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국제 국산 훈련기 美 진출 좌절, ‘바이 아메리칸’만 탓할 일 아니다

[정론직필] 국산 훈련기 美 진출 좌절, ‘바이 아메리칸’만 탓할 일 아니다

외신이 본 K-방산의 숙제…성능 자부심보다 조달 외교·훈련체계 변화 읽기가 먼저다

KAI T-50 계열 훈련기의 미국 해군 UJTS 사업 진출 좌절을 상징하는 활주로 위 전투훈련기와 성조기 장벽 이미지
KAI와 록히드마틴의 TF-50N 미 해군 훈련기 수주 도전은 ‘바이 아메리칸’ 장벽뿐 아니라 조달 외교와 훈련체계 변화라는 더 큰 숙제를 남겼다.

김정호 기자 ㅣ 미디어원

미국 록히드마틴이 미 해군 차기 고등훈련기 사업인 UJTS(Undergraduate Jet Training System) 입찰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하면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T-50 계열 훈련기인 TF-50N의 미국 해군 시장 진출도 사실상 멈춰 섰다. 미 군사 전문매체 브레이킹 디펜스는 록히드마틴이 미 해군에 공식 통보한 뒤 UJTS 입찰을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업은 노후화된 T-45 고쇼크 훈련기를 대체하기 위한 미 해군·해병대 조종사 훈련체계 사업이다.

국내 보도는 대체로 ‘바이 아메리칸’ 장벽을 실패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미국산 부품 비중을 맞추기 어려웠고, 미국 정부의 자국 산업 보호 기조가 강해져 한국산 기체가 불리했다는 설명이다. 이 지적은 틀리지 않다. 록히드마틴 대변인도 요구되는 미국산 함량 수준과 다른 이유들 때문에 자사의 제안이 이 사업의 최선의 해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취지로 밝혔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사안의 절반만 본 해석에 그친다. ‘바이 아메리칸’은 갑자기 생긴 변수가 아니다. 미국 국방 조달 시장에 들어가려면 처음부터 계산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이번 사안을 단순히 “미국이 문을 닫았다”는 식으로 정리하면, 정작 한국 방산이 놓친 문제는 가려진다. 패인은 크게 세 가지다. 조달 외교의 지연, 미 해군 훈련 방식 변화에 대한 대응 부족, 그리고 파트너사 록히드마틴의 냉정한 사업 판단이다.

RDP-A 미체결과 바이 아메리칸 규제로 움직임이 제한된 한국 방산을 상징하는 체스판 위 군용기 말 이미지
미국 방산 조달 시장은 성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RDP-A, 현지 생산, 정치적 명분, 공급망 조건이 함께 작동하는 체스판에 가깝다.

첫째, RDP-A 미체결은 오래된 숙제였다

미국은 여러 우방국과 국방상호조달협정, 즉 RDP-A를 맺고 있다. 미 국방부는 2024년 연방관보에서 한국과의 RDP 협정 체결 가능성을 검토한다고 밝히며, 이미 28개국과 유사한 협정을 체결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 협정은 동맹국 간 재래식 방산 장비의 합리화, 표준화, 상호운용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RDP-A는 단순한 외교 문서가 아니다. 관련 연구들은 이 협정이 ‘Buy National’ 성격의 규제를 완화하고, 미국 국방 조달에서 Buy American Act 적용을 면제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고 설명해 왔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군사동맹이지만, 아직 이 협정의 체결국은 아니다.

반면 경쟁 진영은 이런 약점을 줄이기 위해 미국 내 생산 계획을 적극 내세우고 있다. 텍스트론은 레오나르도의 M-346N을 미 해군 UJTS 사업에 제안하면서, 수주 시 캔자스주 위치타 공장에서 조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내 생산, 지역 일자리, 공급망 명분을 함께 내세운 것이다.

따라서 언론이 물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미국이 왜 장벽을 세웠느냐”만이 아니라, “우리는 왜 그 장벽을 넘을 제도적 통로를 미리 확보하지 못했느냐”다. 과거 한국 방산은 미국 대형 방산기업에 국내 시장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시장 개방에 소극적이었다. 그 판단에도 당시의 이유는 있었다. 국내 방산업체가 아직 충분히 크지 않았던 시절에는 보호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K-방산은 폴란드, 중동, 동남아 등으로 수출을 넓히며 체급을 키웠다. 세계 시장으로 나가겠다고 하면서도, 미국 조달 시장을 뚫을 외교·제도 준비가 늦었다면 그것은 변명이 되기 어렵다. 하드웨어는 성장했지만, 방산 외교와 조달 전략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아날로그 전투기 조종석과 VR 시뮬레이션 훈련을 대비시킨 미 해군 훈련체계 변화 이미지
미 해군의 차세대 훈련기 사업은 기체 성능뿐 아니라 시뮬레이터, 지상훈련체계, 장기 운용비를 함께 따지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둘째, 미 해군은 더 이상 ‘튼튼한 훈련기’만 찾지 않는다

