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도로 이용자 90% “안전하다”…전문가는 45%, 모빌리티 안전 ‘신뢰 격차’

도로 이용자 90% “안전하다”…전문가는 45%, 모빌리티 안전 ‘신뢰 격차’

브렘보 지원·이코노미스트 엔터프라이즈 10개국 조사…ADAS 오사용과 차량 내 주의 분산을 새로운 위험으로 지목

미디어원 ㅣ 김미래기자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 일반인의 도로 안전에 대한 자신감이 전문가의 평가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과 도로 인프라가 빠르게 현대화되면서 안전하다는 인식은 높아졌지만, 실제 사고 위험과 새로운 기술의 한계에 대한 이해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탈리아 모빌리티 기업 브렘보의 지원을 받아 이코노미스트 엔터프라이즈가 수행한 ‘안전한 이동을 위한 신뢰 구축’ 연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도로 이용자의 약 90%는 자신의 일상적인 이동이 안전하다고 답했다. 반면 교통 시스템의 설계와 운영, 정책, 기술 분야 전문가 가운데 같은 평가를 내린 비율은 45%에 머물렀다.

조사는 브라질과 중국, 프랑스, 독일, 인도, 이탈리아, 일본, 한국, 영국, 미국 등 주요 자동차 생산국 10개국에서 진행됐다.

실제 위험보다 앞서간 안전 자신감

연구가 주목한 것은 단순한 만족도 차이가 아니라 안전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다. 이용자가 교통 시스템을 실제보다 안전하다고 믿을수록 속도와 주의, 운전자 보조기능 사용 과정에서 스스로 위험을 줄이기 위한 행동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 차이는 교통사고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에서 더욱 크게 나타났다. 브라질과 중국, 인도의 도로 이용자 가운데 94%가 이동이 안전하다고 답했지만 전문가 동의율은 18%에 불과했다. 이용자와 전문가의 차이는 76%포인트에 달했다.

세 나라의 평균 교통사고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6.2명으로 조사 대상국 평균의 약 두 배였다. 도로와 차량의 외형적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중의 신뢰는 높아졌지만 실제 안전 성과의 개선 속도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연구진의 해석이다.

한국·일본은 이용자와 전문가 간 격차 가장 작아

연구진은 국가별 안전 신뢰 구조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브라질·중국·인도는 대중의 낙관이 실제 안전 성과를 앞서는 신뢰 낙관형으로 분류됐다. 일본과 한국은 이용자 신뢰도 84%, 전문가 평가 70%로 격차가 가장 작은 신뢰 수호형에 포함됐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는 교통사고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기술과 제도의 투명성에 대한 회의가 공존하는 신뢰 검증형으로 분류됐다. 영국과 미국은 높은 제도 신뢰를 바탕으로 이용자의 안전 신뢰가 형성됐지만 규제 실패나 기업의 정보 은폐가 발생할 경우 신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신뢰 조율형으로 분석됐다.

기계 결함보다 ADAS 오사용이 더 큰 위험

자동차의 기계적 신뢰성이 높아지면서 안전 위험의 중심도 사람과 자동화 시스템의 상호작용으로 옮겨가고 있다.

교통 전문가 가운데 기계적 결함을 주요 사고 원인으로 꼽은 비율은 3%에 불과했다. 반면 30%는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차량 내 기능이 운전자의 시선을 도로에서 분산시키는 문제를 핵심 위험으로 지목한 비율도 24%였다.

ADAS는 운전자의 판단을 지원하도록 설계됐지만 기술의 적용 범위와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주의 수준을 낮출 수 있다. 시스템이 차로를 유지하고 속도를 조절하더라도 운전자의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전달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 65% 광고가 기술 성능 과장할 수 있어

전문가들은 자동차 기술 자체뿐 아니라 이를 소비자에게 설명하는 방식도 문제로 지적했다.

응답자의 65%는 광고가 운전자 보조시스템의 실제 성능을 과장할 수 있다고 답했다. 62%는 광고가 운전자에게 주의를 덜 기울여도 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으며, 60%는 기술의 장점에 비해 한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고 봤다.

운전자 보조기능의 명칭이나 광고 표현이 완전자율주행에 가까운 능력을 갖춘 것처럼 받아들여지면 사용자는 시스템의 개입 범위를 과신할 가능성이 있다. 기술 개발과 함께 기능의 한계, 운전자의 책임, 작동하지 않는 조건을 분명히 설명하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용자 88%는 더 강한 안전정책 지지

높은 안전 자신감이 규제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일반 이용자의 88%는 제한속도 하향과 법 집행 강화 등 더욱 강력한 도로 안전 정책을 지지했으며 안전한 교통 시스템을 위해 추가 비용을 부담할 의향도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정책 실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기관 간 협력 부족을 꼽았다. 응답자의 68%는 규제기관과 산업계의 협력 부족이 안전 개선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술 기준과 도로 인프라, 운전자 교육, 사고 데이터, 법 집행이 각각 분리돼 추진될 경우 새로운 위험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국가마다 교통문화와 제도에 대한 신뢰 수준이 다른 만큼 단일 해법보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신뢰는 안전 성과로 입증돼야

이번 조사는 대중의 높은 신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문제는 신뢰가 객관적인 안전 수준과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형성됐는지에 있다.

마테오 티라보스키 브렘보 회장은 산업계가 책임 있는 혁신을 이어가고 정책 당국은 효과적인 규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국민이 정확히 이해하도록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로 안전의 신뢰 격차를 줄이려면 차량의 첨단 기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이 어떤 상황에서 작동하고 언제 실패할 수 있는지 투명하게 알리고 사고와 위험 데이터를 공개하며 운전자 교육과 법 집행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

도로 위의 신뢰는 광고나 이미지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안전 성과를 통해 쌓아야 한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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