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정치 호남 소외론은 망국병인가① | 경부고속도로는 정말 ‘영남 특혜’였나

호남 소외론은 망국병인가① | 경부고속도로는 정말 ‘영남 특혜’였나

경부고속도로가 먼저 뚫려 영남은 발전하고 호남은 낙후됐다는 주장은 반세기 동안 반복돼 왔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 개통 5개월여 뒤 호남고속도로 대전~전주 구간이 열렸고, 여수·광양에는 기간산업이 들어섰다. 오래된 통념을 기록과 산업화의 흐름으로 다시 검증한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의 역사적 현장을 재현한 흑백 이미지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를 재현한 장면.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은 1970년 7월 7일 개통됐다.

경부고속도로가 먼저 뚫렸기 때문에 영남은 발전했고, 호남은 차별받아 낙후됐다.

반세기 가까이 반복돼 온 ‘호남 소외론’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경부고속도로는 영남 특혜의 상징으로, 호남의 경제적 격차는 그 결과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기록을 보면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부산 전 구간이 개통된 것은 1970년 7월 7일이다. 호남고속도로 대전~전주 구간은 같은 해 12월 30일 개통됐다. 차이는 불과 5개월여다.

경부고속도로가 먼저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5개월여의 개통 시차를 두고 ‘영남에는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호남은 외면했다’고 말하는 것은 실제 건설 기록과 맞지 않는다. 더구나 이 짧은 선후를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호남 낙후의 출발점으로 규정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호남고속도로는 대전~전주에서 멈추지도 않았다. 전주~순천 구간이 1971년 기공됐고 1973년 11월에는 전주~순천 구간까지 이어졌다. 같은 날 순천~부산을 잇는 남해고속도로도 개통됐다.

 

호남고속도로 순천 톨게이트의 옛 모습을 담은 흑백 이미지
호남고속도로 순천 톨게이트의 옛 모습. 호남고속도로 대전~전주 구간은 1970년 12월 30일 개통됐다.

불과 5개월여의 개통 차이가 어떻게 ‘영남 특혜와 호남 소외’의 역사적 증거가 될 수 있는가.

개발에는 순서와 우선순위가 있다. 먼저 시작된 사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뒤따른 지역이 차별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적어도 ‘영남을 우대하기 위해 호남을 배제했다’는 주장이라면, 호남이라는 지역적 이유로 사업을 의도적으로 제외하거나 불리하게 처리했다는 정책적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고속도로 건설 연표는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산업화의 기록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1970년대 대한민국 경제개발의 중심에는 철강·석유화학·조선·기계·전자 등 중화학공업이 있었다. 대규모 제철소와 석유화학단지, 조선소는 아무 곳에나 세울 수 없었다. 넓은 부지와 항만, 전력과 공업용수, 원료 반입과 제품 수출을 감당할 물류망이 필요했다.

정부는 한정된 자본을 전국에 똑같이 나누기보다 산업의 특성과 입지조건에 따라 거점을 정했다. 울산에는 석유화학과 조선, 포항에는 제철, 창원에는 기계, 구미에는 전자산업이 자리 잡았다.

이 결과만 떼어놓으면 ‘영남 집중개발’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호남에는 여수가 있었다.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아래 추진된 공업기지 개발에는 울산·포항·마산·창원과 함께 여천이 포함됐다. 여천석유화학공업기지가 조성됐고 1978년 여천석유화학공단이 준공됐다.

광양도 뒤를 이었다. 1981년 광양제철소 입지가 확정됐고, 1987년 첫 고로가 가동되면서 광양은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또 다른 핵심 거점으로 성장했다.

여수와 광양은 지역경제를 보완하기 위해 들어선 작은 지방공단이 아니다. 석유화학과 철강이라는 대한민국 국가 기간산업의 핵심 축이다.

전남 광양의 대규모 철강산업단지와 제철시설 전경
ㅇ전남 광양의 철강산업 거점. 여수 석유화학과 광양 철강산업은 호남의 국가 산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호남을 지역 자체로 산업화에서 배제했다면 여수 석유화학과 광양 제철이라는 두 거대한 산업축은 설명되지 않는다.

영남 내부를 봐도 ‘경부고속도로가 영남 전체를 발전시켰다’는 설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같은 영남에서도 울산·포항·창원·구미처럼 전략산업이 대규모로 들어선 도시와 그렇지 않은 지역의 성장경로는 달랐다. 경부고속도로가 영남이라는 지역 전체의 산업성장을 자동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다.

영남이어서 발전한 것이 아니다. 산업이 들어선 곳이 발전한 것이다.

물론 고속도로가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경부고속도로는 수도권과 대전·대구·부산을 연결하고 부산항으로 이어지는 국가 기간교통망으로 한국 산업화와 수출경제를 크게 촉진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가 대한민국 산업화에 기여했다는 사실과 그 도로 때문에 호남이 낙후됐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명제다.

경부고속도로 견설현장에서 막걸리를 뿌리는 박정희대통령
경부고속도로 견설현장에서 막걸리를 뿌리는 박정희대통령

전자는 사실이다. 후자는 사실이 아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열린 지 5개월여 뒤 호남고속도로가 개통됐고, 3년 뒤에는 전주~순천까지 이어졌다. 국가의 산업개발 과정에는 여천이 포함됐으며 이후 광양에는 대규모 철강산업이 들어섰다. 반대로 영남 안에서도 전략산업의 입지에 따라 지역별 성장의 명암은 갈렸다.

이 기록을 지운 채 ‘영남에는 고속도로와 공장을 몰아주고 호남은 버렸다’는 한 문장만 남기면 역사는 정치적 구호가 된다.

그런데 바로 그 단순한 설명이 반세기 가까이 강한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산업입지와 자본축적, 항만과 물류, 기업투자와 도시성장을 설명하는 것보다 ‘한쪽에는 주고 한쪽은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훨씬 쉽고 강하기 때문이다. 경제의 문제는 어느 순간 지역감정의 문제가 되고, 정책 실패와 산업경쟁력의 문제는 가해 지역과 피해 지역이라는 정치적 구도로 바뀐다.

호남의 경제적 어려움과 지역격차를 부정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확하게 따져야 한다.

산업구조가 문제라면 산업구조를 말해야 한다. 기업투자가 부족하다면 기업이 왜 들어오지 않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청년이 떠난다면 일자리와 교육, 정주 여건과 도시경쟁력을 살펴야 한다. 중앙정부의 투자가 부족했는지, 충분했는지, 투입된 자원이 실제 지역 성장으로 연결됐는지도 따져야 한다.

잘못된 원인으로는 정확한 처방을 만들 수 없다.

‘경부고속도로 때문에 호남이 낙후됐다’는 오래된 설명을 계속 붙잡고 있다면 정작 오늘의 호남을 만든 진짜 원인을 놓칠 수 있다. 그것이 호남 소외론을 다시 검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지 56년이 지났다.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가 열렸다. 같은 해 12월 호남고속도로가 열렸다. 이것이 기록이다.

이제 1970년의 기억만으로 2026년의 호남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오늘도 호남이 소외돼 있다면 오늘의 숫자가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도로와 철도, 항만과 공항, 산업단지와 기업, GRDP와 주민소득, 재정과 인구.

호남은 2026년 현재도 정말 소외돼 있는가.

다음 편: 호남 소외론은 망국병인가② — 2026년 지금도 광주·전남은 정말 낙후됐나

2부에서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현재의 객관적 지표와 숫자로 확인한다.

미디어원 Copyrights ⓒ MediaOn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