 순탄하지 않다.
우리가 아리랑을 읽으면서 웃으며 떠올렸던 “그래, 가봐라. 네가 어디까지 가겠어.” 하는 마음과 묘하게 닮았다.
물론 〈사설난봉가〉의 이 노랫말이 아리랑의 원래 뒷부분이라는 뜻은 아니다.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 재미있다.
옛사람들의 노래 속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언제나 애절하고 얌전하지만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화가 나면 발병이나 나라고 악담도 했다.
그러면서 또 ‘님’이라고 불렀다.
사랑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원망도 하고, 욕도 하고.
사람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우택의 2007년 논문 「아리랑 노래의 정전화 과정 연구」를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노랫말은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이전부터 존재했다.
이 연구는 이전의 잡가 아리랑에서 이 노랫말이 유흥의 자리에서 가정된 이별을 불러내 오히려 만남과 흥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이후 영화 《아리랑》과 결합하면서 생이별과 민족적 비극의 의미가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오늘 아리랑을 들으며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한민족의 한’이라는 이미지가 처음부터 이 두 줄에 하나의 뜻으로만 박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아리랑’ 항목 역시 아리랑 안에 한탄과 체념만이 아니라 항거와 비판, 삶의 의지, 익살과 넉살, 때로는 지독한 악담과 욕까지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아리랑은 우리가 기억했던 것보다 조금 더 독했고, 조금 더 웃겼고, 무엇보다 훨씬 더 사람이 사는 노래였다.
미디어원 Copyrights ⓒ MediaOn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