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소멸보다 더 두려운 한국어 소멸 — 우리는 아직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가

(미디어원)요즘 해외 언론에서도 한국의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출산율 0.7, 세계 최저 수준, 국가 소멸 위험. 자극적인 제목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나는 다른 걱정을 한다. 인구감소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 한국어의 소멸이다.
물론 한국어가 당장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한글은 여전히 쓰이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한국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과 신문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는 정말 한국말로 말하고 있는가.
요즘 방송을 보자. 예능 프로그램에서 요리사는 고기를 “이븐하게” 익혀야 한다고 말한다. 출연자는 그 장면의 “킥”이 살아 있다고 말한다. 가수는 무대의 “콘셉트”를 설명하고, 진행자는 오늘 분위기가 “텐션이 좋다”고 말한다. 축구 해설자는 “빌드업”과 “피니시”를 반복하고,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팩트”와 “프레임”, “이슈”와 “모멘텀”이 넘쳐난다.

고르게, 핵심, 개념, 분위기, 쟁점, 흐름. 분명히 우리 말이 있는데도 굳이 영어를 쓴다. 그것도 전문용어가 아니라, 일상적인 표현까지 영어로 대체한다. 문장은 한국어인데, 생각의 핵심은 영어로 이루어진다. 주어와 동사만 한국어일 뿐, 언어의 뼈대만 남은 느낌이다.
신문도 다르지 않다. 신문을 펼치면 기사 제목부터 영어가 넘친다.
“정부, 부동산 정책 드라이브 건다.”
“기업 실적 쇼크, 시장 패닉.”
“청년층 멘탈 붕괴 경고.”
“정치권 리스크 확대.”
추진, 충격, 공황, 위험. 모두 한국말로 충분히 쓸 수 있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점점 한국말을 쓰지 않는다. 영어를 쓰면 더 세련되어 보이고, 더 전문적으로 보인다고 믿는 듯하다.

문제는 단어 몇 개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는 사고의 도구다. 우리가 어떤 언어로 말하는가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가와 직결된다. 언어가 흐려지면 생각도 흐려진다. 언어가 무너지면 그 언어 위에 세워진 문화와 정체성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역사를 보면 언어를 잃은 민족은 결국 사라졌다. 만주족은 한때 중국 대륙을 지배했지만, 지금 만주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남아 있지만, 그들의 고유 언어는 일상에서 사라졌다. 사람은 남아 있지만, 언어가 사라진 민족은 더 이상 같은 민족이 아니다.
지금 한국어가 그 단계까지 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균열은 분명히 시작되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우리 말을 밀어내고 있다. 우리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 말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언어의 최전선에 있는 존재다. 방송과 신문이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그 말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 지금처럼 방송과 신문이 앞장서서 한국어를 무너뜨린다면, 한국어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인구감소는 숫자의 문제다. 그러나 언어의 소멸은 존재의 문제다.
인구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언어가 무너지면, 그 순간 우리는 아직 존재하고 있어도 이미 사라지기 시작한 것인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아직 우리말로 말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