이번 UJTS 사업은 단순한 항공기 구매가 아니다. 미 해군은 기체와 함께 시뮬레이터, 지상훈련체계, 군수지원까지 포함한 전체 훈련 생태계를 요구하고 있다. 항공 전문매체 에어로스페이스 글로벌 뉴스도 UJTS가 항공기만이 아니라 시뮬레이터와 지상 시스템, 군수지원까지 포함하는 사업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있다. 새 훈련기는 기존 T-45처럼 항공모함 착함 훈련을 직접 수행하는 기체로 설계되지 않는다. 외신들은 UJTS 기체가 항모 착함을 요구받지 않으며, 실제 훈련의 상당 부분이 시뮬레이션과 지상훈련체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목이 뼈아프다. T-50 계열은 우수한 초음속 고등훈련기다. 한국 공군과 여러 수출 시장에서 이미 성능을 입증했다. 그러나 미 해군이 이번 사업에서 보는 것은 “좋은 비행기 한 대”가 아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조종사를 어떻게, 얼마의 비용으로, 얼마나 빨리 길러낼 수 있느냐는 문제다. 성능만 좋으면 된다는 논리로는 부족하다. 훈련기와 시뮬레이터, 소프트웨어, 정비비, 교육 과정 전체를 하나의 패키지로 제시해야 한다.

결국 미 해군은 강한 기체보다 낮은 운용비, 빠른 도입, 디지털 훈련체계와의 결합을 더 크게 보고 있다. T-50의 장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사업에서 요구된 무게중심과 T-50 계열의 강점이 완전히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록히드마틴은 동맹이 아니라 사업자로 움직였다

록히드마틴의 판단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록히드마틴은 KAI와 함께 TF-50N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종 제안요청서가 나온 뒤 한 달도 되지 않아 발을 뺐다. 브레이킹 디펜스는 이 결정으로 경쟁 구도가 SNC, 보잉, 텍스트론-레오나르도 3파전으로 좁혀졌다고 전했다.

록히드마틴은 T-50 플랫폼의 능력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T-50은 강한 능력과 미래 가능성을 가진 선도적 전투기 훈련 플랫폼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산 함량 수준과 다른 요인들을 검토한 결과, 이번 사업에서 최선의 제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것이 방산 비즈니스의 현실이다. 동맹은 외교의 언어이고, 입찰은 숫자의 언어다. 록히드마틴 입장에서 미국산 함량을 맞추기 위해 생산망을 크게 바꾸고, 비용을 올리고, 사업 리스크를 떠안을 이유가 충분하지 않았다면 철수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한국이 기대했던 것은 ‘동맹 프리미엄’이었지만, 미국 방산 조달 시장에서 마지막 판단 기준은 애국심도 우정도 아니다. 가격, 조달 조건, 생산지, 정치적 명분, 운용비가 모두 합쳐진 계산서다.

언론은 외부 탓보다 내부 숙제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번 사안을 두고 “미국 보호무역 때문에 졌다”고만 쓰는 것은 쉽다. 독자도 빨리 이해하고, 클릭도 잘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정론직필이 아니다. 미국의 장벽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장벽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였던 장벽이다. 우리가 넘을 사다리를 만들지 못했다면, 그 책임도 함께 따져야 한다.

K-방산은 이제 자부심만으로 설명할 단계가 아니다. 수출 실적은 늘었고, 세계 시장의 관심도 커졌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한 질문을 받아야 한다. 미국 조달 시장의 법과 제도를 얼마나 읽었는가. RDP-A 같은 제도 협상을 왜 더 빨리 밀어붙이지 못했는가. 훈련기 성능뿐 아니라 시뮬레이터와 디지털 교육체계, 장기 운용비까지 포함한 제안을 얼마나 준비했는가. 미국 현지 생산과 공급망 재편을 어느 수준까지 현실화했는가.

이번 실패는 T-50의 실패라고 단정할 일이 아니다. T-50은 여전히 좋은 기체다. 그러나 좋은 기체만으로는 부족한 시장이 왔다. 항공기는 날아야 하지만, 방산 수출은 외교와 제도와 숫자 위에서 움직인다. 한국 방산이 다음 단계로 가려면 “우리 기술이 뛰어나다”는 말보다 “상대 시장이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먼저 읽어야 한다.

‘바이 아메리칸’은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진짜 패인은 미국의 문턱을 원망하면서도 그 문턱을 넘을 제도와 전략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데 있다. K-방산이 세계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박수보다 점검이 먼저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애국심으로 감싸는 보도보다, 실패의 원인을 끝까지 따지는 보도가 지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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