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국제 베네치아 비엔날레 러시아관 파문…예술제는 전쟁 앞에서 중립일 수 있나

베네치아 비엔날레 러시아관 파문…예술제는 전쟁 앞에서 중립일 수 있나

베네치아 비엔날레 러시아관 파문은 올해 세계 문화계가 피하기 어려운 논쟁을 드러냈다. 푸시 라이엇과 FEMEN의 항의 시위는 러시아의 국가관 복귀가 단순한 전시 참여인지, 전쟁 책임을 흐리는 문화 외교인지 묻고 있다. 예술의 자유와 검열 반대 원칙은 중요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제 예술제가 어떤 초청 기준과 윤리적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러시아관 파문은 올해 세계 문화계가 피하기 어려운 문제를 정면으로 꺼냈다. 러시아 펑크 그룹 푸시 라이엇과 우크라이나 여성주의 단체 FEMEN 활동가들은 5월 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러시아관 앞에서 색연기를 피우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가 비엔날레 국가관 무대에 돌아온 것을 비판했다. 경찰이 러시아관 진입을 막으면서 큰 충돌은 피했지만, 러시아관은 잠시 폐쇄됐고 논란은 전시장 밖으로 번졌다.

김미래 기자 ㅣ 미디어원

러시아관 복귀가 왜 이렇게 큰 논란이 됐나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국제 미술 행사로 꼽힌다. 국가별 전시관이 있는 만큼, 참여 자체가 작가 개인의 전시를 넘어 국가의 문화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위가 된다. 러시아관 논란이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인 작가가 작품을 내는 것과 국가 이름을 단 전시관이 공식적으로 열리는 것은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국가관으로 돌아오는 순간, 전시는 곧 문화 교류가 아니라 정치적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주최 측은 러시아 참여를 허용한 결정을 방어하고 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측은 예술제가 법정이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외교 관계가 있는 국가의 참여를 일괄적으로 막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표현의 자유와 검열 반대는 예술제가 오랫동안 지켜온 원칙이다. 어느 국가가 논란에 휘말렸다고 해서 그 나라의 예술과 문화까지 모두 닫아버리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 이 주장은 예술계 안에서도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

국제 예술제와 전쟁 책임 논쟁을 표현한 전시장 이미지
국가관 참여는 개인 작가 전시와 달리 국가의 공식 대표성이 따라붙기 때문에 전쟁 책임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하지만 반대편의 문제 제기도 가볍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민간인 피해와 난민, 도시 파괴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국가관이 국제 예술제의 정상적인 참가국처럼 등장하는 것은 침략 전쟁의 책임을 흐릴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국가관은 대사관처럼 나라의 이름을 앞세운 전시 공간이다. 관람객이 작품을 보더라도 그 배경에는 러시아라는 국가의 공식 참여가 붙는다. 비판자들이 이를 문화 외교 또는 소프트파워라고 부르는 이유다.

푸시 라이엇과 FEMEN의 시위가 남긴 장면

푸시 라이엇과 FEMEN의 항의는 단순한 돌발 행동이 아니었다. 푸시 라이엇은 오랫동안 러시아 권위주의와 정치 탄압에 맞서온 상징적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FEMEN 역시 우크라이나를 기반으로 여성 인권과 정치적 저항을 전면에 내세워 온 단체다. 이들이 러시아관 앞에 함께 섰다는 것은 이번 논란이 미술 행사 안의 운영 문제가 아니라, 전쟁과 인권, 망명 예술가, 수감된 반체제 인사 문제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나온 색연기와 구호는 강렬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겨냥한 대상이다. 이들은 러시아 예술가 전체를 배제하자는 주장만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 안팎에서 탄압받는 예술가, 감옥에 갇힌 반체제 인사, 전쟁에 반대한 문화인들이 국제 무대에서 더 많이 다뤄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즉 러시아라는 국가의 공식 전시가 아니라, 러시아 권력에 맞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지점에서 논쟁은 더 섬세해진다. 러시아 출신 예술가라고 해서 모두 전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에 반대한 작가와 망명 예술가도 많다. 그러나 국가가 운영하거나 승인한 전시는 다르다. 비엔날레의 러시아관은 개인의 고통과 저항보다 국가의 복귀로 먼저 읽힌다. 그래서 반대자들은 러시아관을 열어야 한다면 적어도 푸틴 체제에 반대하다 탄압받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본다.

검열 반대와 전쟁 책임 요구는 모두 가볍지 않다

이번 논란을 한쪽 말만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예술제를 정치적 심판대로 만들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적이다. 오늘은 러시아가 대상이지만 내일은 다른 국가, 다른 작가, 다른 의견이 배제될 수 있다. 예술은 불편한 목소리까지 담아야 하고, 국제 행사는 대립하는 나라의 작가들이 만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문화 교류가 전쟁을 끝내지는 못해도 대화를 완전히 끊는 것보다는 낫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고 전쟁 책임을 외면할 수도 없다. 국가관은 순수한 예술 공간만은 아니다. 국가 예산, 외교적 승인, 문화기관의 판단이 얽혀 있다. 전쟁 중인 국가가 국제무대에서 정상적인 문화국가 이미지를 회복하려 할 때, 예술제는 뜻하지 않게 그 통로가 될 수 있다. 러시아관 논란이 단순한 전시 갈등을 넘어 유럽연합 지원금, 이탈리아 정부의 점검, 심사위원단 사퇴 논란으로 번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건은 예술제가 더 이상 정치 바깥에 서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놓인 처지는 다른 국제 문화 행사에도 곧바로 연결된다. 영화제, 음악제, 공연예술 축제, 국제 도서전은 모두 국가와 기업, 후원기관, 관광 산업이 얽혀 있다. 특정 국가의 참가를 막을 것인지, 허용하되 어떤 조건을 둘 것인지, 국가 공식 전시와 개인 예술가의 참여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앞으로 더 자주 문제가 될 수 있다. 러시아관 논란은 그 판단을 미룰 수 없게 만든 사례다.

한국 문화계도 남의 일로 볼 수 없다

한국 문화계에도 이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 국제 영화제와 미술 행사, 공연 축제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해외 국가관이나 특별전,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초청할 때 단순히 예술성만 볼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전쟁, 인권 침해, 제재 대상, 선전 논란이 있는 국가의 참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이 없으면 논란이 터질 때마다 행사 주최 측은 정치적 압박과 여론 사이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기준은 무조건적인 배제가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더 정교해야 한다. 국가 공식 전시와 독립 예술가의 참여를 나누고, 전쟁을 지지하거나 선전하는 콘텐츠와 권력에 맞선 표현을 구분해야 한다. 초청을 허용한다면 그 이유를 투명하게 설명해야 하고, 반대 목소리도 행사 안에서 안전하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문화 행사가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모두를 조용히 만드는 일이 아니라, 불편한 쟁점도 공개적으로 다루는 일에 가깝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러시아관 파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예술은 전쟁 앞에서 중립일 수 있는가. 답은 간단하지 않다. 예술은 국가 권력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야 하지만, 국가 권력이 예술을 자기 이미지 회복에 이용할 때는 그것을 구분해낼 책임도 있다. 베네치아의 러시아관은 작품보다 먼저 그 책임을 둘러싼 논쟁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국제 예술제는 참여와 배제 사이에서 더 까다로운 판단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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