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News 문화 9살 때 훔친 중세 수도원 타일, 60년 만에 반환했다.

9살 때 훔친 중세 수도원 타일, 60년 만에 반환했다.

영국 슈롭셔의 웬록 프라이어리에서 어린 시절 가져간 중세 바닥 타일 조각이 거의 6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당시 9살이던 사이먼 화이트는 다락 정리를 하다 토피 과자 통 안에 보관돼 있던 타일 조각을 다시 발견했고, 가족 일기를 뒤져 출처를 확인한 뒤 English Heritage에 연락했다. 작은 기념품처럼 보였던 조각은 13~14세기 유산으로 확인됐고, 한 조각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용 문양도 드러났다.

중세 수도원 타일 조각이 거의 6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영국 가디언과 스미스소니언에 따르면 사이먼 화이트는 9살이던 1960년대 후반 가족 나들이 중 슈롭셔의 웬록 프라이어리에서 장식 바닥 타일 조각 세 점을 가져갔다. 당시에는 오래된 유적에서 발견한 작은 기념품처럼 여겼지만, 세월이 흘러 그 조각들은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만들어진 중세 유산으로 확인됐다. 화이트는 은퇴 후 다락을 정리하다 토피 과자 통 안에 보관돼 있던 타일을 다시 발견했고, 결국 English Heritage에 연락해 반환했다.

이정찬 기자 ㅣ 미디어원

토피 과자 통 안에 숨은 700년의 시간

이 사연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거창한 도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린아이가 가족 여행 중 유적에서 작은 조각을 집어 갔고, 그 물건은 수십 년 동안 집 안에서 잊혔다.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타일 조각은 과자 통 안에 남아 있었다. 화이트는 나이가 든 뒤 그것이 단순한 돌조각이 아니라 과거의 장소와 시간을 품은 물건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는 어머니가 남긴 가족 일기를 뒤져 당시 방문지를 확인했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타일의 출처를 추적했다.

English Heritage 전문가들은 반환된 조각이 웬록 프라이어리의 중세 바닥 타일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비슷한 문양의 타일이 슈롭셔 일부 유적에서만 확인되는 데다, 가족 일기의 방문 기록이 출처를 뒷받침했다. 특히 한 조각에서는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용 문양도 드러났다. 작은 파편 하나가 유적 연구에 새로운 단서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문화재는 완전한 형태일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깨진 조각도 문양, 제작 방식, 색, 흙의 성분, 사용된 장소를 말해준다.

영국 중세 수도원 유적과 문화재 보존을 상징하는 이미지
작은 조각 하나도 유적의 시간과 장소를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어 관광객의 문화재 윤리가 중요하다.

기념품과 훼손 사이의 경계

관광지에서 무언가를 집어 가져가는 일은 오랫동안 가볍게 여겨지기도 했다. 해변의 조약돌, 고성의 작은 돌, 유적지의 파편, 오래된 건물의 조각을 여행 기념품처럼 가져가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공공 유산에서 나온 조각은 개인의 추억이 되기 전에 모두의 역사다. 특히 고고학 유적은 물건 자체만큼이나 그 물건이 어디에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제자리에서 사라진 조각은 연구자에게 맥락을 잃은 자료가 되고, 유적을 찾는 다음 세대에게는 빈틈으로 남는다.

화이트의 반환은 그래서 꾸짖음보다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그는 어릴 때 한 행동을 뒤늦게 바로잡았다. English Heritage도 비난보다 감사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오래전 무심코 가져간 유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다. 반환을 두려워하기보다 기관에 연락해 출처를 확인하고, 공공 보존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문화재 반환은 꼭 국가 간 약탈품 논쟁만을 뜻하지 않는다. 개인의 서랍과 다락, 상자 안에도 돌아가야 할 조각들이 있을 수 있다.

웬록 프라이어리가 말하는 중세의 흔적

웬록 프라이어리는 영국 중세 수도원 유산 가운데 하나다. 수도원 유적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다. 그곳의 바닥, 벽, 기둥, 타일, 문양은 당시 신앙과 건축, 장인 기술, 지역 경제를 보여준다. 바닥 타일은 특히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간 생활의 흔적이다. 성직자와 방문객이 오가던 공간, 예배와 일상의 움직임, 장식 문양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상징이 타일 안에 남아 있다. 그러니 작은 조각 하나도 장소의 기억과 분리해서 볼 수 없다.

반환된 타일은 원래 자리로 다시 깔리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보존 상태와 안전, 연구 필요성을 고려하면 전문 보관시설에서 관리되거나 연구 자료로 쓰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바닥에 돌아가지 않더라도 의미는 충분하다. 개인의 물건이 아니라 공공의 유산으로 다시 분류됐고, 연구자가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됐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조각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유적의 이야기는 조금 더 온전해진다.

한국 관광객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이 사건은 한국 독자에게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해외 유적지를 찾는 여행객이 늘면서 문화재 윤리는 더 중요해지고 있다. 유럽의 성당과 고성, 동남아시아의 사원, 중동과 지중해의 고대 유적, 국내의 오래된 사찰과 성곽에서도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사진을 찍고, 관람하고, 설명을 듣는 것은 여행의 일부다. 그러나 돌 하나, 흙 한 줌, 깨진 조각 하나를 가져가는 순간 여행은 훼손으로 바뀐다.

관광지는 소비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빌려 쓰는 장소다. 여행객은 잠시 머물 뿐이고, 유산은 그곳에 계속 남아야 한다. 작은 조각을 가져간 사람에게는 추억일 수 있지만, 그 유적을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사라진 자료이고, 다음 방문객에게는 잃어버린 풍경이다. 이번 반환은 죄를 크게 묻는 이야기보다 늦게라도 바로잡는 이야기로 읽힌다. 문화재 보호는 전문가와 박물관만의 일이 아니라 여행자 한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60년 만에 돌아온 중세 타일 조각은 화려한 보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작은 파편은 여행의 기억과 공공 유산 사이의 선을 또렷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의 장난처럼 시작된 일이 오랜 시간이 지나 역사 앞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관광객이 어떤 태도로 유적을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오래된 물건이 왜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이 조용한 반환이 충분히 말해준다.

미디어원 Copyrights ⓒ MediaOn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