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문화 《오디세이》, 고전은 위대하다…그런데 영화도 재미있을까

《오디세이》, 고전은 위대하다…그런데 영화도 재미있을까

고전은 위대하다. 그러나 위대한 고전이 언제나 재미있는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2,700년 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IMAX와 스타 배우들로 되살렸다. 관건은 하나다. 오늘 관객이 이 오래된 신화를 정말 믿고 끝까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느냐다.

거친 바다를 바라보는 고대 전사의 모습
2,700년 전 호메로스가 남긴 영웅의 귀환 서사는 오늘 다시 거대한 스크린 위에 호출됐다.

이정찬 기자 ㅣ 미디어원

 

오래전, 아주 오래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를 만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만남이 그리 신나는 만남은 아니었다. 고전이라는 게 대개 그렇다. 한 권을 읽고 나면 정말 대단한 일을 끝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그 작품들이 위대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아 인간이 만든 이야기의 원형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의 자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전쟁과 귀환, 사랑과 배신, 복수와 용서, 인간의 욕망과 신의 장난까지 우리가 오늘 영화와 드라마에서 만나는 수많은 이야기의 뿌리가 그 안에 있다.

그런데 고전이 위대하다는 것과 영화가 재미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오디세이》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오래된 신화를 오늘의 관객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되살릴 수 있느냐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오디세이》를 선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도 그것이었다. 놀란이니까 대단한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보다 먼저, 과연 이 이야기를 지금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마친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의 여정을 그린다. 바다를 떠돌고, 괴물을 만나고, 신들의 분노를 사고, 유혹을 견디고, 동료들을 잃는다. 집에서는 아내 페넬로페가 남편을 기다리고 수많은 구혼자들이 그의 왕국을 차지하려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신과 괴물은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2026년의 관객은 다르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가 나타나고 세이렌이 노래하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인간의 항해를 방해한다. 책에서는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장면도 영화에서는 조금만 잘못 표현하면 우스워질 수 있다.

불타는 도시와 거대한 트로이 목마 앞에 선 고대 전사
트로이 전쟁과 귀환의 여정은 《오디세이》 전체를 떠받치는 거대한 배경이다.

이게 놀란의 진짜 숙제다.

거대한 제작비와 IMAX 카메라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관객이 그 세계를 믿게 만드는 일이다. 신화를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유치하지 않아야 하고, 사실적으로 만들면서도 신화의 장엄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대작들은 이 문제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 《벤허》나 《쿼바디스》 같은 영화는 당대 최고의 물량과 스펙터클로 고대 세계를 현실처럼 만들어냈다. 《스타워즈》는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면서 관객에게 그 세계의 규칙을 받아들이게 했다. 《아바타》 역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행성과 생명체를 보여줬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은 판도라를 실제 세계처럼 받아들였다.

거대한 전사들과 맞서는 오디세우스를 형상화한 장면
현대 관객에게 키클롭스와 괴물, 신들의 개입을 어떻게 믿게 만들 것인가. 놀란이 넘어야 할 가장 어려운 벽이다.

놀란에게 필요한 것도 결국 그것일 것이다. 관객이 ‘저게 말이 되나’라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것.

물론 조건은 좋다. 놀란은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오펜하이머》를 거치며 거대한 아이디어를 실제 공간과 물리적 이미지로 바꾸는 데 누구보다 능숙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오디세이》 역시 IMAX라는 거대한 화면과 실제 로케이션, 물리적 세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조금 다르다. 원자폭탄도, 우주여행도, 시간의 역전도 결국 놀란이 세운 현실적 논리 안에서 움직였다. 《오디세이》에는 처음부터 신화가 있다. 인간보다 거대한 존재들이 등장하고 신이 인간의 운명에 직접 개입한다.

불길 속 거대한 목마와 고대 전사들의 전투 장면
고전의 권위만으로 관객을 붙잡을 수는 없다. 결국 스크린 위에서는 영화 자체가 재미있어야 한다.

그걸 사실처럼 보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신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어쩌면 영화의 성패는 바로 그 선택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는다.

재미다.

고전이라는 이름은 영화관에서 아무런 특권도 주지 않는다. 호메로스가 2,700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관객이 두세 시간 동안 지루함을 견뎌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관객은 문학사 시험을 보러 영화관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놀란의 《오디세이》가 진짜 성공하려면 ‘위대한 고전을 충실하게 영화화했다’는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디세우스의 배가 출항하는 순간부터 마지막 귀환까지 관객을 붙들어야 한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가 궁금하다. 호메로스의 위대함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감독이 2,700년 된 이야기를 들고 와서 오늘의 관객을 정말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고전은 이미 위대하다.

이제 증명해야 할 것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