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문화 밤 11시에도 커피가 끓는다…예멘 커피하우스가 미국 도시를 바꾸는 방식

밤 11시에도 커피가 끓는다…예멘 커피하우스가 미국 도시를 바꾸는 방식

예멘 커피하우스가 미국 여러 도시에서 조용히 번지고 있다. 술집 대신 늦은 밤까지 문을 여는 가족형 카페, 향신료가 들어간 진한 커피, 전쟁을 피해 이주한 사람들의 생활 문화가 만나면서 미국의 밤 문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카페 유행이 아니라 이민자 공동체, 할랄 소비, 커피의 기원, 도시의 안전한 만남 공간까지 함께 보여주는 흥미로운 라이프 기사다.

예멘 커피하우스가 미국 도시의 밤 문화를 조용히 바꾸고 있다. AP통신은 최근 미국 여러 도시에서 예멘식 커피하우스가 늘고 있으며, 늦은 밤까지 문을 여는 이 카페들이 술집과는 다른 만남의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수백 년 전 세계 커피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예멘은 오랜 전쟁과 가난으로 더 자주 설명돼 왔다. 그런데 이제 미국에서는 예멘이라는 이름이 향신료가 들어간 커피, 늦은 밤 대화, 가족이 함께 머무는 카페의 이미지로 다시 불리고 있다.

이정찬 기자 ㅣ 미디어원

술집 대신 커피하우스에 모이는 사람들

예멘 커피하우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시간이다. 일반 카페가 문을 닫는 시간에도 예멘식 카페는 밤늦게까지 불을 켠다. 이곳에는 학생, 젊은 직장인, 가족, 무슬림 공동체 구성원, 커피를 좋아하는 현지 손님이 함께 모인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늦은 밤 친구를 만날 수 있고, 가족이 함께 앉아 차와 디저트를 나눌 수 있다. 미국의 밤 문화가 오랫동안 술집과 바, 클럽 중심이었다면 예멘 커피하우스는 그 사이에 다른 선택지를 만든다.

이 선택지는 특히 할랄 소비와 맞닿아 있다. 무슬림 소비자에게 술을 팔지 않는 늦은 밤 공간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다. 그러나 예멘 커피하우스가 무슬림 손님에게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늦은 시간에도 안전하고 밝은 공간을 찾는 젊은 세대, 강한 향과 새로운 맛을 찾는 커피 애호가, 노트북을 펴고 오래 머물고 싶은 학생들이 이곳으로 들어온다. 예멘 카페는 종교와 이민자 공동체에서 출발했지만, 곧 도시의 보편적인 밤 공간으로 넓어지고 있다.

향신료가 들어간 예멘식 커피와 디저트 이미지
카다멈, 생강, 계피 같은 향신료가 들어간 예멘식 커피는 미국 카페 시장에서 다른 맛의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커피의 기원을 다시 맛보게 하는 가게

예멘은 커피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름이다. 예멘의 모카 항구는 한때 세계 커피 교역의 상징으로 통했다. 오늘날 모카라는 말이 초콜릿 향 커피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이름의 뿌리에는 예멘의 항구와 산악지대 커피가 있다. 예멘식 커피하우스가 미국에서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이국적인 맛 때문만은 아니다. 커피를 둘러싼 오래된 역사가 현대 이민자 창업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멘식 커피는 흔히 카다멈, 생강, 계피, 정향, 고수씨, 육두구 같은 향신료와 함께 소개된다. 하와이즈라고 불리는 향신료 조합은 커피와 차에 깊은 향을 더한다. 예멘 커피는 햇볕에 말리는 방식으로 과일과 초콜릿을 떠올리게 하는 맛을 낸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소비자에게 이는 익숙한 라테와 콜드브루와는 다른 경험이다.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한 나라의 식문화와 시간을 함께 내놓는 셈이다.

전쟁의 나라가 아니라 커피의 나라로

예멘 커피하우스의 확산에는 아픈 배경도 있다. 예멘은 오랜 내전과 인도주의 위기를 겪어왔다. 미국에 정착한 예멘 출신 이민자와 그 가족에게 카페 창업은 생계 수단이자 공동체를 지키는 방식이 됐다. 고향의 맛을 팔고, 언어와 문화를 나누고, 새로 온 이민자가 일자리를 얻는 공간이 된다. 한 잔의 커피 뒤에는 전쟁을 피해 이동한 사람들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렇다고 이 기사를 슬픈 이민 이야기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예멘 커피하우스는 이민자 문화가 미국 도시를 어떻게 풍부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피자, 타코, 베이글, 베트남 쌀국수가 미국 일상에 들어왔듯 예멘식 커피와 차도 새로운 도시 문화의 일부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이민자 동네에서 시작된 가게가 젊은 소비자와 소셜미디어를 만나 더 넓은 시장으로 나가는 과정은 미국 외식산업에서 반복돼 온 장면이다.

한국 카페 시장에도 던지는 힌트

한국 카페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개인 카페가 넘치고, 메뉴 경쟁도 빠르게 반복된다. 그러나 예멘 커피하우스의 사례는 아직도 카페가 새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원두를 들여오는 일이 아니다. 특정 지역의 이야기, 향, 밤 시간대 이용 방식, 가족과 친구가 머무는 분위기까지 함께 팔 때 카페는 다시 특별한 장소가 된다.

한국에서도 밤늦게 문을 여는 카페는 많지만, 대부분 공부와 작업 공간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예멘 커피하우스의 강점은 늦은 시간과 공동체, 맛의 정체성이 함께 있다는 점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소비자, 가족 단위 손님, 외국인 커뮤니티, 조용한 밤 모임을 원하는 사람에게 카페는 더 넓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커피 한 잔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도시의 만남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예멘 커피하우스는 거창한 유행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커피의 오래된 역사, 전쟁을 견딘 이민자들의 삶, 밤 문화를 바꾸는 소비 흐름이 함께 담겨 있다. 미국 도시의 늦은 밤, 술잔 대신 향신료 커피가 놓인 테이블이 늘어나는 장면은 작지만 선명한 변화다. 예멘은 다시 커피로 이야기되고 있다. 이번에는 항구가 아니라 도시의 골목 카페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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