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사회 황교익·서승만 보은 인사 논란, 국가 운영의 민낯 드러냈다

황교익·서승만 보은 인사 논란, 국가 운영의 민낯 드러냈다

황교익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에, 서승만이 국립정동극장 대표에 임명됐다. 이번 인사는 대통령 인사권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기관 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채우고 있는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연구자 259명과 예술인 479명이 공개 반발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황교익·서승만 보은 인사 논란 기사 이미지, Hwang Gyo-ik and Seo Seung-man appointment controversy
황교익(Hwang Gyo-ik)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임명과 서승만(Seo Seung-man)의 국립정동극장 대표 임명을 둘러싸고 보은 인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만재 기자 ㅣ 미디어원

황교익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이 됐다. 서승만이 국립정동극장 대표가 됐다. 많은 사람이 제목을 다시 봤을 것이다. 오보가 아니라 정부가 실제로 그렇게 임명했다.

연구자 259명이 실명 성명을 냈고, 예술인 479명이 거리로 나왔다. 켤로 가볍게 볼 숫자가 아니다. 연구자와 예술가는 쉽게 이름을 걸지 않는다. 학계와 현장은 좁고 그래서 불이익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이번 인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설명하지 않았고, 철회하지도 않았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황교익이 누구인지는 다 안다. 음식 칼럼니스트다. 방송에도 자주 나왔고 대중적 인지도도 높다. 그러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방송 패널이 가는 자리가 아니다. 문화·관광 정책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중장기 전략을 짜고, 정부 정책의 근거를 만드는 국책 연구기관이다. 박사급 연구자들이 쌓아 올린 자료와 보고서가 예산과 제도로 이어지는 곳이다. 그 기관 수장을 맡기려면 최소한 정책 연구와 조직 운영에 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 황교익에게 지금 문제 되는 것은 인지도 부족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필요한 경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인사가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황교익은 2021년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 때 이미 보은 인사 논란으로 한 차례 물러난 인물이다. 그 논란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데, 5년 뒤 더 무거운 자리에 다시 앉혔다. 이쯤 되면 단순한 오판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 번 문제가 됐던 인사를 다시 꺼내 쓸 만큼, 정부가 국민들의비판을 가볍게 본다는 얘기다.

서승만 인사도 마찬가지다. 서승만은 코미디언 출신이다. 대중 앞에서 웃음을 만드는 일과 국립 공연기관을 운영하는 일은 다르다. 국립정동극장은 전통 공연예술을 보존하고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는 국립 기관이다. 예산을 다뤄야 하고, 예술가와 작품을 조율해야 하고, 장기 계획도 세워야 한다. 이런 일을 오래 해온 사람들이 현장에 있다. 그런데 정부는 그 사람들보다 코미디언 출신 인사를 대표 자리에 세웠다. 이 장면을 보고 현장이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반론은 뻔하다. 대통령 인사권 아니냐는 말이다. 맞다.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인사권이 있다는 사실과 그 권한을 제대로 행사했다는 평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임명이 곧바로 타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비판이 커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권한의 존재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권한으로 누구를 어디에 앉혔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번에 눈에 띄는 대목은 비판의 출처다.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이 이번 인사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정부정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온 언론들까지 나선 것이다. 야당의 정치 공세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정권과 가까웠던 진영 안에서도 이 인사는 설명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짚어야 할 게 있다. 이 매체들이 언제나 같은 기준으로 공공 인사를 비판해 왔느냐는 점이다. 그렇지는 않았다. 자기 진영의 인사에는 눈을 감고, 자기 영역의 자리에 낙하산이 떨어질 때만 전문성을 들고 나오는 태도도 분명 있었다. 이번에 내놓은 비판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공공기관 인사를 문제 삼으려면, 앞으로는 자기편 인사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래야 그 비판이 힘을 가진다.

진짜 문제는 제도다. 공공기관장 임명을 실질적으로 걸러낼 장치가 거의 없다. 전문성 기준은 느슨하고, 검증 절차는 형식적이며, 국회의 견제도 제한적이다. 대통령이 마음먹고 밀어붙이면 막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 인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됐다. 문제는 이번 정부가 그 낡은 방식을 주저 없이 다시 꺼내 들었다는 점이다.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대로 간다. 이건 몰라서가 아니라, 그 정도 비판 쯤이야 무시해도 좋다는 오만한 태도를 가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지금 정부는 AI 전환을 말하고, 문화와 관광을 미래 산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사람을 신중하게 써야 한다. 연구기관에는 연구를 아는 사람을, 국립 공연기관에는 공연 행정을 아는 사람을 앉혀야 한다. 현장 전문가들이 등을 돌린 기관에서 무슨 정책이 제대로 나오겠나. 나와도 현장이 따라오지 않는다. 정책은 문서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신뢰가 있어야 움직인다.

보은은 사적으로 할 일이지 국가 기관의 수장 자리로 갚을 일이 아니다. 정부는 왜 한 번 논란이 됐던 인물을 더 무거운 자리에 다시 앉혔는지, 국립정동극장 대표 인선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는지 국민 앞에 분명히 밝혀야 한다.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도 이번 비판이 원칙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음에도 같은 기준을 들이대야 한다. 공공기관 자리를 전리품처럼 나누고, 언론이 자기편 인사에만 눈을 감으면 결국 망가지는 것은 기관이다. 연구기관은 연구기관답게, 국립 극장은 국립 극장답게 운영돼야 한다. 그 기본을 흔드는 인사의 피해는 오래 남고, 끝내 현장과 국민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